- 09 Dec, 2025
주말 온 가족이 함께인데 자꾸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주말 온 가족이 함께인데 자꾸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토요일 오전 10시 딸아이가 "엄마, 나랑 놀자" 했다. 손에 레고 들고 있었다. "응, 엄마 잠깐만"이라고 했다. 슬랙 알림이 떴다.토요일인데 알림을 껐어야 했다. 근데 못 껐다. 왜냐면 투자자가 주말에 메일 보낸다고 했거든. 시리즈B 준비 중이다. 그 메일이 올 수도 있다. 딸아이는 내 옆에 앉았다. 혼자 레고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랙을 봤다. 개발팀 리드가 긴급 이슈 올렸다. "주말인데 죄송한데요, 결제 오류 떴어요" 손가락이 움직였다. "확인했어요. 월요일 아침 회의 잡을게요" 타이핑하는 동안 딸아이가 "엄마" 했다. "응?" 하면서도 눈은 화면에 있었다. 점심 먹으면서 남편이 파스타를 만들었다. 아들이 "맛있다!" 소리쳤다. 딸아이는 조용히 먹었다. 나는 포크 들고 한 손으론 폰을 봤다.슬랙 읽지 않은 메시지 37개. 주말인데 왜 이렇게 많아. 아, 마케팅팀이 월요일 광고 기획안 공유했구나. 지금 안 봐도 되는데. 근데 보게 된다. 남편이 "맛있어?" 물었다. "응, 맛있어"라고 했다. 근데 뭘 먹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맛을 모르겠다. 딸아이가 "엄마 오늘 뭐 할 거야?" 물었다. "응? 아, 엄마랑 뭐 하고 싶어?" "공원 가고 싶어" "그래, 갈게" 근데 마음 한편에서는 계산했다. 공원 2시간, 집 돌아오면 4시. 저녁 준비 6시까지. 그럼 오늘은 투자 제안서 못 보는 거네. 일요일에 봐야 하나.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남편이랑 벤치에 앉았다. 햇살이 좋았다. 근데 폰이 진동했다.또 슬랙이다. 이번엔 CFO였다. "대표님, 이번 주 캐시플로우 리포트 드립니다" 엑셀 파일이 첨부됐다. 열어봤다. 숫자들이 보였다. 마케팅비 800만원 초과. 예상보다 200만원 더 나갔다. 심장이 쿵 했다. 월요일에 물어봐야 한다. 어디서 샜는지.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근데 계속 생각난다. 딸아이가 "엄마! 그네 밀어줘!" 소리쳤다. "응!"하고 일어났다. 근데 폰은 손에 쥐고 있었다. 그네를 밀면서도 화면을 봤다. "엄마, 높이!" "그래" 밀면서도 슬랙 채널을 스크롤했다. 한 손으로. 남편이 "폰 좀 놔" 했다.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아, 미안. 급한 거" "토요일인데 뭐가 급해"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안 급하다. 근데 안 보면 불안하다. 그게 문제다. 저녁 8시 아이들 재웠다. 남편이랑 소파에 앉았다. TV를 틀었다. 근데 또 폰을 봤다. 남편이 한숨 쉬었다. "오늘 하루 종일 폰만 봤어" "미안해. 일이 좀..." "일은 항상 있잖아" 맞는 말이다. 일은 항상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도 모자라서. 토요일 일요일까지 일한다. "나도 안 그러고 싶어"라고 했다. 근데 목소리가 작았다. 확신이 없었다. 정말 안 그러고 싶은 건가. 아니면 못 놓는 건가. 남편이 "애들이 섭섭해해"라고 했다. 그 말이 제일 아팠다. 사실 나도 안다. 딸아이 눈빛 봤다. "엄마 또 폰 보네" 하는 표정. 일요일 아침 새벽에 깼다. 5시 30분. 원래 새벽형 인간이긴 한데. 오늘은 꿈을 꿨다. 투자자가 "대표님은 집중력이 없으시네요"라고 했다. 회의실에 아이들이 있었다. 레고 조립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슬랙을 보고 있었다. 식은땀 흘리며 일어났다. 폰을 봤다. 슬랙 알림 12개. 일요일 새벽인데도. 아, 시차 있는 파트너사구나. 미국 금요일 오후니까. 그래도 지금 볼 필요는 없다. 근데 봤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중독이다. 이건 중독인 거다. 거실로 나왔다. 커피를 내렸다. 창밖을 봤다. 아직 어둡다. 이 시간이 예전엔 좋았다. 아이들 깨기 전 나만의 시간. 근데 요즘은 이 시간도 일한다. 슬랙 확인하고, 메일 답장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투자 제안서를 열었다. 집중하려고 했다. 근데 딸아이 방에서 소리가 났다. 월요일이 두렵다 주말이 끝나간다. 아이들이랑 제대로 놀지 못했다. 남편이랑도 제대로 대화 못 했다. 근데 일은 어느 정도 했다. 이게 맞나. 잘 모르겠다. 대표로서는 책임감이고. 엄마로서는 직무유기다. 여성 CEO 모임에서 들었다. "완벽한 워라밸은 환상이에요" "그냥 덜 죄책감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근데 어떻게 배워. 