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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미팅에서 나를 보지 않고 '아이 있는 여자'를 본다는 생각

투자자 미팅에서 나를 보지 않고 '아이 있는 여자'를 본다는 생각

투자자 미팅에서 나를 보지 않고 '아이 있는 여자'를 본다는 생각 그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아이 있으시죠?" 투자자가 웃으며 물었다. 미팅 시작 5분. 우리 서비스 설명도 안 끝났다. 숫자도 안 보여줬다. "네, 둘 있습니다." "아, 그럼... 시간 관리가 좀 어려우시겠네요?"옆에 앉은 공동창업자한테는 안 물었다. 그도 초등학생 아들 있다. 지난주 다른 VC 미팅. 똑같은 질문 나왔다. "육아하면서 회사 운영이 가능하세요?" 가능하니까 4년째 하고 있다. 월 매출 8000만원 찍고 있다. 근데 그 말은 안 나왔다. 그냥 웃었다. "네, 괜찮습니다." 집에 와서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남자 대표들은 받지 않는 질문 작년에 시리즈A 15억 받았다. 투자 미팅 12번 다녔다. 8번은 아이 얘기가 먼저 나왔다. 숫자보다 먼저. 팀보다 먼저. "결혼하셨어요?" "애 몇 살이에요?" "남편 분은 뭐 하세요?" 같은 업계 남자 대표 친구가 있다. 그도 아이 둘이다. 걔한테 물어봤다. "투자 미팅에서 육아 질문 받아?" "응? 한 번도."그 친구가 말했다. "오히려 '가정도 잘 챙기시는구나' 이러던데?" 같은 상황인데 다른 평가. 남자는 '균형잡힌 리더'. 여자는 '집중 못 하는 엄마'. 이게 2024년이다. 의심과 싸우는 에너지 투자자들이 궁금한 건 안다. '이 사람이 회사에 올인할 수 있나?' 정당한 질문이다. 근데 남자한테는 안 물으면서 나한테만 묻는 건 뭐냐. 아이 있는 남자는 책임감 있는 거고, 아이 있는 여자는 위험부담인 건가. 작년 여름, 어떤 VC 대표가 말했다. "김대표님, 솔직히 여자 창업가는 출산하면 회사가 흔들리잖아요." 나 이미 둘 낳았다. 그 사이에 회사 키웠다. 근데 그 사람 눈엔 안 보인다. 내가 한 일이. 보이는 건 '여자', '엄마', '리스크'.그날 미팅 끝나고 화장실 가서 10분 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내가 뭘 더 증명해야 하나.' 숫자로 말해도 안 보이는 것들 우리 회사 재구매율 68%. 업계 평균 42%. 고객 만족도 4.8점. NPS 72점. 직원 이직률 5%. 스타트업 평균의 절반. 다 숫자다. 감정 아니다. 팩트다. 근데 투자자가 보는 건 내 결혼반지. "남편 분이 도와주시나요?" 도와준다. 근데 그게 왜 중요하냐. 남자 대표한테 "부인 분이 도와주세요?" 안 묻잖아. 작년에 만난 여성 투자자가 달랐다. "팀 구성 좋네요. 여성 비율이 경쟁력이겠어요." "재구매율 이 정도면 PMF 확실한데, 다음 마일스톤은요?" 질문이 달랐다. 사업을 봤다. 나를 봤다. 엄마를 본 게 아니라. 그 사람한테서 투자 받았다. 5억. 피곤하다는 말 못 하는 이유 요즘 체력이 한계다. 새벽 5시 기상. 밤 12시 취침. 7시간 자면 다행. 지난주 몸살났다. 열 38도. 약 먹고 미팅 나갔다. 7시간 동안 5곳. 남편이 말했다. "쉬면 안 돼?" 쉬고 싶다. 근데 못 쉰다. 쉬면 '역시 여자는' 소리 들을까봐. 남자 창업가 친구들 보면 편하게 말한다. "어제 술 먹어서 죽겠네." "주말에 골프 쳤더니 피곤해." 나는 못 한다. "아이가 아파서" 말도 조심스럽다. '애 핑계 대네' 소리 들을까봐. 작년에 딸 독감 걸려서 미팅 한 번 미뤘다. 상대 대표가 이해한다고 했는데, 어조가 달랐다. '역시 아이 있으면 이래서...' 그 뉘앙스. 다음부터는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했다. 완벽해야만 믿는 세상 남자는 70% 해도 잠재력 보고 투자한다. 여자는 120% 해도 의심부터 한다. 이게 내가 4년 느낀 거다. 남자 대표 피칭 보면 비전 얘기한다. 꿈 얘기한다. "10년 후엔 이렇게 될 겁니다." 박수 나온다. "패기 있네요." 내가 똑같이 말하면 다르다. "구체적 실행 계획은요?"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꿈 얘기하면 '현실감 없다'. 숫자 얘기하면 '비전이 작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준비한다. 피칭 자료 50장. 예상 질문 100개. 다 외운다. 근데 그것도 지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여성 창업가 선배가 말했다. "우리는 2배 잘해야 동등하게 평가받아." 맞다. 근데 공평하지 않다. 아이를 숨기고 싶지 않다 딸이 어제 물었다. "엄마는 왜 맨날 일해?" "엄마가 회사 대표거든. 책임이 있어." "그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이면서 대표다. 둘 다 나다. 근데 세상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 엄마면 대표 못 하고, 대표면 엄마 자격 없고. 왜 남자는 둘 다 해도 되는데 나는 안 되냐. 예전에는 미팅 갈 때 아이 얘기 안 했다. 사무실에 아이 사진도 안 뒀다. '엄마' 티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근데 요즘은 당당하게 말한다. "네, 아이 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 관리 더 잘합니다." "육아 경험이 우리 서비스 인사이트가 됐어요." "우리 타겟이 워킹맘인데, 제가 바로 그 고객이죠." 의심하는 투자자도 있다. 근데 믿어주는 곳도 있다. 그 곳에 집중한다. 바뀌지 않는 질문들 이번 주도 미팅 3개 있다. 또 물을 거다. "아이 있으세요?" 이제는 대답이 준비돼 있다. "네, 초등 2학년, 6살 있습니다. 둘 다 건강하고요, 저도 건강합니다. 우리 회사도 건강합니다. 숫자 보시죠." 웃으면서 말한다. 근데 속으론 피곤하다. 언제까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하나. 언제쯤 내 사업을 먼저 볼까. 언제쯤 나를 '대표'로 먼저 볼까. 남편이 어제 말했다. "당신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고맙다. 근데 이해는 못 할 거다. 남자니까. 그 질문 안 받아봤으니까. 여성 CEO 모임에서 언니들 만나면 다들 안다. 말 안 해도 안다. 다 겪었으니까. "오늘도 그 질문 받았어?" "받았지." 웃는다. 근데 웃음이 씁쓸하다. 증명은 끝이 없다 월 매출 8000만원 찍었을 때 좋았다. '이제 인정받겠지.' 근데 다음 질문이 나왔다. "스케일업 계획은? 더 키울 수 있어요?" 남자 대표는 '성장 가능성' 본다. 나는 '한계' 묻는다. 손익분기점 넘었을 때도 마찬가지. "지속가능한가요? 아이 키우면서 이 속도 유지 가능해요?" 뭘 해도 부족하다. 완벽해도 의심한다. 근데 포기는 못 한다. 내 뒤에 후배들이 있다. 나를 보고 있다. "김대표님처럼 저도 창업하고 싶어요." "아이 있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 들으면 힘난다. 그래서 계속한다. 결국 내가 증명할 것 5년 후에는 달라질까. 10년 후에는? 모르겠다. 근데 일단 나는 한다. 회사 키운다. 매출 올린다. 직원 행복하게 한다. 아이들도 잘 키운다. 둘 다 한다. 누가 뭐래도 한다. 투자자 미팅에서 나를 안 볼 수도 있다. '아이 있는 여자'만 볼 수도 있다. 근데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고객은 내 성별 안 본다. 서비스를 본다. 직원들도 내 육아 안 본다. 리더십을 본다. 결국 증명되는 건 사업이다. 나는 그걸 믿는다.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아이들 깨우고, 밥 먹이고, 웃으면서 안아준다. 그리고 회사 간다. 미팅 간다. 또 그 질문 받는다. 대답한다. 웃으면서. 속으로는 센다. 몇 번째 질문인지. 100번째 되면 책 쓸까 싶다. '투자자들이 여성 창업가에게 묻는 100가지 질문' 팔릴 것 같다. 공감할 사람 많을 거다.오늘도 증명한다. 나는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고. 계속할 거라고.