딸아이 눈빛 보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엄마는 나보다 폰이 더 좋아" 그 말 듣고 싶지 않은데. 슬랙을 끄려고 했다. 알림을 off 하려고 했다. 근데 못 했다. 손가락이 안 움직였다. 만약에. 만약에 진짜 급한 일이 생기면. 만약에 투자자가 연락하면. 만약에 서버가 다운되면. 핑계다. 다 핑계인 거 안다. 월요일 아침에 처리해도 된다. 세상이 안 망한다. 근데 불안하다. 통제력을 잃는 기분이다. 회사가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갈 것 같다. 착각인 거 아는데. 남편이 주말에 한 말. "회사는 네가 없어도 하루는 돌아가. 근데 애들은?" 그 말이 계속 맴돈다. 맞는 말이다. 근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음 주말은 다르게 하고 싶다. 슬랙 알림 꺼놓고.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일요일 저녁 7시까지. 완전히 끄고 싶다. 근데 할 수 있을까. 자신 없다. 벌써 불안하다. 딸아이가 자기 전에 물었다. "엄마, 다음 주말엔 진짜 나랑만 놀 거야?" "응, 그럴게" "폰 안 볼 거야?" "...응" 대답하면서 떨렸다. 지킬 수 있을까. 이 약속. 창업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시간 관리하는 거니까 더 자유롭겠지' '아이들이랑 더 많이 있을 수 있겠지' 개소리였다. 오히려 더 못 놓는다. 출퇴근이 없으니까 경계가 없다. 집에 있어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아이들 옆에 있어도 머릿속은 회사다. 엄마 CEO 선배가 그랬다. "10년 후 후회하는 건 일을 덜 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랑 덜 논 거예요" 그 말이 머리로는 이해된다. 근데 지금 당장은 회사가 불타고 있는 것 같다. 매출 성장률. 투자 유치. 직원 관리. 다 중요하다. 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진짜 그런가. 정말 다 나여야만 하나. 조금 놓으면 안 되나. 손가락이 말해준다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자동으로 움직인다. 의식하지 않아도. 씻으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아이 재우면서도. 이 손가락이 내 상태를 보여준다. 불안한 거다. 통제 욕구가 강한 거다. 놓지 못하는 거다. 다음 주 월요일. 팀 회의에서 말할까 생각한다. "주말엔 긴급한 것만 연락 주세요" "저도 주말엔 슬랙 안 볼게요" 근데 무섭다. 팀원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대표는 편하게 쉬네' '우린 주말에도 일하는데' 아니다. 이런 생각 자체가 문제다. 내가 먼저 경계를 만들어야. 팀원들도 따라온다. 딸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 폰 좀 그만 봐" 그 목소리가 들린다. 다음 주말. 정말로 슬랙을 끈다. 알림을 off 한다. 폰을 서랍에 넣는다.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근데 해야 한다.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초등 2학년도 금방 지나간다. 6살도 이미 컸다.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슬랙은 월요일에도 있다. 메일도 그때 확인하면 된다. 회사는 하루 이틀 내가 없어도 돌아간다. 근데 아이들의 주말은. 딱 이 주말만 있다. 다시 안 온다.손가락은 또 슬랙을 향한다. 근데 이번엔 멈춘다. 조금씩.
- 09 Dec, 2025
저녁 7시 퇴근, 그 다음 2시간이 실은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
퇴근이 아니라 2교대 시작 7시에 사무실 나온다. 퇴근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아니다. 2교대 시작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립스틱 지운다. 가방에서 아이들 간식 꺼내 들고. 현관문 열기 전에 숨 한 번 크게 쉰다. "엄마!" 문 열자마자 달려든다. 7살 민준이가 먼저, 초등 2학년 지원이가 뒤따라. 가방도 못 내려놓고 안는다. 이 순간은 진짜다. 하루 중 가장 진짜인 순간.7시 10분, 전쟁 시작 "배고파 죽겠어요!" 민준이가 냉장고 연다. "숙제 검사 먼저 해주세요." 지원이가 가방 뒤진다. 시계 본다. 7시 12분. 재울 때까지 2시간 48분 남았다. 냉장고 연다. 어제 만들어둔 미역국, 밥 3공기, 계란 6개. 계획대로면 7시 반에 밥상 차린다. 민준이 손 씻기러 끌고 간다. 지원이 숙제장 펼친다. 국어 받아�기 10개, 수학 문제 5개. "엄마 이거 모르겠어." "잠깐만, 동생 손 씻기고." "엄마 지금 봐줘야 돼요!" 목소리 높아진다. 지원이 눈에 눈물 고인다. 숨 쉰다. "미안, 지금 바로 볼게." 민준이 손에 물만 묻히고 나온다. 다시 끌고 들어간다. 비누 쓰라고, 손가락 사이사이 씻으라고. 7시 22분. 계획보다 8분 밀렸다.밥상머리가 회의실보다 어렵다 7시 35분에 밥상 앉는다. 계획보다 5분 늦었지만, 괜찮다. "잘 먹겠습니다." 민준이가 숟가락 들기 전에 말한다. "학교에서 뭐 했어?" 지원이한테 묻는다. "그냥요." "그냥은 무슨."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더 물으면 짜증난다는 거 안다. 초등 2학년은 그렇다. "민준아, 유치원 재밌었어?" "네! 오늘 블록 놀이 했어요. 근데 준서가요..." 민준이는 다르다. 하루 종일 이야기를 쏟아낸다. 준서가 어쨌고, 선생님이 뭐라 했고. 지원이 밥 안 먹는다. 반찬만 골라먹는다. "밥 먹어." "배불러요." "반찬만 먹었잖아." "그래도 배불러요." 싸우기 싫다. "그럼 3숟가락만." 협상한다. 임원 미팅보다 어렵다. 밥 먹으면서 민준이 우유 쏟는다. 지원이가 "에이 바보" 한다. 민준이 운다. 일어나서 키친타월 뜯는다. "바보 아니야. 실수할 수 있지." 지원이한테 말한다. "언니가 동생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7시 58분. 밥 먹는 데 23분 걸렸다. 설거지는 나중에. 지금은 아이들.목욕탕이 싸움터 8시 5분. "목욕하자." 둘 다 싫다고 한다. TV 보고 싶다고. "10분만 보고 할게요." 지원이가 협상한다. "안 돼. 지금." 민준이 끌고 욕실 들어간다. 울면서 들어간다. 물 틀고, 온도 맞추고. 샤워기로 머리 감긴다. "눈에 들어가요!" "눈 감아." "물 차가워요!" "따뜻한데?" 샴푸 칠하고, 헹구고. 몸 씻기고, 나온다. 수건으로 닦는다. 머리 말리고, 로션 바르고. 옷 입힌다. "지원아, 네 차례." 지원이는 혼자 한다고 한다. 초등학생이니까. "머리 잘 감아." "알아요." 10분 뒤에 확인한다. 샴푸 안 했다. 머리에 물만 묻혔다. "지원아." "뭐예요." "머리 안 감았지?" "감았어요!" 거짓말하는 거 안다. 오늘 싸우기 싫다. "내일은 제대로 감아." "네." 8시 47분. 목욕에 42분 걸렸다. 잠들기 전 30분 9시. 이불 덮어준다. "책 읽어주세요." 민준이가 그림책 들고 온다. "오늘은 엄마가 피곤해서..." "하나만요. 짧은 거요." 못 이긴다. 앉는다. "옛날 옛적에..." 읽다가 목소리 갈라진다. 아이들 보면 눈물 날 것 같다. 참는다. 지원이도 옆에 온다. "나도 듣고 싶어요." 둘이 양옆에 붙는다. 따뜻하다. 책 끝나고 불 끈다. "잘 자." 문 나가려는데 민준이가 부른다. "엄마." "왜?" "사랑해요." 뒤돌아본다. 어둠 속에서 민준이 눈이 반짝인다. "나도." 목소리 떨린다. 9시 30분, 진짜 하루가 끝난다 거실 소파에 앉는다. 움직일 수가 없다. 2시간 반. 시계로는 2시간 반이었다. 근데 몸은 8시간 일한 것 같다. 아니, 더. 회사에서는 앉아서 일한다. 집에서는 서서, 뛰면서, 안으면서 일한다. 회사에서는 말로 한다. 집에서는 온몸으로 한다. 휴대폰 본다. 투자자한테 온 메일 3통. 직원 슬랙 멘션 5개. 나중에. 지금은 못 한다. 소파에 누워서 천장 본다. 남편 10시에 온다. 보통 그렇다. 아이들 재운 거 고맙다고 할 거다. 고맙다는 게 웃긴다. 내 아이들인데. 근데 화내기 싫다. 오늘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아이들이 "엄마" 부르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초등 2학년. 6살. 지원이 몇 년 뒤면 "엄마" 안 부른다. 방문 닫고 혼자 있고 싶어 한다. 민준이도 그렇게 된다. 7시부터 9시 반. 이 2시간 반은 돌아오지 않는다. 회사 미팅은 다시 잡는다. 투자 유치는 내년에도 한다. 근데 지원이가 "책 읽어주세요" 하는 건? 민준이가 "엄마 사랑해요" 하는 건? 몇 년 없다. 그래서 7시에 퇴근한다. 이사회에서 뭐라든. 투자자가 저녁 미팅 제안하든. "7시는 안 됩니다." 이유 설명 안 한다. 설명해봤자 모른다. 아이 없는 남자 투자자들은. "CEO면 좀 더 유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웃으면서 말한다. "유연한 게 아니라 우선순위입니다." 밤 10시, 노트북 다시 연다 남편 들어온다. "애들 잤어?" "응." 씻으러 들어간다. 나는 노트북 연다. 메일 확인한다. 투자자 메일.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미팅 어떠세요?" 답장 쓴다. "화요일 오전 10시나 오후 2시는 어떠신가요?" 보낸다. 직원 슬랙. "내일 회의 안건 추가해도 될까요?" "좋아요. 아침에 봐요." 답장 빠르다. 밤 10시에도 일한다. 미안하다. 내가 밤에 답장하니까 직원들도 하는 거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 회사도 내 아이다. 4년 키운. 둘 다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산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밤 12시에 자면서. 피곤하다. 근데 후회는 없다. 민준이 "엄마 사랑해요" 들었으니까.7시부터 9시 반, 하루 중 가장 바쁘고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 09 Dec, 2025