육아용품 이커머스라는 선택, 엄마로서의 경험이 경쟁력이 되다

육아용품 이커머스라는 선택, 엄마로서의 경험이 경쟁력이 되다

육아용품 이커머스라는 선택, 엄마로서의 경험이 경쟁력이 되다 시작은 아기 물티슈였다 둘째를 낳고 3개월쯤 됐을 때다. 새벽 2시에 기저귀를 갈다가 물티슈가 떨어졌다. 예비로 사둔 게 있었는데, 뜯어보니 완전히 다른 제품이었다. 향이 너무 강했다. 아기 엉덩이에 닿자마자 빨갛게 올라왔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산 게 뭔지도 모르고 샀다는 걸.새벽에 검색했다. "물티슈 추천", "아기 물티슈 순위", "민감성 피부 물티슈". 나온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블로그는 광고 같고, 커뮤니티는 의견이 너무 많고, 쇼핑몰은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포기하고 샀다. 제일 비싼 걸로. 다음날 남편한테 물었다. "이거 뭐 보고 샀어?" 남편도 몰랐다. 그냥 급해서 샀다고. 우리는 한 달에 물티슈만 8만원어치를 쓰고 있었다. 뭘 쓰는지도 모르고. 11번가 MD 시절의 의문 나는 11번가에서 5년간 MD를 했다. 생활용품 카테고리였다. 육아용품도 담당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카테고리인지. 데이터만 봤다. 판매량, 클릭률, 전환율. 숫자로만 제품을 평가했다. "이 제품이 왜 팔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팔리면 그만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들이 뭘 원하는지. 단순히 "좋은 제품"이 아니었다. "내 아이에게 맞는 제품"이었다. 그 차이는 엄청났다.11번가에서 제일 많이 팔린 물티슈가 있었다. 한 달에 15만 개씩 나갔다. 나도 그걸 샀다. 둘째한테 써봤다. 피부에 안 맞았다.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이게 제일 잘 팔리는데, 왜 내 아이한테는 안 맞지?" 답은 간단했다. 모든 아이가 다르니까. 근데 이커머스는 그걸 반영 못 했다. 그냥 "베스트셀러" 배지만 달아놨다. 엄마들은 그걸 믿고 샀다. 나처럼. 퇴사를 결심한 건 그 순간이었다. 2019년 8월 23일. 둘째가 돌 지나고 복직한 지 3개월째. 회사 화장실에서 울면서 사표를 썼다. 엄마 100명을 만났다 창업하기 전에 3개월간 엄마들을 만났다. 카페에서, 놀이터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100명 넘게 인터뷰했다. 질문은 하나였다. "육아용품 살 때 제일 어려운 게 뭐예요?" 답은 비슷했다.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보가 너무 많아요." "광고인지 진짜 후기인지 구분이 안 돼요." 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내 아이랑 비슷한 아이 키우는 엄마가 추천해주면 좋겠어요. 딱 우리 애 상황에 맞는 거요." 그게 답이었다. 나는 노트에 정리했다. "개인화된 큐레이션. 아이 개월 수, 피부 타입, 알레르기 여부에 따라 다른 추천."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건데, 당시엔 아무도 안 하고 있었다.인터뷰하면서 깨달은 게 또 있다. 엄마들은 엄청 똑똑했다. 성분표를 외우고, 제조사를 비교하고, 해외 직구까지 했다. 그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이걸 한 곳에 모으면 되겠다 싶었다. "엄마들의 경험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자." 첫 번째 MVP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였다. 엄마들이 쓴 제품 리뷰를 수작업으로 정리했다. 개월 수별로, 피부 타입별로, 가격대별로. 밤새 작업했다. 아이들 재우고 새벽 3시까지. 한 달 만에 300개 제품 정보가 쌓였다. 지인 엄마들한테 공유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이거 돈 내고 쓰고 싶어요." 그 말이 확신을 줬다. 투자자들의 질문 시드 투자를 받으러 다닐 때였다. 20곳 넘게 미팅했다. 대부분 남자였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질문이 비슷했다. "이거 왜 필요해요? 그냥 쿠팡에서 사면 되지 않나요?" 설명했다. 쿠팡은 빠르지만 선택을 안 도와준다고. 엄마들은 빠른 배송보다 정확한 선택을 원한다고. 특히 아이 피부에 닿는 건. "아, 그렇군요. 근데 시장이 작지 않나요?" 작지 않다. 한국 육아용품 시장 규모가 8조다. 이커머스 비중이 40%고 계속 늘어난다. 숫자를 댔다. "아, 네. 그런데... 대표님, 아이 키우면서 회사 운영 가능하세요?" 그 질문이 제일 많았다. 20곳 중 15곳에서 물었다. 남자 창업자한테는 안 물어본다는 거 안다. 근데 나한테는 물었다. 처음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시간 관리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열 번째쯤 되니까 화가 났다. "대표님은 아이 있으세요? 있으시면 제게 그런 질문 안 하셨을 거예요." 그렇게 말한 곳에서 투자가 들어왔다. 아이러니했다. 그 파트너도 나중에 말했다. "솔직함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화가 진심이 느껴졌어요." 시드로 3억 받았다. 2020년 2월. 코로나 터지기 직전이었다. 코로나가 준 기회 코로나는 재앙이었다. 근데 우리한테는 기회였다.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았다. 엄마들이 아이 데리고 백화점 가기 힘들어졌다. 온라인으로 다 해결해야 했다. 우리 가입자가 폭증했다. 한 달에 1000명씩 늘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물량이었다. 공급사들이 재고를 안 줬다. 큰 플랫폼한테만 줬다. 우리는 작았으니까. 직접 발로 뛰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물티슈 공장을 찾아갔다. 대표님을 만났다. 60대 남자분이었다. "저희한테 물량 좀 주세요. 조금만이라도요." "당신네 회사는 작잖아. 왜 줘야 하는데?" 설명했다. 우리 플랫폼에 있는 엄마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제품을 고르는지. 한 번 좋다고 하면 계속 산다고. 그게 브랜드한테 얼마나 가치 있는 충성 고객인지. "내 딸도 애 키워. 힘들어해. 당신 말 이해간다." 그분이 물량을 줬다. 작은 거래처보다 더 많이. 그게 첫 번째 브랜드 파트너십이었다. 지금도 거래한다. 엄마 직원들과의 약속 직원을 뽑기 시작했다. 첫 조건은 "육아 경험"이었다. 엄마가 아니어도 됐다. 조카를 키운 경험, 동생을 돌본 경험, 뭐든 좋았다. 육아를 이해하는 사람. 지금 15명 중 12명이 엄마다. 워킹맘이다. 나를 포함해서. 첫 팀 미팅 때 약속했다. "학교 행사는 무조건 간다. 누구도 눈치 안 준다. 나도 간다." 실천하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다. 근데 노력한다. 지난주에 우리 팀 디자이너가 아이 학예회 때문에 오후 2시에 조퇴했다. 아무도 뭐라 안 했다. 당연한 거니까. 그 대신 일할 때는 집중한다. 회의는 30분 넘기지 않는다. 슬랙 메시지는 핵심만 쓴다. 야근은 절대 미덕이 아니다. 효율이 올라갔다. 남자 직원들도 좋아한다. "여기는 일과 삶이 확실히 분리돼요." 그 말이 제일 뿌듯하다. 데이터로 본 엄마의 선택 지금 우리 플랫폼에 2만 명이 있다. 월 거래액이 8000만원이다. 작다. 근데 의미 있는 숫자가 있다. 재구매율 78%. 고객이 한 번 사면 평균 5.3번 더 산다. 이게 우리의 경쟁력이다. 큰 플랫폼은 30%도 안 된다. 왜 다시 올까. 데이터를 분석했다. 답은 간단했다. "맞았으니까." 우리는 아이 정보를 받는다. 개월 수, 피부 타입, 알레르기, 이전에 쓴 제품. 그걸 바탕으로 추천한다. 엄마들이 후기를 남긴다. "정말 우리 애한테 딱 맞아요." 그 후기가 다른 엄마한테 간다.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한테. "우리 애랑 똑같네요. 저도 사봐야겠어요." 선순환이다. 지난달에 제일 많이 팔린 제품은 대형 브랜드가 아니었다. 소규모 제조사의 무향 물티슈였다. 알레르기 있는 아이 엄마들이 찾았다. 광고 하나 안 했는데 500개가 팔렸다. 그 제조사 대표님이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주문이 몰려서..." 설명했다. 우리 플랫폼의 가치를. "좋은 제품은 알아서 팔립니다. 엄마들이 찾아내니까요." 실패도 있었다 다 좋은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작년에 AI 추천 시스템을 도입했다. 6개월 개발했다. 2억 들어갔다. 론칭했다. 망했다. 왜? 엄마들이 안 믿었다. "이게 진짜 내 아이한테 맞는 거예요?" 알고리즘이 뭔지 설명해도 안 믿었다. "다른 엄마가 추천해주는 게 더 좋아요." 깨달았다. 기술이 답이 아니었다. 공감이 답이었다. 엄마들은 데이터보다 경험을 믿었다. "나도 그랬어요"라는 말이 알고리즘보다 강했다. AI 시스템 버렸다. 대신 "엄마 매칭" 기능을 만들었다.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끼리 연결해주는 거. 서로 제품을 추천하고 경험을 나눈다. 이게 먹혔다. 체류 시간이 3배 늘었다. 실패가 방향을 알려줬다. 우리는 기술 회사가 아니었다. 커뮤니티 회사였다. 딸아이의 질문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딸아이 학교 공개 수업이 있었다. 참석하기로 했다. 캘린더에 블록해뒀다. 근데 당일 아침에 투자자 미팅 요청이 왔다. 그날 점심밖에 시간이 없다고. 시리즈B 리드 투자자였다. 거절하기 어려웠다. 딸한테 말했다. "미안해, 엄마가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딸이 물었다. "엄마 회사가 애기 키우는 엄마들 도와주는 거 아니에요?" 할 말이 없었다. 미팅을 거절했다. 학교에 갔다. 딸이 손을 잡았다. "엄마가 오니까 좋아요." 그 말에 울컥했다. 회사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엄마들을 돕겠다면서 정작 내 딸한테는 못 해주고 있는 건 아닌지. 답은 아직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있다. 이 고민 자체가 나의 경쟁력이다. 이걸 이해하는 사람만이 이 사업을 할 수 있다. 시리즈A 투자 후 올해 초에 시리즈A를 받았다. 15억이었다. 밸류는 80억. 투자 설명회에서 한 말이 있다. "우리는 육아용품을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엄마들의 경험을 유통하는 회사입니다." 어떤 투자자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엄마로 산다는 건 매일 선택의 연속입니다. 뭘 먹일지, 뭘 입힐지, 뭘 발라줄지. 그 선택이 아이의 건강과 직결됩니다. 근데 정보는 너무 많고 시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같은 경험을 한 엄마들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그게 가장 정확한 추천입니다." 투자가 결정됐다. 리드 투자자가 말했다. "대표님의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이건 단순한 이커머스가 아니에요." 맞다. 이건 단순한 이커머스가 아니다. 내 삶이다. 지금 이 순간 새벽 5시다. 아직 어둡다. 커피를 내렸다. 노트북을 켰다. 어제 못 본 슬랙 메시지가 37개다.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객 후기였다. "제 아기가 아토피가 심했는데, 여기서 추천받은 로션 쓰고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잘하고 있다고. 힘들지만 의미 있다고. 창 밖이 밝아온다. 6시가 됐다. 딸아이가 일어날 시간이다. 노트북을 덮는다. 아침을 준비한다. 엄마로서의 삶과 대표로서의 삶. 둘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 없다. 근데 그게 내 강점이다. 두 삶이 겹치는 곳에서 비즈니스가 나왔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엄마이자 대표로서. 완벽하지 않지만 진심을 담아서.육아 경험이 경쟁력이 될 줄 몰랐다. 근데 됐다. 이게 내 무기다.