점심은 미팅 겸 식사가 기본값이 된 날들
점심은 미팅 겸 식사가 기본값이 된 날들 오늘도 점심은 샌드위치 오늘 점심 메뉴? 투자자 미팅이다. 어제는? 파트너사 미팅. 그제는? 신입 면접. 벌써 3주째다. 혼자 앉아서 밥 먹은 기억이 없다. 아침 7시 반, 아이들 등원시키고 차에서 먹은 김밥이 첫 끼다. 신호 대기 중에 두 줄 먹고, 주차장 들어가면서 마지막 한 줄. 맛? 기억 안 난다. 삼키기만 했다. "대표님, 오늘 1시 투자사 미팅 있으세요." "네, 알아요. 어디서 만나기로 했죠?" "강남역 근처 이탈리안이요." 또 파스타다. 요즘 파스타만 먹는다. 투자자들이 좋아해서. 내가 먹고 싶은 건 순두부찌개인데, 미팅 테이블에서 순두부찌개 먹는 대표는 없다.씹는 횟수를 세어본 적 있나 점심 미팅은 1시간 30분이었다. 실제로 먹은 시간은? 10분도 안 된다. "저희 서비스가 타겟하는 건요..." 포크질 한 번. "엄마들의 큐레이션 니즈인데요..." 물 한 모금. "MAU는 지난달 대비 23% 증가했고요..." 빵 한 입. 투자자가 묻는다. "대표님, 음식 괜찮으세요? 별로 안 드시네요."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 맛있어요. 그냥 얘기하다 보니." 거짓말이다. 맛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맛을 음미할 시간이 없다. 씹는 건 10번 정도? 삼키는 게 목표다. 미팅 끝나고 나온다. 배는 반쯤 찬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애매하다. 이 상태가 익숙해졌다. 사무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 들른다. 단백질바 두 개 산다. 오후 3시쯤 허기지면 먹는 용도. 이게 요즘 내 간식이자 반 끼니다.혼자 먹는 밥이 사치가 된 이유 4년 전엔 아니었다. 창업 초기, 팀원 3명이었을 때.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회의실 문 닫고 치킨 시켰다. 배달 오는 30분 동안 딴 얘기 했다. 누가 연애한다는 둥, 어제 넷플릭스에서 뭘 봤다는 둥. 그땐 밥이 밥이었다. 지금은? 팀원 15명, 투자자 3곳, 파트너사 10개. 일주일에 미팅이 평균 12개다. 절반이 점심 시간대다. "점심 같이 하시죠." 이 말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거절하면 관계가 틀어진다. "시간 없으세요?" 하는 말투에 서운함이 섞인다. 특히 투자자한테. 돈 받아놓고 밥도 안 같이 먹냐는 뉘앙스. 그래서 받아들인다. 계속. 월요일 투자사, 화요일 파트너사, 수요일 신규 미팅, 목요일 멘토링, 금요일 네트워킹. 점심이 업무의 연장이 됐다. 혼자 먹는 밥? 그건 이제 사치다. 아니, 사실은 외로움이다.엄마의 밥은 애초에 없다 근데 생각해보니 익숙하긴 하다. 엄마 된 이후로, 내 끼니는 늘 마지막이었다. 아이들 먼저 먹이고, 남편 먼저 먹이고, 나는 설거지하면서 남은 거 먹는다. 차가운 밥, 식은 국. 이게 10년이다. 회사 다닐 땐 그래도 구내식당 혼자 앉아서 먹었다. 30분이라도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창업하고? 그 30분도 사라졌다. 아침은 차 안에서, 점심은 미팅하면서, 저녁은 아이들 먹이면서. 내가 언제 제대로 앉아서 먹나 세어봤다. 일주일에 2~3번? 그것도 혼자 사무실에서 컵라면 먹을 때. 여자 대표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밥 먹는 것도 퍼포먼스야. 투자자 앞에선 예쁘게 먹어야 하고, 직원들 앞에선 '대표님도 먹네요' 하는 모습 보여줘야 하고. 진짜 배고픈 건 참아야 해." 맞다. 배고프다고 말하면 약해 보인다. 끼니 거른다고 하면 관리 못 한다고 본다. 특히 여자 대표한테는. 남자 대표들은 "바쁘다"고 하면 멋있다. 나는 "챙겨 먹어야죠" 소리 듣는다. 3500원짜리 삼각김밥의 위안 오늘 미팅 끝나고 배가 고팠다. 편의점 들렀다. 삼각김밥 하나, 바나나우유 하나. 3500원. 차 안에서 먹었다. 다음 일정까지 20분 남았다. 혼자 먹는 유일한 시간이다. 김밥 뜯는다. 한 입 베어 문다. 제대로 씹는다. 20번, 30번. 맛이 느껴진다. 참치마요 맛. 단무지 식감. 밥알 하나하나.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그냥 밥 먹는 게 이렇게 위로가 될 줄 몰랐다. 누구 눈치 안 보고, 말 안 하고, 그냥 먹는 것. 이게 이렇게 그리웠나. 바나나우유 빨대 꽂는다. 한 모금 마신다. 달다. 어렸을 때 먹던 맛이다. 엄마가 사줬던 그 맛. 20분이 금방 지나간다. 