11번가 MD 경력, 그것이 자산이 되고 때론 족쇄가 되는 이유

11번가 MD 경력, 그것이 자산이 되고 때론 족쇄가 되는 이유

11번가 MD 경력, 그것이 자산이 되고 때론 족쇄가 되는 이유 명함 때문에 받는 첫 미팅 "11번가 MD 출신이시라고요?" 투자자 미팅마다 듣는 말이다. 눈빛이 달라진다. 기대가 올라간다. "그럼 숫자는 잘 보시겠네요." "바이어 관리 경험 많으시죠?" "대기업 시스템 아시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시면 되죠?" 그럴 때마다 대답한다. "네, 그렇죠." 웃으면서. 속으로는 안다. 이 기대가 독이 될 거라는 걸.11번가에서 배운 것들 6년 했다. 육아용품 카테고리 MD. 월 매출 50억 관리했다. 바이어 200개 사 담당했다. 프로모션 기획하고, 수수료 협상하고, 재고 관리하고. 잘했다. 승진도 빨랐다. 팀장 달고 나올 뻔했는데 창업했다. 그때 배운 것들:데이터 보는 법 바이어 설득하는 법 프로모션 시즌 감 잡는 법 대량 거래 협상 노하우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법지금도 쓴다. 매일 쓴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자산이 되는 순간들 시리즈A 투자 받을 때였다. "김대표님, 이 conversion rate가 왜 떨어졌죠?" "재구매율이 작년 대비 어떻게 되나요?" "카테고리별 수익률 구조 설명 가능하세요?" 다 대답했다. 숫자로. 근거 대면서. 투자자가 고개 끄덕였다. "역시 경력자는 다르네요." 그날 15억 받았다. 직원 뽑을 때도 도움된다. 이력서 볼 때, 면접 볼 때, '실무'가 뭔지 아니까. 허상 거르는 게 빠르다. 바이어 미팅도 마찬가지. "11번가에서 일하셨다고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신뢰가 올라간다. 경력이 문 여는 열쇠일 때가 있다. 분명히 있다. 족쇄가 되는 순간들 그런데. "11번가 출신인데 왜 이렇게 밖에 안 돼요?" 시리즈B 준비하면서 들은 말이다. 다른 VC였다. "월 매출 8000만원이요? 이 정도면... 좀 아쉬운데요." "대기업 출신이면 네트워크가 있을 텐데, 왜 입점 브랜드가 이것밖에 안 되죠?" "시스템도 아직 이 정도예요? 11번가 계셨으면 훨씬 체계적일 줄 알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11번가는 직원 수천 명에 인프라 다 깔려 있는 곳이었다. 나는 MD 한 명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대표고, 직원 15명이고, 돈 없고, 시스템 없고, 모든 걸 직접 해야 한다. 비교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사람들은 비교한다. 경력 때문에.실패의 무게가 다르다 작년 크리스마스 프로모션 망했다. 광고비 2000만원 썼는데 매출 3500만원 나왔다. 마진 거의 없다. 손해다. 그냥 망한 거다. 스타트업에서 흔한 일이다. 근데 투자자 보고할 때: "김대표님, 11번가에서 프로모션 많이 하셨잖아요. 이건 좀 실망이네요." 직원들 앞에서도: "대표님 경력으로 이 정도는 피하셨어야죠." 남편한테도 들었다: "여보, 11번가 다닐 때는 이런 실수 안 했잖아." 경력이 없는 대표들은 '배우는 과정'이라고 포장된다. 나는 '실수'가 된다. 기준이 다르다. 관대함이 없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 아이들 깨기 전에 일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르다. '경력자인데 이것도 못 하냐'는 소리 듣기 싫어서다. 경쟁사 대표는 나보다 어리다. 경력 없다. 근데 우리보다 빠르게 큰다. 사람들은 말한다. "김대표님은 경력이 있으니까 곧 따라잡으시겠죠?" 압박이다. 기대가 압박이 된다. 매일 더 해야 한다. 경력값을 해야 한다. 증명해야 한다. 지친다. 11번가 동기들과의 거리 작년에 동기 만났다. 11번가 동기. 얘는 아직 거기 있다. 이제 팀장이다. 연봉 8500만원. "너 회사 어때? 잘 돼?" "응, 그럭저럭." 거짓말이다. 잘 안 된다. 힘들다. 근데 말 못 한다. "11번가 그만두고 창업했는데 잘 안 돼"라고 하면, 그게 곧 '실패'가 되니까. 동기는 묻는다. "그래도 재밌지? 자유롭고?" "응, 재밌어." 이것도 반쯤 거짓말이다. 재밌긴 한데, 자유롭진 않다. 책임이 무겁다. 동기는 정시 퇴근한다. 나는 밤 10시에 노트북 연다. 동기는 월급 나온다. 나는 3개월째 내 월급 못 받았다. "그래도 네가 부러워. 네 사업이잖아." 고맙다. 근데 부담된다. 경력이 만드는 이상한 기대들 미팅 가면 사람들이 예상한다. "11번가 출신이면 네트워크 엄청나시겠네요." 실제로는: 6년 전 명함이다. 연락 끊긴 사람 더 많다. "대기업 시스템 그대로 적용하면 되겠네요." 실제로는: 돈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그 시스템 못 돌린다. "투자 받기 쉬우셨겠어요." 실제로는: 100군데 넘게 돌아다녔다. 거절도 수없이 들었다. 경력이 만능 키처럼 보인다. 근데 아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 미니어처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11번가 그만둔 거 후회한 적 있다. 여러 번 있다. 특히 투자 안 받고, 매출 안 나오고, 직원 월급 걱정될 때. '그냥 다닐 걸' 싶었다. 근데 다시 생각하면, 안 한다. 대기업은 편했다. 시스템 있고, 돈 있고, 안정적이고. 근데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내 카테고리도 아니었다. 내 숫자도 아니었다. 지금은 다 내 거다. 망하든 되든 내 거다. 무겁다. 힘들다. 근데 내 것이다. 경력이 자산인지 족쇄인지 묻는다면, 대답은 '둘 다'다. 그리고 나는 이 족쇄를 스스로 찼다. 후회 없다. 경력자 창업의 진짜 어려움 요즘 깨닫는 것. 경력 없는 대표들은 '몰라서' 부딪힌다. 그게 오히려 자유다. 나는 '알아서' 조심한다. 그게 오히려 족쇄다. "이건 11번가에서 안 먹혔는데..." "대기업에서는 이렇게 안 하는데..." 자꾸 비교한다. 과거가 기준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도 비교한다. 나를 과거의 나랑 비교한다. "11번가 MD 출신이면 더 잘할 줄 알았어요." 이 말이 가장 아프다. 잘하고 싶다. 경력값 하고 싶다. 근데 대기업 MD랑 스타트업 대표는 다른 직업이다. 그걸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조차도 가끔 헷갈린다. 그럼에도 쓸 수 있는 것들 불평만 한 것 같다. 그건 아니다. 11번가 경력이 도움 되는 순간들:데이터 볼 때. 숫자 뒤의 패턴 읽는 법. 바이어 협상할 때. 딜 구조 짜는 법. 직원 교육할 때. 실무 구조 알려주는 법. 위기 올 때. '이 정도는 아니야' 하는 경험.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무'를 안다는 것. 많은 창업가들이 이상만 말한다. 비전만 말한다. 나는 실행을 말한다. 숫자를 말한다. 어떻게 굴러가는지 안다. 그게 경력의 진짜 가치다. 요즘 하는 생각 밤 11시. 아이들 재우고 노트북 켰다. 슬랙에 메시지 100개. '내일은 투자자 미팅이다. 또 물어볼 거다. "11번가 출신인데 왜..."' 한숨 나온다. 근데 웃긴 건, 나도 나한테 묻는다는 거다. '11번가 6년 했는데, 왜 이것밖에 못 하지?' 스스로가 가장 가혹하다. 커피 한 모금. 네 번째다. 내일도 증명해야 한다. 경력값을 해야 한다. 자산이면서 족쇄인 이 경력을 끌고, 오늘도 간다.경력은 날개인데, 왜 이렇게 무겁지.

강남 위워크 11층, 스타트업 오피스의 현실과 이상

강남 위워크 11층, 스타트업 오피스의 현실과 이상

11층에서 본 풍경 강남 위워크 1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여전히 설렌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리벽 너머로 강남대로가 보인다. 아침 9시, 출근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직인다. 나도 저들 중 하나였다. 11번가 MD 5년,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여기가 꿈이었다. '언젠가 저런 곳에서 일하겠지.' 위워크 11층, 스타트업 대표.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2020년 1월. 처음 계약서에 사인했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280만원. 6인실 작은 공간. 남편이 물었다. "너무 비싼 거 아냐?" 아니었다. 투자였다. 좋은 주소는 브랜드다. 직원 3명이랑 입주했다. 프리 맥주, 커피, 간식. 회의실은 앱으로 예약. 복사기도 스캐너도 다 있다. '여기서 성공하자.' 모두 눈빛이 반짝였다. 나도 그랬다. 진짜로. 4년이 지났다 지금은 15인실로 옮겼다. 월세 650만원. 직원은 15명. 숫자만 보면 성장이다. 시리즈A 15억 유치했다. 테크크런치 기사도 났다. "여성 육아용품 큐레이션 플랫폼, 투자 유치 성공"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근데 여기 앉아있으면 이상하다. 내가 뭘 이룬 건지 모르겠다. 월매출 8000만원. 손익분기점 근접. 투자자 보고는 '선방'이다. 그런데. 저녁 7시에 퇴근한다. 아이들 저녁 먹여야 해서. 직원들은 9시까지 있다. 미안하다. 늘. "대표님 먼저 가세요." 다들 웃으며 말한다. 진심인지 모르겠다. 남자 대표들은 밤 11시까지 있다. 옆 팀 대표는 자정 넘어 택시 타고 간다. "헌신적"이라고들 한다. 나는? "워라밸 챙기시네요." 투자자가 웃으며 말했다. 칭찬인지 비난인지. 이상과 현실 사이 4년 전엔 이상만 있었다. '여성도 창업할 수 있다.' '엄마도 대표가 될 수 있다.' '아이 키우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 믿었다. 진짜로.근데 현실은 다르다.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아이들 깨기 전 2시간. 이게 내 골든타임이다. 메일 확인, 기획서 검토, 슬랙 답장. 7시에 아이들 깨운다.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등원시킨다. 8시 반에 위워크 도착. 점심은 미팅이다. 투자자, 파트너사, 입점 브랜드. 밥 먹는 건지 일하는 건지. 저녁 7시 퇴근. 아이들 데리고 저녁 먹는다. 숙제 봐준다. 씻긴다. 재운다. 밤 10시. 노트북 다시 켠다. 직원들이 올린 슬랙 메시지. "대표님, 내일 회의 전에 검토 부탁드려요." 12시에 잔다. 5시간 자고 다시 일어난다. 이게 4년째다. 여기서 본 것들 위워크엔 스타트업이 많다. 다 비슷해 보인다. 맥북, 듀얼모니터, 서서 일하는 책상. 근데 다르다. 남자 대표들은 밤늦게까지 있다. 주말에도 나온다. "회사가 내 애기죠." 농담처럼 말한다. 여자 대표는 드물다. 11층에 나 포함 3명. 한 명은 미혼, 한 명은 아이 없다. 아이 있는 여성 대표는 나뿐. 투자자 미팅 때마다 듣는다. "아이 있으시죠? 시간 괜찮으세요?" 남자 대표한테는 안 묻는다. 한 번은 화가 났다. "괜찮습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일합니다." 말했다. 투자자가 웃었다. "열정 있으시네요." 열정? 선택지가 없는 거다. 옆 팀 남자 대표. 30대 초반, 미혼. 밤 11시까지 일한다. 주말에 해외 출장 간다. 투자자들이 좋아한다. "저런 친구가 성공하죠." 나는? "대표님, 워라밸 좋으시겠어요."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여기 있는 이유가 있다. 작년 가을, 고객 후기 하나를 봤다. "저희 집 아기 피부가 너무 약해서 고민이었는데, 여기서 추천해준 제품 써보니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그 순간. '아, 이거구나.' 돈 벌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육아하면서 아팠던 기억. 믿을 만한 제품 찾기 어려웠던 기억. '내가 만들자.' 그래서 시작했다. 시리즈A 투자 유치했을 때. 남편이 물었다. "이제 좀 여유로워지겠네?" 아니었다. 더 바빠졌다.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 투자금은 직원 월급이다. 마케팅 비용이다. 재고 확보다. 내 통장엔 여전히 돈이 없다. 대표 월급 300만원. 4년째 그대로다. 남편 월급으로 산다. 애들 학원비도, 생활비도. 미안하다. 늘. 11층의 밤 가끔 야근한다. 아이들 친정에 맡기고. 직원들 다 퇴근하고. 밤 10시 위워크. 조용하다. 청소하시는 분만 계신다. 창밖을 본다. 강남이 빛난다. 여전히 불 켜진 건물이 많다. 다들 열심히 산다. 나도.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안다. 4년 전 꿈꿨던 것과 지금이 다르다는 걸. 그래도. 여기 있다. 11층 위워크. 강남대로가 내려다보이는 곳. 여자가, 엄마가, 대표로 있다. 쉽지 않다. 매일 미안하고 힘들다. 근데 그만둘 생각은 없다. 아침이 온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자동으로 몸이 일어난다. 거실로 나간다. 아이들 장난감이 어질러져 있다. 어젯밤에 못 치웠다. 노트북을 켠다. 슬랙에 메시지 50개. 메일 80통. 커피를 내린다. 세 번째다. 아니, 첫 번째. 하루가 시작된다. 7시. 아이들 깨운다. "엄마, 오늘 수업 참관 오는 거지?" 딸아이가 묻는다. 캘린더를 확인한다. 투자자 미팅이 잡혀 있다. 옮길 수 없다. "미안해. 다음엔 꼭 갈게." 딸이 실망한 표정이다. 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 8시 반. 위워크에 도착한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11층. 문이 열린다. 유리벽 너머로 강남이 보인다. 오늘도 사람들이 움직인다. 이상과 현실. 꿈과 일상. 대표와 엄마. 다 나다. 동시에 존재한다.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여기 강남 위워크 11층. 4년이 지났다. 처음 꿈꿨던 것과 다르다. 더 힘들다. 더 복잡하다. 근데 후회는 없다. 여자도 창업할 수 있다. 엄마도 대표가 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직원 15명이 매일 출근한다. 고객들이 후기를 남긴다. 투자자들이 기대한다. 압박이지만 책임이다. 무겁지만 의미 있다. 저녁 7시. 오늘도 퇴근한다. 직원들에게 말한다.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 다들 웃으며 답한다. "대표님도요." 미안함과 감사함. 항상 같이 온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11층에서 1층으로. 문이 열린다. 강남역 출구.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나도 섞인다. 집으로 간다. 아이들이 기다린다. "엄마 왔다!" 안는다. 따뜻하다. 이것도 내 일이다. 밤 10시. 노트북을 다시 켠다. 내일 준비한다. 새벽 5시에 또 일어날 것이다. 위워크 11층으로 갈 것이다. 계속 할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 나는 여기 있다.완벽한 대표도, 완벽한 엄마도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 출근한다.