알람이 울린다. 다음 미팅 10분 전이다. 김밥 포장지 구겨서 봉투에 넣는다. 백미러 보고 립스틱 고친다. 다시 대표 모드로 돌아간다. 오늘 저녁 메뉴? 아이들 급식 메뉴판 봤더니 햄버거다. 그럼 집에서는 가벼운 거 먹어야지. 샐러드? 아니면 그냥 굶을까. 근데 남편이 문자 보냈다. "오늘 회식이야. 애들 저녁 부탁해." 그래, 어차피 내 저녁은 없었다. 언젠가는 주말이다. 아이들이 놀이터 간다고 한다. 남편이 데리고 나갔다. 2시간 정도 혼자 있을 수 있다. 냉장고 연다. 뭐 먹을까 고민한다. 사실 뭐든 상관없다. 혼자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라면 끓인다. 계란 하나 넣는다. 김치 꺼낸다. 식탁에 앉는다. TV 틀지 않는다. 핸드폰도 뒤집어 놓는다. 그냥 밥만 먹는다. 후루룩 소리 낸다.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 내가 먹고 싶은 소리다. 뜨겁다. 혓바닥이 데인다. 그래도 좋다. 이게 제대로 먹는 거다. 10분 만에 비운다. 국물까지 다 마신다. 배가 든든하다. 진짜 든든하다. 설거지하면서 생각한다. 언젠가는 점심을 점심으로만 먹는 날이 올까. 미팅 없이, 그냥 밥만 먹는 날. 30분 온전히 내 시간인 날. 올 것 같기도 하고, 안 올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괜찮다. 지금도 버티고 있으니까. 35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어차피 엄마의 밥은 늘 남은 밥이었고, 대표의 밥은 늘 업무의 연장이었다. 둘 다인 사람의 밥은? 사치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리고 싶다. 그냥 밥 먹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오늘 점심은 투자사 미팅, 내일 점심도 파트너사 미팅이다. 그래도 괜찮다. 차 안에서 먹는 삼각김밥이 있으니까.
- 08 Dec, 2025
월 매출 8000만원, 이제 이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알겠어
월 매출 8000만원, 이제 이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알겠어 8000만원이라는 숫자 작년 12월이었다. 처음으로 월 매출 8000만원을 찍었다. 팀원들이 박수쳤다. 나도 웃었다. 투자자한테 카톡 보냈다. "8000 찍었습니다!" 답장 왔다. "축하합니다. 손익은요?" 그때 알았다. 나 아무것도 몰랐구나.3년 전 창업했을 때. 내가 꿈꿨던 건 "큰 숫자"였다. 매출 1억. 10억. 100억. 숫자가 크면 성공한 거라고 믿었다. 벤처캐피탈 미팅 갈 때도. "저희 목표는 연 매출 50억입니다"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고개 끄덕였다. 나는 뿌듯했다. 바보였다. 15명의 급여명세서 지난주 금요일 오후 3시. 경리 박대리가 내 책상에 서류 쌓았다. "대표님, 이번 달 급여 확인 부탁드려요." 15장. 직원 15명 급여명세서. 한 장씩 넘겼다. 김주임 세전 320만원. 이과장 세전 450만원. 최대리 육아휴직 복귀, 단축근무, 세전 280만원. 계산했다. 인건비 합계 5200만원. 4대보험 회사 부담분 900만원. 6100만원. 매출 8000만원에서 6100만원. 남는 건 1900만원.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무실 월세 550만원. 강남 위워크, 처음엔 멋있어 보였다. 지금은 그냥 비싼 공간이다. 재고 관리 창고비 200만원. 물류비 300만원. 마케팅비 400만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광고) 세무·법무 자문료 150만원. 각종 SaaS 구독료 80만원. 계산기 두드렸다. 1900만원에서 1680만원. 남은 돈 220만원. 월 매출 8000만원의 정체다. 220만원. 나의 월급은 어디에 최대리가 물었다. 작년 말에. "대표님은 월급 얼마 받으세요?" 웃었다. "나? 나는 남는 거 받지." 그가 눈 커졌다. "그럼 이번 달은요?" "220만원? 그냥 회사 통장에 놔둬야지." "왜요?" "다음 달에 뭐 터질지 모르잖아." 그는 아무 말 안 했다. 미안한 표정이었다. 내가 괜히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대표니까."집에 와서 남편한테 말했다. "이번 달도 월급 못 받았어." 그가 한숨 쉬었다. "그럼 이번 달 생활비는?" "당신 급여로." "다음 달은?" "모르지. 매출 더 나오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손익분기점까지." "그게 언제인데." "곧." 둘 다 알고 있었다. '곧'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걸. 성장의 함정 시리즈A 투자 받을 때. 투자심사역이 물었다. "매출 성장률이 좋네요. 분기별로 20% 이상." "네.