'시간 없어서요'가 내 버릇이 된 언제부터인가

'시간 없어서요'가 내 버릇이 된 언제부터인가

'시간 없어서요'가 내 버릇이 된 언제부터인가 또 그 말을 했다 "죄송해요, 시간이 없어서요." 오늘만 세 번째다. 아침에 남편한테, 점심에 투자사 담당자한테, 저녁에 딸아이한테. 입에 붙었다. 자동 응답처럼 나온다. 남편이 "이번 주말에 우리 둘이 영화 볼까?" 했을 때. 투자사에서 "다음 주 목요일 저녁 어떠세요?" 물었을 때. 딸이 "엄마 금요일 학예회 올 거지?" 물었을 때. 전부 같은 대답이었다. "시간이 없어서."그런데 진짜 시간이 없는 걸까. 오늘 캘린더를 다시 봤다. 9시부터 7시까지 빼곡하긴 하다. 팀 회의, 1대1 미팅, 신규 브랜드 제안서 검토, 시리즈A 후속 보고. 근데 그 사이 SNS는 봤다. 유튜브 쇼츠도 3개 봤다. 점심 먹고 동료랑 커피 마시면서 30분 수다 떨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었다. 우선순위가 꽉 차 있는 거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창업 1년차엔 안 그랬다. "시간 만들면 되죠!" 했다. 실제로 만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저녁엔 남편이랑 와인 마시고, 주말엔 아이들이랑 놀이터 갔다. 2년차부터 달라졌다. 직원이 5명에서 10명이 됐다. 책임이 늘었다. 누군가 "대표님 이것 좀 봐주세요" 하면 못 본 척 못 했다. 투자 미팅이 잡히면 무조건 갔다. "다음에요"가 "안 된다"는 뜻인 걸 알았으니까. 3년차엔 아예 포기했다. 운동은 사치. 친구 약속은 3개월에 한 번. 부부 데이트는 기념일만. 딸아이 학예회는... 작년 거 하나 놓쳤다. 올해도 놓칠 것 같다."시간 없어서요"가 내 시그니처가 됐다. 명함에 새겨도 될 정도다. 김대표, 38세, '시간 없는 사람'. 진짜 중요한 건 뭘까 어제 딸이 물었다. "엄마는 회사가 더 중요해, 나랑 동생이 더 중요해?" 칼이었다. 가슴에 꽂혔다. "너희가 더 중요하지!" 했다. 근데 거짓말 같았다. 내 캘린더는 정직했다. 회의 12개, 미팅 8개, 아이들 학교 행사 1개. 그것도 '미정'. 중요한 건 뭘까. 진짜로. 회사가 잘 돼야 아이들 학비 낼 수 있다. 투자 받아야 직원들 월급 줄 수 있다. 브랜드 미팅 가야 매출이 는다. 다 맞는 말이다. 근데 딸아이 학예회는 올해밖에 없다. 2학년 학예회는 다시 안 온다. 남편이랑 영화 보는 것도, 올해 안 보면 내년엔 또 다른 핑계가 생긴다.우선순위가 꽉 차 있다는 건, 누군가를 계속 밀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 일이 1순위면, 가족은 2순위다. 투자사 미팅이 먼저면, 부부 데이트는 나중이다. 신규 브랜드 제안이 급하면, 내 운동은 안 급하다. 그렇게 밀려난 것들이 쌓인다. 남편의 서운함, 딸의 실망, 내 건강, 친구들과의 거리. 전부 "나중에"로 쌓여있다. 언젠간 처리해야 할 숙제처럼. 포기하고 있는 것들 정리해봤다. 내가 '시간 없어서'라는 말로 실제로 포기한 것들. 운동. 작년엔 필라테스 3개월 끊었다. 5번 갔다. 1회당 12만원. 웃긴다. 친구. 대학 동기들 만남 3번 연속 펑크. 이제 단톡방에서 내 이름 부르면 다들 "또 시간 없다고 하겠지" 농담한다. 농담이 아니다. 사실이다. 부부 대화. 침대에 눕자마자 노트북 켠다. 남편이 "오늘 어땠어?" 물으면 "피곤해"라고 답한다. 대화가 아니다. 리포트다. 나. 책 읽는 것, 음악 듣는 것, 그냥 멍 때리는 것. 다 없어졌다. 나를 위한 시간이 제일 먼저 잘렸다. 매일 아침 거울 보면 낯설다. 이게 나인가. 항상 피곤한 얼굴, 항상 바쁜 표정, 항상 "시간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네 선택이잖아." 맞다. 내가 선택했다. 창업도, 확장도, 투자 유치도. 다 내가 원했다. 근데 선택이라는 말이 면죄부는 아니다. 선택한 것에도 대가가 있다. 회사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한 거다. 선택과 포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요즘 드는 생각.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회사가 시리즈B 받고, 매출이 월 2억 되고, 직원이 30명 되면. 그때는 시간이 날까. 아니다. 더 바빠진다. 더 많은 회의, 더 큰 책임, 더 복잡한 문제. 결국 '시간이 나면'이라는 가정은 오지 않는다. 시간은 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 근데 나는 만들지 않고 있다. 핑계만 만들고 있다. "시간 없어서요." 이 말은 거짓말이다. 진짜 의미는 이거다. "당신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서요." 잔인하지만 사실이다. 오늘은 달리 말해볼까 오늘 저녁, 딸이 또 물었다. "엄마 금요일 올 수 있어?" 입이 먼저 움직였다. "시간이..." 근데 멈췄다. 다시 생각했다. 금요일 오후 2시. 신규 브랜드 제안 미팅이 잡혀 있다. 옮길 수 있나. 옮길 수 있다. 옮기고 싶냐. 솔직히 귀찮다. 하지만 해야 하나. 해야 한다. "갈게." 말했다. "엄마 꼭 갈게." 딸이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환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 보니까 알겠다. 내가 뭘 포기하고 있었는지. 미팅은 다음 주로 옮겼다. 담당자한테 "개인 사정이 생겨서요" 했다. 개인 사정. 딸의 학예회. 이것도 '사정'이 맞다. 중요한 사정이다. 캘린더에 금요일 오후 2시를 블록했다. 제목은 "은지 학예회". 회의실 예약하듯 블록했다. 이 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안 옮긴다. 시간은 만드는 것 깨달았다. 시간 없다는 말은 변명이다. 진짜 의미는 "우선순위가 아니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만든다. 투자사 대표가 "내일 점심 어때요?" 하면 만든다. 기존 약속 옮기고, 회의 미루고, 시간 만든다. 왜. 중요하니까. 가족도 중요하다. 남편도 중요하다. 나도 중요하다. 근데 이건 안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로 미루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이제 바꾸려고 한다. 완벽하게는 못 바꾼다. 나도 안다. 여전히 바쁠 거고, 여전히 선택해야 하고, 여전히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바꾸고 싶다. "시간 없어서요"라는 자동 응답. 이 말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기. 진짜 시간이 없나, 아니면 우선순위가 아닌가. 그리고 가끔은 우선순위를 바꾸기. 회사가 아니라 가족을, 투자사가 아니라 남편을, 미팅이 아니라 나를 먼저 두기. 버릇을 고치는 중 여전히 바쁘다. 오늘도 회의 3개, 미팅 2개 있다. 근데 저녁 7시는 비워뒀다. 남편이랑 집에서 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 배달 시켜서 먹을 거다. 근사하진 않다. 근데 함께 있는 시간이다. 토요일 오전도 비워뒀다. 아이들이랑 놀이터 가기로 했다. 노트북 안 들고 간다. 슬랙 알림도 끈다. 2시간만. 온전히 엄마로만 있는 시간. 일요일 저녁은 내 시간이다. 책 한 권 읽는다. 아무도 방해 안 한다. 남편한테 부탁했다. "이 시간만큼은 나 좀 내버려 둬." 남편이 웃으며 고개 끄덕였다. 작은 시작이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다. 근데 이렇게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10년 뒤에도 똑같을 것 같다. "시간 없어서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걸 계속 놓치면서. 누구를 위한 바쁨인가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가. 회사 키우려고. 맞다. 그럼 회사는 왜 키우나. 가족 먹여 살리려고. 맞다. 그럼 가족과의 시간은 왜 없나. 모순이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면서, 가족과의 시간은 제일 나중이다. 아이들 좋은 학교 보내려고 번다면서, 아이들 학교 행사는 못 간다. 남편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도 회사 다닌다. 과장이다. 야근도 한다. 근데 이 사람은 "시간 없어"란 말 잘 안 한다. 주말엔 아이들이랑 논다. 저녁엔 설거지한다. 어떻게 그럴까. 물어봤다.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내?" 남편이 웃었다. "안 내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지. 중요하니까." 맞다. 만드는 거다. 중요하면 만든다. 나도 회사 일은 만든다. 투자 미팅, 브랜드 제안, 팀 회의. 다 중요하니까 만든다. 그럼 가족은. 나는. 덜 중요한가. 아니다. 더 중요하다. 근데 덜 긴급하다. 여기가 함정이다.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것들은 계속 밀린다. 변명을 멈추기로 했다 "시간 없어서요"는 이제 안 쓰려고 한다. 대신 솔직하게 말하려고 한다. "지금은 다른 게 더 급해서요." 또는 "이게 제겐 우선순위가 아니에요." 또는 "죄송하지만 이번엔 못 할 것 같아요." 변명 안 한다. 핑계 안 댄다. 시간 탓 안 한다. 내 선택이니까. 선택하는 거니까. 근데 동시에 이것도 하려고 한다. 가끔은 우선순위 바꾸기. 회사가 1순위인 날이 80%라면, 가족이 1순위인 날을 20%는 만들기. 나를 1순위로 두는 날을 10%는 만들기. 완벽하진 않을 거다. 여전히 회의 많고, 미팅 많고, 결정해야 할 게 많다. 여성 CEO라는 것도 여전히 힘들다. "애 있는데 괜찮으세요?"라는 질문도 여전히 받는다. 근데 적어도 이건 바꿀 수 있다. 내가 뭘 선택하고, 뭘 포기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 "시간 없어서요"가 아니라 "이번엔 이걸 선택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시간은 없는 게 아니다. 만드는 거다. 중요한 건 만들어진다.