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유가?" "성장을 위한 투자입니다." 그는 고개 끄덕였다. 나는 통과했다고 생각했다. 15억 투자 받았다. 기뻤다. 팀원들 데리고 회식했다. "우리 이제 제대로 할 수 있어!" 6개월 뒤. 통장 잔액 9억. 6억이 어디 갔나. 사람 뽑았다. 5명. 개발자 3명, 마케터 1명, 디자이너 1명. 인건비 월 2000만원 증가. 사무실 확장했다. 위워크 더 큰 곳으로. 월세 550만원에서 850만원. 재고 늘렸다. 신제품 론칭. 초기 재고 구매비 1억 2000만원. 계산 안 했다. "투자금 있으니까" 이 생각만 했다. 3개월 전. CFO 역할 하는 공동창업자가 말했다. "대표님, 이러다가 1년 안에 돈 떨어져요." "매출 올리면 되지." "매출 올려도 마진이 너무 낮아요. 지금 구조로는." "그럼 어떻게?" "인건비 줄이거나, 마케팅비 줄이거나, 마진 높이거나." 세 개 다 불가능해 보였다. 사람은 이미 부족했고. 마케팅 안 하면 매출 떨어지고. 마진 높이면 고객이 떠나간다. 그날 밤. 처음으로 알았다. 성장이 곧 성공이 아니라는 걸. 빠르게 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직원들의 얼굴 작년 가을. 김주임이 사표 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냥 다른 기회가 생겨서." 거짓말이었다. 나중에 다른 팀원한테 들었다. "회사가 불안하대요. 계속 적자라고." 가슴이 철렁했다. 다음 날 전체 미팅 소집했다. "우리 회사 상황 투명하게 말할게." 매출 수치 보여줬다. 비용 구조 설명했다. 현금 흐름 공유했다. "우리 아직 적자야. 하지만 손익분기점 가까워지고 있어. 3분기엔 흑자 전환 목표야." 다들 조용히 들었다. 회의 끝나고. 최대리가 내 방에 왔다. "대표님." "응." "저희 급여는 계속 나오는 거죠?" "당연하지." "대표님 급여는요?" "...나는 괜찮아." 그가 나갔다. 혼자 남았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책임진 건 숫자가 아니구나. 15명의 생계구나. 피로도라는 숫자 새벽 5시 알람. 일어났다. 아이들 깨기 전 2시간. 노트북 켰다. 슬랙 확인. 메시지 42개. 이메일 확인. 읽지 않음 67개. 커피 내렸다. 첫 모금. 손목 시계 봤다. 만보기 기능. 어제 걸음 수 3200걸음. 권장량의 절반도 안 된다. 운동? 올해 헬스장 두 번 갔다. 거울 봤다. 다크서클. 흰머리 또 늘었다. 38세. 50세처럼 보인다. 체중계 올라갔다. 54kg. 결혼 전 48kg. 살 빠지는 게 아니라. 근육 빠지고 뱃살 붙는 거다. 지난달 건강검진. 의사가 물었다. "스트레스 많으세요?" "네." "수면 시간은?" "5시간?" "운동은?" "...못 하고 있어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간수치 높고, 혈압 경계선이에요. 30대인데." 처방전 받았다. 영양제 3종. 수면제 1종. 약국에서 계산했다. 월 6만원. 웃겼다. 직원들 건강검진비는 회사가 내면서. 내 건강은 뒷전이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 어제 저녁. 7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야?" "회사 대표지." "대표가 뭔데?" "음... 일을 만드는 사람?" "재밌어?" "...응. 재밌어." 거짓말이었다. 재밌는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다. 근데 또 거짓말만은 아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고객 한 명이 메일 보냈다. "대표님 회사 덕분에 애 키우는 게 조금 덜 힘들어졌어요. 큐레이션 해주시는 제품들 다 좋더라고요. 감사합니다." 그날 울었다. 사무실에서. 혼자. 지난주 화요일. 최대리가 말했다. "대표님, 저 여기 와서 일하는 게 처음으로 의미 있게 느껴져요. 전 직장에서는 그냥 부품 같았거든요." 그날도 울었다. 화장실에서. 혼자. 이런 순간들. 8000만원이 의미하는 진짜 이유. 계산법이 바뀌었다 요즘은 계산기 두드릴 때. 순서가 바뀌었다. 예전: 매출 - 비용 = 이익 지금: 매출 - 인건비 - 나의 건강 - 가족 시간 = ? 답이 안 나온다. 계산이 안 된다. 근데 이게 맞는 것 같다. 이번 달 매출 8500만원 찍었다. 예전 같으면 좋아했을 거다. 근데 어제 계산했다. 인건비 6100만원. 고정비 1700만원. 남은 돈 700만원. 예전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이번 달 내가 받은 것:수면 시간: 하루 5시간 아이들과 시간: 주말 4시간 남편이랑 대화: 주 2회 30분 나를 위한 시간: 0계산이 맞나? 700만원이 이걸 보상하나? 모르겠다. 손익분기점이라는 착각 투자자들은 묻는다. "손익분기점 언제 돌파하시겠어요?" 나는 답한다. "3분기 목표입니다." 그들은 고개 끄덕인다. 근데 나는 안다. 손익분기점 돌파해도. 내 손익분기점은 안 돌파한다는 걸. 