주말 온 가족이 함께인데 자꾸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주말 온 가족이 함께인데 자꾸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주말 온 가족이 함께인데 자꾸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토요일 오전 10시 딸아이가 "엄마, 나랑 놀자" 했다. 손에 레고 들고 있었다. "응, 엄마 잠깐만"이라고 했다. 슬랙 알림이 떴다.토요일인데 알림을 껐어야 했다. 근데 못 껐다. 왜냐면 투자자가 주말에 메일 보낸다고 했거든. 시리즈B 준비 중이다. 그 메일이 올 수도 있다. 딸아이는 내 옆에 앉았다. 혼자 레고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랙을 봤다. 개발팀 리드가 긴급 이슈 올렸다. "주말인데 죄송한데요, 결제 오류 떴어요" 손가락이 움직였다. "확인했어요. 월요일 아침 회의 잡을게요" 타이핑하는 동안 딸아이가 "엄마" 했다. "응?" 하면서도 눈은 화면에 있었다. 점심 먹으면서 남편이 파스타를 만들었다. 아들이 "맛있다!" 소리쳤다. 딸아이는 조용히 먹었다. 나는 포크 들고 한 손으론 폰을 봤다.슬랙 읽지 않은 메시지 37개. 주말인데 왜 이렇게 많아. 아, 마케팅팀이 월요일 광고 기획안 공유했구나. 지금 안 봐도 되는데. 근데 보게 된다. 남편이 "맛있어?" 물었다. "응, 맛있어"라고 했다. 근데 뭘 먹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맛을 모르겠다. 딸아이가 "엄마 오늘 뭐 할 거야?" 물었다. "응? 아, 엄마랑 뭐 하고 싶어?" "공원 가고 싶어" "그래, 갈게" 근데 마음 한편에서는 계산했다. 공원 2시간, 집 돌아오면 4시. 저녁 준비 6시까지. 그럼 오늘은 투자 제안서 못 보는 거네. 일요일에 봐야 하나.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남편이랑 벤치에 앉았다. 햇살이 좋았다. 근데 폰이 진동했다.또 슬랙이다. 이번엔 CFO였다. "대표님, 이번 주 캐시플로우 리포트 드립니다" 엑셀 파일이 첨부됐다. 열어봤다. 숫자들이 보였다. 마케팅비 800만원 초과. 예상보다 200만원 더 나갔다. 심장이 쿵 했다. 월요일에 물어봐야 한다. 어디서 샜는지.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근데 계속 생각난다. 딸아이가 "엄마! 그네 밀어줘!" 소리쳤다. "응!"하고 일어났다. 근데 폰은 손에 쥐고 있었다. 그네를 밀면서도 화면을 봤다. "엄마, 높이!" "그래" 밀면서도 슬랙 채널을 스크롤했다. 한 손으로. 남편이 "폰 좀 놔" 했다.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아, 미안. 급한 거" "토요일인데 뭐가 급해"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안 급하다. 근데 안 보면 불안하다. 그게 문제다. 저녁 8시 아이들 재웠다. 남편이랑 소파에 앉았다. TV를 틀었다. 근데 또 폰을 봤다. 남편이 한숨 쉬었다. "오늘 하루 종일 폰만 봤어" "미안해. 일이 좀..." "일은 항상 있잖아" 맞는 말이다. 일은 항상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도 모자라서. 토요일 일요일까지 일한다. "나도 안 그러고 싶어"라고 했다. 근데 목소리가 작았다. 확신이 없었다. 정말 안 그러고 싶은 건가. 아니면 못 놓는 건가. 남편이 "애들이 섭섭해해"라고 했다. 그 말이 제일 아팠다. 사실 나도 안다. 딸아이 눈빛 봤다. "엄마 또 폰 보네" 하는 표정. 일요일 아침 새벽에 깼다. 5시 30분. 원래 새벽형 인간이긴 한데. 오늘은 꿈을 꿨다. 투자자가 "대표님은 집중력이 없으시네요"라고 했다. 회의실에 아이들이 있었다. 레고 조립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슬랙을 보고 있었다. 식은땀 흘리며 일어났다. 폰을 봤다. 슬랙 알림 12개. 일요일 새벽인데도. 아, 시차 있는 파트너사구나. 미국 금요일 오후니까. 그래도 지금 볼 필요는 없다. 근데 봤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중독이다. 이건 중독인 거다. 거실로 나왔다. 커피를 내렸다. 창밖을 봤다. 아직 어둡다. 이 시간이 예전엔 좋았다. 아이들 깨기 전 나만의 시간. 근데 요즘은 이 시간도 일한다. 슬랙 확인하고, 메일 답장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투자 제안서를 열었다. 집중하려고 했다. 근데 딸아이 방에서 소리가 났다. 월요일이 두렵다 주말이 끝나간다. 아이들이랑 제대로 놀지 못했다. 남편이랑도 제대로 대화 못 했다. 근데 일은 어느 정도 했다. 이게 맞나. 잘 모르겠다. 대표로서는 책임감이고. 엄마로서는 직무유기다. 여성 CEO 모임에서 들었다. "완벽한 워라밸은 환상이에요" "그냥 덜 죄책감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근데 어떻게 배워. 딸아이 눈빛 보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엄마는 나보다 폰이 더 좋아" 그 말 듣고 싶지 않은데. 슬랙을 끄려고 했다. 알림을 off 하려고 했다. 근데 못 했다. 손가락이 안 움직였다. 만약에. 만약에 진짜 급한 일이 생기면. 만약에 투자자가 연락하면. 만약에 서버가 다운되면. 핑계다. 다 핑계인 거 안다. 월요일 아침에 처리해도 된다. 세상이 안 망한다. 근데 불안하다. 통제력을 잃는 기분이다. 회사가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갈 것 같다. 착각인 거 아는데. 남편이 주말에 한 말. "회사는 네가 없어도 하루는 돌아가. 근데 애들은?" 그 말이 계속 맴돈다. 맞는 말이다. 근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음 주말은 다르게 하고 싶다. 슬랙 알림 꺼놓고.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일요일 저녁 7시까지. 완전히 끄고 싶다. 근데 할 수 있을까. 자신 없다. 벌써 불안하다. 딸아이가 자기 전에 물었다. "엄마, 다음 주말엔 진짜 나랑만 놀 거야?" "응, 그럴게" "폰 안 볼 거야?" "...응" 대답하면서 떨렸다. 지킬 수 있을까. 이 약속. 창업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시간 관리하는 거니까 더 자유롭겠지' '아이들이랑 더 많이 있을 수 있겠지' 개소리였다. 오히려 더 못 놓는다. 출퇴근이 없으니까 경계가 없다. 집에 있어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아이들 옆에 있어도 머릿속은 회사다. 엄마 CEO 선배가 그랬다. "10년 후 후회하는 건 일을 덜 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랑 덜 논 거예요" 그 말이 머리로는 이해된다. 근데 지금 당장은 회사가 불타고 있는 것 같다. 매출 성장률. 투자 유치. 직원 관리. 다 중요하다. 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진짜 그런가. 정말 다 나여야만 하나. 조금 놓으면 안 되나. 손가락이 말해준다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자동으로 움직인다. 의식하지 않아도. 씻으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아이 재우면서도. 이 손가락이 내 상태를 보여준다. 불안한 거다. 통제 욕구가 강한 거다. 놓지 못하는 거다. 다음 주 월요일. 팀 회의에서 말할까 생각한다. "주말엔 긴급한 것만 연락 주세요" "저도 주말엔 슬랙 안 볼게요" 근데 무섭다. 팀원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대표는 편하게 쉬네' '우린 주말에도 일하는데' 아니다. 이런 생각 자체가 문제다. 내가 먼저 경계를 만들어야. 팀원들도 따라온다. 딸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 폰 좀 그만 봐" 그 목소리가 들린다. 다음 주말. 정말로 슬랙을 끈다. 알림을 off 한다. 폰을 서랍에 넣는다.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근데 해야 한다.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초등 2학년도 금방 지나간다. 6살도 이미 컸다.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슬랙은 월요일에도 있다. 메일도 그때 확인하면 된다. 회사는 하루 이틀 내가 없어도 돌아간다. 근데 아이들의 주말은. 딱 이 주말만 있다. 다시 안 온다.손가락은 또 슬랙을 향한다. 근데 이번엔 멈춘다. 조금씩.

캘린더에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하고 투자자 미팅을 맞추는 방식

캘린더에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하고 투자자 미팅을 맞추는 방식

캘린더에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해놓는다 새벽 5시, 캘린더 정리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커피 내리고 노트북 연다. 제일 먼저 하는 건 구글 캘린더 열기. 3월 일정을 쭉 본다. 딸아이 학예회가 3월 15일 오전 10시. 아들 어린이집 소풍이 3월 22일. 부모 참관 수업이 3월 29일 오후 2시. 전부 빨간색으로 블록한다. "참석 필수"라고 메모 단다.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일정이다. 그다음 투자자 미팅 요청 메일을 본다. "3월 15일 어떠세요?" 안 된다. "3월 16일은 어떠신가요?" 답장 보낸다. 4년 전엔 반대였다. 아이 행사를 투자자 일정에 맞췄다. 학예회 날 회의 잡히면 남편한테 부탁했다. "미안, 내가 못 가. 대신 가줘." 지금은 아니다.투자자 미팅에서 들은 질문 작년 가을이었다. 시리즈A 투자 미팅이었다. 프레젠테이션 끝나고 질문 시간. 한 투자자가 물었다. "대표님, 아이 있으시죠? 학교 행사는 어떻게 하세요?" 순간 멈칫했다. 남자 창업가 선배한테 물어봤다. "형, 투자 미팅에서 아이 질문 받아봤어?" "아니, 한 번도." 나만 받는 질문이었다. "네, 둘 있습니다. 중요한 행사는 참석합니다." 웃으면서 답했다. 근데 속으로는 생각했다. '왜 이걸 물어보지?' 그 투자자는 투자 안 했다. 이유는 말 안 했다. 근데 느낌은 왔다. 여자 대표, 아이 둘, 시간 관리 안 될 거라는 판단. 말은 안 해도 느껴진다. 집에 와서 울었다. 남편한테 말했다. "나 왜 이래야 돼?" 남편이 말했다. "당신 잘못 없어. 그 사람이 편견 있는 거지." 맞다. 근데 그게 현실이다.3월 15일 학예회 딸아이 학예회 날이었다. 오전 10시 시작. 9시에 사무실 슬랙에 썼다. "오늘 오전 외근입니다. 12시쯤 복귀할게요." 팀장이 물었다. "혹시 급한 건 있으세요?" "없어요, 천천히 하세요." 학교 강당에 앉았다. 다른 엄마들이 많았다. 아빠는 셋. 딸아이가 무대에 올랐다. 합창 발표였다. 노래 부르면서 나를 찾았다. 눈이 마주쳤다. 손 흔들었다. 딸이 웃었다. 그 웃음이 전부였다. 공연 끝나고 교실로 갔다. 딸이 달려왔다. "엄마 왔어!" "응, 엄마 왔지."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요즘 엄마들 바쁘셔서... 와주셔서 감사해요." 미안한 말투였다. 나도 미안했다. 매번은 못 온다. 12시에 사무실 복귀했다. 오후 2시 투자자 화상 미팅. 3시 팀 회의. 5시 파트너사 콜. 저녁 7시에 퇴근했다. 딸이 현관에서 기다렸다. "엄마, 오늘 온 거 자랑했어." 그날 밤 일기장에 썼다. "오늘 학예회 갔다. 회사는 안 망했다. 딸은 웃었다. 둘 다 가능하다."누가 더 중요한지 고르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아이랑 회사 중 뭐가 더 중요해요?" 이상한 질문이다. 왜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남자 CEO한테는 안 묻는다. "가족이랑 회사 중 뭐가 더 중요해요?" 당연히 둘 다 중요하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둘 다 중요하다. 방법의 문제다. 우선순위가 아니라 전략이다. 캘린더를 보면 내 가치관이 보인다. 빨간색 블록이 많으면 아이가 중요한 사람. 파란색 블록이 많으면 회사가 중요한 사람. 나는 빨간색이랑 파란색이 섞여 있다. 그게 내 삶이다.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딸의 초등학교 2학년은 한 번뿐이다. 아들의 6살도 한 번뿐이다. 투자자는 기다려준다. 다음 주로 미룰 수 있다. 다른 날짜 제안할 수 있다. 급한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걸 먼저 블록해야 한다. 시어머니의 전화 지난주 시어머니한테 전화 왔다. "며느리, 회사 일 좀 줄여. 애들이 엄마가 필요해." 할 말이 없었다. "네, 알아요." 전화 끊고 남편한테 말했다. "당신 어머니한테 설명 좀 해줘." 남편이 말했다. "엄마가 옛날 사람이라서 그래. 이해해줘." 이해는 한다. 근데 힘들다. 시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평생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했다. 그게 당연한 시대였다. 나는 다르다. 일하는 엄마다. 나쁜 엄마가 아니라 다른 엄마다. 딸한테 보여주고 싶다. 엄마도 꿈이 있다는 걸. 엄마도 일한다는 걸. 엄마도 성장한다는 걸. 아들한테도 보여주고 싶다. 여자도 CEO 한다는 걸. 엄마도 회의한다는 걸. 시어머니의 세대와 내 세대는 다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다. 근데 설명하기 힘들다. "며느리, 그래도 애 엄마잖아." 맞다. 나는 엄마다. 동시에 대표다. 둘 다 내 정체성이다. 친정엄마의 도움 친정엄마가 주 2회 아이들 봐준다. 화요일이랑 목요일. 엄마한테 미안하다. 환갑 넘었는데 손주 돌보느라 힘들다. "엄마, 미안해. 내가 회사 때문에..." "괜찮아, 손주들 보는 게 좋아." 엄마 말투는 담담하다. 근데 피곤한 얼굴이 보인다. 지난주 엄마한테 용돈 드렸다. "엄마, 이거 쓰세요." "아니야, 괜찮아." 받지 않았다. 기분 나빠한다. "내가 돈 받으려고 손주 보나?"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니다. 감사의 표현이다.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았다. 백화점 상품권. 엄마 좋아하는 화장품. 마사지 쿠폰. "엄마, 이건 선물이야. 받아줘." 그제야 받았다. 친정엄마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회사도, 육아도. 여자 CEO들 만나면 얘기 나온다. "친정 엄마 도움 받으세요?" 대부분 받는다. 남편 엄마는 도와주기 힘들다. 며느리한테 '일 그만두라'고 말한다. 친정 엄마는 다르다. 딸의 꿈을 응원한다.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이 가능한 이유. 친정엄마의 헌신. 감사하다. 동시에 미안하다. 이게 정상은 아니다. 여성 CEO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 여성 창업가 모임이 있다. 10명 정도 모인다. 지난달 모임에서 한 언니가 말했다. "나 이번에 투자 못 받았어. 아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다들 고개 끄덕였다. 비슷한 경험들. "저도 비슷한 질문 받았어요." "저는 아예 임신 사실 숨겼어요." "애 낳고 복귀했더니 투자자가 놀라더라고요." 슬픈 얘기들이다. 근데 공감된다. 한 언니가 말했다. "우리가 선배가 돼줘야 돼. 후배들한테." 맞는 말이다. 롤모델이 없다. 아이 키우면서 회사 키운 여성 CEO가 드물다. 있어도 숨긴다. "아이요? 네, 있죠." 짧게 답하고 넘어간다. 약점으로 보일까봐. 나도 그랬다. 초기에는 아이 얘기 안 했다. 미팅에서 "주말에 뭐 하세요?" 물으면 "독서요" 라고 답했다. 진짜는 아이랑 놀이터 갔다. 근데 말 안 했다. 지금은 숨기지 않는다. "주말에 아이들이랑 시간 보냈어요." 당당하게 말한다. 약점이 아니다. 내 삶이다. 남편과의 대화 남편이랑 대화 시간이 부족하다. 요즘 서먹하다. 지난주 주말에 남편이 말했다. "우리 요즘 대화가 없어." 맞다. 아이들, 회사 얘기만 한다. 우리 얘기는 안 한다. "미안해. 내가 요즘 바빠서." "나도 바빠. 그래도 시간은 만드는 거잖아." 할 말이 없었다. 남편 말이 맞다. 남편은 대기업 과장이다. 야근 많다. 주말 출근도 한다. 근데 육아는 분담한다. 아침에 아이들 밥 먹인다. 설거지한다. 주말엔 아이들 축구 레슨 데려간다. 좋은 남편이다. 좋은 아빠다. 근데 우린 서먹하다. 결혼 10년차. 연애 감정은 사라졌다. 이제 동료 같다. 육아 동료, 생활 동료. 나쁜 건 아니다. 근데 허전하다. 지난주 금요일 밤에 제안했다. "우리 데이트할까?" "좋지, 언제?" 캘린더 봤다. 빈 시간이 없다. 3주 뒤 토요일 오후 3시. "3주 뒤?" 남편이 웃었다. "우리 데이트도 미팅이네." 웃프다. 근데 현실이다. 손익분기점 근처에서 회사는 잘 된다. 월 매출 8000만원. 손익분기점이 9000만원. 곧 도달한다. 1년 안에 가능하다. 직원들이 열심히 한다. 15명이 가족 같다. 여성 비율 80%. 워라밸을 강조한다. "칼퇴 하세요." "휴가 쓰세요." "육아휴직 당연하죠." 근데 나는 못 지킨다. 새벽에 일한다. 밤에 일한다. 주말에도 슬랙 확인한다. 팀장이 말했다. "대표님, 대표님도 쉬세요." "응, 괜찮아." 괜찮지 않다. 피곤하다. 늘 피곤하다. 지난달 건강검진 받았다. "스트레스 수치가 높네요. 피로도도 높고." "네, 알아요." 의사가 말했다. "좀 쉬세요." "네, 쉴게요." 거짓말이다. 못 쉰다. 회사가 손익분기점 넘어야 한다. 투자자한테 증명해야 한다. '여자 CEO도 된다'는 걸. '아이 있어도 된다'는 걸. 체력 관리의 실패 작년에 헬스장 등록했다. 3개월 끊었다. 세 번 갔다. 그리고 못 갔다. 요가 수업도 신청했다. 한 번 갔다. 시간이 없다. 새벽은 일해야 하고, 저녁은 아이들이고, 주말은 가족이고. 친구들이 말한다. "너 운동해야 해. 안 그러면 무너져." 안다. 근데 못 한다. 대신 영양제 먹는다. 비타민 C, 비타민 D, 오메가3, 철분제. 아침에 한 줌 먹는다. 이게 운동 대신이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스트레스다. 살은 쪘다. 3kg. 운동 안 하고 야식 먹어서. 거울 보면 피곤해 보인다. 화장으로 가린다. 남편이 걱정한다. "당신 좀 쉬어." "응, 괜찮아." 거짓말이다. 안 괜찮다. 근데 멈출 수 없다. 딸아이의 질문 지난주 저녁이었다. 딸이 물었다. "엄마는 왜 맨날 바빠?" 뭐라고 답해야 할까. "엄마가 회사 다녀서 그래." "회사 그만두면 안 돼?" "그만두면 돈 못 벌잖아." "아빠 돈 있잖아." 순간 멈칫했다. "엄마도 일하고 싶어. 회사가 재밌거든." "나랑 노는 것보다?" 대답이 안 나왔다. 딸이 서운한 표정이었다. "엄마는 너랑 노는 것도 좋아하고, 회사도 좋아해. 둘 다야." "그럼 학교 행사 다 와줘." "...노력할게." 약속은 못 했다. 다 갈 수 없다. 딸이 방으로 들어갔다. 문 닫는 소리가 컸다. 남편이 말했다. "애가 서운한가봐." "나도 안다." 그날 밤 딸 방에 들어갔다. 이미 자고 있었다. 머리 쓰다듬었다. "미안해. 엄마가 부족해서." 자는 딸한테 속삭였다. 대답은 없었다. 아들의 담담함 아들은 다르다. 6살이라 그런지 덜 서운해한다. "엄마 회사 가?" "응, 가야 해." "그럼 할머니랑 놀게." 담담하다. 별로 신경 안 쓴다. 남편이 말했다. "아들은 아직 어려서 그래. 커지면 딸이랑 똑같을 거야." 불안하다. 나중에 아들도 서운해할까봐. 근데 지난주 아들이 그림 그렸다. 가족 그림. 나를 그렸다. 노트북 들고 있는 모습. "엄마는 항상 컴퓨터해." 아들의 설명. 웃프다. 아들이 기억하는 엄마는 노트북 든 모습. "엄마가 다음 주말엔 컴퓨터 안 할게. 우리 놀이동산 갈까?" "진짜?" 아들 눈이 반짝였다. "응, 진짜." 약속했다. 캘린더에 블록했다. 빨간색으로. "놀이동산 - 아들과 약속". 이번엔 지킬 거다. 우선순위가 아니라 전략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일과 가정은 시소라고.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간다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틀렸다. 시소가 아니다. 둘 다 올릴 수 있다. 방법의 문제다. 캘린더 블록이 그 방법이다. 중요한 걸 먼저 블록한다. 움직일 수 없는 일정을 먼저 잡는다. 아이 행사가 움직일 수 없다. 3월 15일 학예회는 3월 15일이다. 다른 날로 못 옮긴다. 투자자 미팅은 움직일 수 있다. 16일도 되고, 20일도 된다. 화상으로도 된다. 그러니까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한다. 그다음 투자자 미팅을 맞춘다. 이게 우선순위가 아니다. 전략이다. 회사도 잘 되고, 아이도 챙긴다. 둘 다 가능하다. 힘들다. 피곤하다. 근데 불가능하진 않다. 완벽하진 않다. 딸은 가끔 서운해한다. 남편이랑은 가끔 서먹하다. 나는 늘 피곤하다. 근데 계속한다.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4년 전과 지금 4년 전엔 달랐다. 회사 일정이 우선이었다. "투자자 미팅 있어서 못 가." 남편한테 부탁했다. 학예회, 소풍, 참관 수업. 딸이 물었다. "엄마는 왜 안 와?" "엄마가 바빠서."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잘 돼야 가족도 행복하니까. 틀렸다. 회사가 잘 돼도 딸의 서운함은 안 사라진다. 아들의 그림 속 엄마는 노트북 든 모습이다. 2년 전에 깨달았다. 딸의 생일날이었다. 케이크 자르는데 전화 왔다. 투자자였다.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지금은 좀..." 딸이 쳐다봤다. "잠깐만요." 방으로 들어가서 통화했다. 20분 걸렸다. 나왔더니 케이크가 잘려 있었다. 딸이 울고 있었다. "엄마가 케이크 안 잘랐어." 남편이 대신 잘랐다. 그날 결심했다. 바꿔야겠다고. 지금은 다르다. 딸 생일에는 전화 안 받는다. 학예회에는 간다. 아들과의 약속은 지킨다. 회사는 안 망했다. 오히려 잘 된다. 투자자들도 이해한다. "다음 주로 미룰까요?" "네, 감사합니다." 문제없다. 여성 창업가 선배의 조언 작년에 만난 선배가 있다. 여성 CEO, 50대, 아이 둘 다 대학생. "후배님, 조언 하나 할게요." "네, 말씀하세요." "아이들은 금방 커요. 회사는 천천히 가도 돼요." 와닿지 않았다. 그때는. "회사가 빨리 커야 하지 않나요?" "왜요?" "투자자들 보여줘야 하잖아요." "투자자 인생 사세요? 본인 인생 사세요?" 할 말이 없었다. "저도 후배님처럼 했어요. 애들 학교 행사 못 갔어요. 회사 일정이 우선이었죠." "그래서요?" "후회해요. 지금도." 선배의 눈빛이 흔들렸다. "큰애가 작년에 말했어요. '엄마는 항상 안 왔잖아.' 대학생인데도 기억하더라고요." 무거운 침묵. "회사는 성공했어요. 매출 300억. 근데 아이들이랑은 서먹해요. 뭘 성공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 말이 계속 맴돈다. 나는 선배처럼 안 되고 싶다. 회사만 성공하고 싶지 않다. 회사도 키우고, 아이도 키운다. 둘 다. 롤모델의 부재 여성 창업가 선배가 적다. 더 적은 건 아이 키우면서 성공한 선배. 찾아봤다. 한국에 몇 명 안 된다. 있어도 인터뷰에서 아이 얘기 안 한다. "개인적인 질문은 곤란합니다." 이해한다. 약점으로 보일까봐. 미국은 다르다. 셰릴 샌드버그가 아이 얘기 한다. "워킹맘은 죄책감과 싸운다"고 책에 썼다. 한국은 없다. 다들 숨긴다. 나는 숨기고 싶지 않다. 블로그에 쓴다. "오늘 학예회 갔다. 회사도 잘 돌아갔다." 댓글이 달린다. "저도 힘내요." "대표님처럼 하고 싶어요." "용기 나요." 후배들한테 보여주고 싶다. 가능하다고. 쉽지 않다. 힘들다. 피곤하다. 근데 가능하다. 완벽하진 않다. 자주 실수한다.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남편한테 미안하다. 직원들한테도 미안하다. 근데 계속한다. 멈추고 싶지 않다. 캘린더가 보여주는 것 내 구글 캘린더를 보면 내가 보인다. 빨간색 블록: 아이 행사, 가족 시간, 학교 행사. 파란색 블록: 투자자 미팅, 팀 회의, 파트너 미팅. 초록색 블록: 여성 CEO 모임, 개인 시간, 운동(실패). 빨간색이 제일