회사가 흑자 나는 순간. 나는 여전히 적자다. 건강 적자. 가족 적자. 나 자신 적자. 지난주 여성 CEO 모임. 10명 모였다. 한 언니가 물었다. "다들 본인 월급 받고 있어?" 7명이 손 안 들었다. "건강검진 제대로 받은 사람?" 4명만 손 들었다. "가족들이 이해해줘?" 침묵. 우리 다 알고 있었다. 성공의 대가를. 숫자 뒤의 숫자를. 그래도 계속하는 이유 오늘 아침. 딸이 학교 가면서 말했다. "엄마, 우리 반 친구가 그러는데 엄마가 회사 대표래. 진짜야?" "응." "멋있다!" 그 한마디에. 지난 4년이 의미 있어졌다. 계산이 안 맞는다. 숫자가 안 맞는다. 손익이 안 맞는다. 그래도 한다. 왜? 잘 모르겠다. 아마도. 8000만원이라는 숫자 뒤에. 15명의 월급날 웃음이 있고. 고객들의 감사 메일이 있고. 딸의 "멋있다" 한마디가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서. "여자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엄마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를. 새로운 계산법 요즘 내 계산법: 월 매출 8000만원 = 직원 15명의 안정 = 나의 피로도 120% = 가족의 이해와 희생 = 내일에 대한 불안 60% = 그래도 계속하는 이유 100% 답은 여전히 안 나온다. 근데 이제 알겠다. 답이 안 나오는 게 정상이라는 걸. 모든 창업자가 이 계산을 한다는 걸.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간다는 걸. 다음 달 목표. 매출 9000만원. 근데 그것보다. 내 진짜 목표.주 1회 아이들 등교 같이하기 남편이랑 데이트 1회 나를 위한 시간 주 2시간 직원들 얼굴 더 자주 보기 커피 대신 물 마시기숫자로 안 되는 것들. 근데 이게 더 중요한 것들. 이제 알겠다. 8000만원이 뭘 의미하는지. 성공의 숫자가 아니라. 과정의 숫자라는 걸. 끝이 아니라 중간이라는 걸. 그리고 이 중간을 버티는 게. 진짜 경영이라는 걸.계산기를 덮었다. 내일 또 두드리겠지만, 오늘은 이만.
- 07 Dec, 2025
여성 CEO 네트워크가 유일한 힐링인 이유
여성 CEO 네트워크가 유일한 힐링인 이유 월요일 아침의 슬랙 메시지 월요일 오전 7시 52분. 아이들 등원시키고 출근 중이다. 신호 대기 중에 슬랭 확인했다. "여성 CEO 모임" 채널에 메시지 하나. "오늘 너무 힘들어요. 투자자 미팅에서 또 그 질문 받았어요. '아이 있으시죠? 밤 늦게까지 일할 수 있으세요?' 남자 대표들한테도 물어보나요?" 답장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나도 어제 똑같은 질문 받았어." "나는 '남편이 육아 도와주시죠?'였어." "'여자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이건 진짜." 신호 바뀌었다. 핸드폰 내려놓았다. 근데 가슴이 먹먹하다. 울컥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처음 만난 날 3년 전이다. 스타트업 행사였다. 남자 대표들 사이에 여자는 나랑 박대표 둘뿐이었다. 네트워킹 시간. 명함 주고받는 시간. "몇 명 데리고 계세요?" "투자 얼마나 받으셨어요?" "매출은요?" 박대표랑 나만 받는 질문이 따로 있었다. "결혼하셨어요?" "애는요?" "시간 관리 어떻게 하세요?" 화장실에서 마주쳤다. 서로 보고 웃었다. "진짜 웃기죠?" "매번 이래요." 그날 카톡 주고받았다. 지금까지 매일 얘기한다. 박대표가 처음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시작.롤모델이 없다는 것 창업 초기에 멘토를 찾았다. 성공한 여성 창업가. 아이 키우면서 회사 키운 사람. 한국에 몇 명 없다. 책도 거의 없다. 인터뷰도 드물다. 있어도 "슈퍼우먼" 스토리다. "새벽 4시 기상해서 운동하고 명상하고 아이들 도시락 싸고 회사 가서 12시간 일하고 저녁에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밤에 독서합니다." 이건 롤모델이 아니다. 이건 SF다. 남자 CEO들은 다르다. "저는 가족이 있어서 더 열심히 합니다." "아내가 뒷바라지 잘 해줘서 감사합니다." 그 말 할 때 누구도 안 물어본다. "집안일은 누가 해요?" "아이 아프면 누가 병원 가요?" 롤모델 없으면 어떻게 하나. 직접 만드는 거다. 같이. 목요일 밤 10시 줌 2주에 한 번. 목요일 밤 10시. 여성 CEO 모임 줌 미팅이다. 아이들 다 재웠다. 남편은 거실에서 넷플릭스. 나는 방에서 노트북 켰다. 7명이 접속한다. 얼굴 보면 안다. 다들 피곤하다. 다크서클 짙다. 근데 웃는다. "오늘 직원이 '대표님은 애 키우면서 어떻게 해요?' 물었어요. 진짜 어떻게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다들 웃는다. 공감의 웃음. "나는 오늘 아들이 '엄마는 맨날 회사만 가'래요. 찔렸어요." "나는 시어머니가 '사업은 남자들이 하는 거'래요. 2024년에." 말 한마디씩 할 때마다 고개 끄덕인다. 설명 안 해도 된다. 알아서 이해한다. 이게 힐링이다.조언이 아닌 공감 이 모임에서 배운 게 있다. 우리는 서로한테 조언 안 한다. "이렇게 해봐." "너는 이게 문제야." "내가 볼 땐..." 이런 말 안 한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도 그랬어." "진짜 힘들었겠다." "잘하고 있어." 왜냐면 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안다. 뭘 해야 하는지 안다.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다. 필요한 건 "너 혼자 아니야" 그 말이다. 작년 11월이었다. 투자 유치 엎어졌다. 3개월 준비한 시리즈A. 마지막에 무산됐다. 이유가 가관이었다. "대표님이 육아 부담이 크실 것 같아서요. 올인 가능하신가 확신이 안 서서요." 남자 공동대표 있었는데 그한테는 안 물었다. 그날 밤 모임에서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이 낳은 게 잘못인가." 아무도 "괜찮아" 안 했다. 대신 최대표가 말했다. "잘못 없어. 씨발, 잘못 없어." 그 말이 위로였다. 서로의 롤모델 지난주 김대표가 시리즈B 받았다. 50억. 여성 창업가 최대 규모. 모임에서 축하했다. 근데 김대표가 울었다. "너희가 없었으면 못 했어. 진짜로." 김대표 3년 전 생각난다. 투자 미팅마다 떨어졌다. 이유는 항상 비슷했다. "여성 타겟 시장은 작아요." "감성적 접근보다 데이터가 필요해요." "대표님 너무 부드러우세요. 강한 리더십이..." 모임에서 매번 토해냈다. 우리는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김대표가 말했다. "나 여성 투자자 찾아볼래. 이 바닥에 분명 있을 거야." 6개월 걸렸다. 여성 벤처캐피털리스트 찾았다. 한 번에 통과했다. 김대표가 우리 롤모델이다. 우리가 김대표 롤모델이다. 서로한테 배운다. 서로 보면서 간다. 이게 네트워크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오늘 오후 3시. 학교에서 전화 왔다. "아이가 열이 나요. 데리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투자자 미팅 30분 전이었다. 패닉했다. 남편은 회의 중. 친정엄마는 병원. 어떡하지. 미팅 취소하나. 근데 이거 두 달 잡은 건데. 슬랙에 "SOS" 쳤다. 3분 만에 답장 5개. "내가 픽업할게. 우리 아이 학교 근처잖아." "끝나고 우리 집에서 재워도 돼." "미팅 파이팅. 걱정하지 마." 박대표가 우리 딸 데리러 갔다. 자기 아들이랑 같이 재웠다. 미팅 잘 끝났다. 15억 투자 확정. 저녁에 아이 데리러 갔다. 박대표한테 고맙다고 백 번 말했다. "우리끼리 이래야지. 누가 우릴 이해하겠어." 맞다. 우리끼리다. 약한 모습 보여도 되는 곳 회사에서는 강해야 한다. 직원들 앞에서 흔들리면 안 된다. 투자자한테는 더 단단해야 한다. 집에서는 엄마다. 아이들한테 의지하면 안 된다. 남편한테도 다 말 못 한다. "또 회사 얘기?" 그 말이 무섭다. 그럼 어디서 약해지나. 이 모임이다. 여기서는 울어도 된다. 화내도 된다. 무너져도 된다. "못 하겠어." 말해도 된다. 왜냐면 다들 안다. 그래도 내일 다시 한다는 거. 약한 모습 보인다고 무시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도 그래" 돌아온다. 이게 안전한 공간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요즘 생각한다. 우리가 롤모델 없이 시작했다. 근데 우리 다음은 다를 거다. 지금 20대 여성 예비창업가들이 본다. 우리를. "아이 키우면서도 되는구나." "혼자 아니구나." "나도 할 수 있겠다." 이게 우리가 만드는 거다. 매달 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 슬랙에 올리는 고민. 서로 돕는 그 순간들. 전부 기록이다. 다음 세대한테 주는. 완벽한 롤모델 아니어도 된다. 그냥 계속 가면 된다. 같이. 내일 또 만난다 지난주 모임 끝날 때였다. 신입 멤버가 있었다. 창업 1년차. 30대 초반. "언니들 보니까 용기 나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표가 웃으면서 말했다. "할 수 있어. 근데 쉽진 않아. 그래도 우리 있잖아." 그 말에 다들 고개 끄덕였다. 쉽진 않다. 맞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 피곤하다. 캘린더 보면 한숨 나온다. 아이들 미안하다. 남편한테 미안하다. 나한테도 미안하다. 근데 포기는 안 한다. 왜냐면 혼자가 아니니까. 2주 뒤면 또 목요일 밤 10시다. 노트북 켜고 줌 접속한다. 7명의 얼굴 본다.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2주 버틴다.혼자면 못 간다. 같이면 간다.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