남편과의 대화가 '육아 스케줄' 공유로 끝나는 요즘

남편과의 대화가 '육아 스케줄' 공유로 끝나는 요즘

남편과의 대화가 '육아 스케줄' 공유로 끝나는 요즘 대화가 사라진 부부 어젯밤 남편이 말을 걸었다. "내일 회의 길어질 것 같은데, 아이들 픽업 가능해?" 나는 캘린더를 열었다. "4시까지는 힘들고, 5시면 돼." "알겠어. 그럼 엄마한테 부탁할게." "응." 대화 끝.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우리 언제부터 이랬지. 결혼 10년 차다. 대화의 90%가 아이들 일정이다. "내일 준호 학원 몇 시야?" "지아 준비물 챙겼어?" "다음 주 학부모 상담 누가 갈래?" "주말에 애들 어디 데리고 갈까?" 이런 것만 나눈다.언제부터였을까 둘째 낳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 그전부터였을 수도. 연애 시절엔 밤새 통화했다. 신혼 때는 주말마다 데이트했다. 드라마 같이 보고, 맛집 찾아다니고. 첫째 낳고도 괜찮았다. 아기 재우고 와인 마시며 이야기했다. "오늘 지아가 뒤집기 했어." "우리 딸 천재 아냐?"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있었다. 둘째는 달랐다. 창업도 겹쳤다. 나는 회사 키우느라, 남편은 승진 준비하느라. 아이 둘은 각자 다른 시간표로 움직였다. 어느새 우리는 '육아 파트너'가 됐다. 부부가 아니라. 남편도 노력한다 불만은 아니다. 남편은 정말 노력한다. 주변 대기업 남자들 중에선 잘하는 편이다. 아침에 아이들 밥 먹인다. 주말엔 공원 데리고 간다. 분리수거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시어머니가 놀랐다. "우리 아들이 집안일을 해?" 나는 웃었다. '집안일'이 아니라 '당연한 거'인데. 그래도 남편은 바뀌었다. 예전엔 '육아는 엄마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캘린더에 아이들 일정 다 넣는다. 나보다 더 꼼꼼할 때도 있다. 고맙다. 진심으로. 근데 뭔가 부족하다.우리는 팀원이 됐다 어느 날 깨달았다. 우리는 '프로젝트 팀'이다. 프로젝트명: 육아. 목표: 아이들 잘 키우기. 역할 분담: 명확. 업무 보고: 수시로. "내일 PT 있어서 늦을 것 같아." "알겠어, 내가 저녁 담당할게." "지아 준비물은?" "체크했어." "고마워." 효율적이다. 문제없다. 잘 굴러간다. 근데 외롭다. 회사에서도 팀 미팅한다. 집에서도 팀 미팅한다. 남편과의 대화가 슬랙 메시지 같다. "확인했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공유 감사합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업무적이 됐지. 연애가 그립다 가끔 남편이 웃으면 낯설다. '아, 이 사람 이렇게 웃었지.' 지난주 회식 사진을 봤다. 남편이 동료들과 맥주 마시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편하게 웃은 게 언제였지. 나한테는 안 웃는다. 아니, 웃긴 한다. 근데 다른 웃음이다. 피곤한 웃음. 의무적인 웃음. 나도 마찬가지다. 투자자 미팅에선 활짝 웃는다. 직원들이랑은 편하게 농담한다. 남편한테만 딱딱하다. 왜지. 생각해봤다. 남편 앞에서 긴장한다. 아이들 일 제대로 못 하면 미안하다. 회사 때문에 늦으면 미안하다. '좋은 엄마'가 못 되는 것 같아서. 남편도 그럴까. '좋은 아빠' 해야 한다는 부담. 그래서 우리가 서로 어색한 걸까.어제 저녁의 짧은 순간 어제 아이들 재웠다. 거실로 나왔다. 남편이 소파에 있었다. 보통은 각자 노트북 연다. 나는 슬랙, 남편은 이메일. 30분 후 각자 자러 간다. 근데 어제는 달랐다. 남편이 TV를 켰다.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같이 볼래?" 순간 당황했다. '나 일 해야 하는데...' 근데 앉았다. 프로그램은 재미없었다. 근데 웃었다. 남편도 웃었다. "저 사람 웃기네." "완전." 짧은 대화. 30분. 별거 아니었다. 근데 오랜만이었다. '육아 스케줄' 없이 나눈 대화. 남편이 말했다. "요즘 너 많이 힘들지?" "응, 너도 그렇고." "...그러게." 또 침묵. 근데 이 침묵은 편했다. 우리는 여전히 부부다 깨달았다. 나는 남편을 '아이들 아빠'로만 봤다. 남편도 나를 '아이들 엄마'로만 봤을 것이다. 우리는 역할이 됐다. 사람이 아니라. '대표'인 나. '과장'인 남편. '엄마'인 나. '아빠'인 남편. 근데 원래는 아니었다. '지영'이었고 '민수'였다. 28살 회사원이었고 30살 영업사원이었다. 그 사람들은 어디 갔지. 오늘 아침에 물었다. "당신 요즘 행복해?" 남편이 놀랐다. "갑자기?" "그냥." 남편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잘 모르겠어. 너는?" "나도." 솔직한 대답이었다. 행복한가. 불행하지는 않다. 아이들은 건강하다. 회사는 잘 굴러간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근데 행복하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작은 시도들 바꿔보기로 했다. 거창하게는 못 한다.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다. 근데 작게라도. 첫째, 주 1회 '우리 시간'. 아이들 재우고 30분만. TV든 뭐든 같이 본다. 스케줄 얘기 금지. 둘째, 아침 커피. 남편이 먼저 일어나면 커피를 내린다. 내가 먼저면 내가 내린다. 같이 마신다. 5분이라도. 셋째, 감사 표현. "고마워" 자주 하기. 당연한 거 없다고 생각하기. 넷째, 스킨십. 출근할 때 포옹. 어색하지만 해보기. 거창하지 않다. 근데 안 하던 것들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며칠 해봤다. 매일은 못 한다. 회의 늦으면 못 본다. 남편 야근하면 각자 잔다. 완벽하지 않다. 근데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남편이 웃는 횟수가 늘었다. 나도 덜 외롭다. 여전히 대화의 대부분은 육아다. "내일 준호 치과." "알겠어." 근데 가끔은 다른 얘기도 한다. "오늘 회의에서 말이야..." "어제 그 드라마 봤어?" 작은 것들. 우리는 완벽한 부부가 아니다. 연애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아이 둘 키우면서 창업하고 직장 다니는데. 당연히 힘들다. 근데 포기는 안 하려고. '육아 파트너'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부부니까. 오늘 밤에도 오늘도 아이들 재웠다. 거실로 나왔다. 남편이 노트북 보고 있다. "일 많아?" "응, 좀." "힘들겠다." "너도." 짧은 대화. 예전 같으면 여기서 끝이었다. 근데 오늘은 말했다. "10분만 쉬고 해." "...그럴까." 남편이 노트북을 덮었다. 나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말은 별로 없었다. 근데 괜찮았다. 10년을 함께 산 사람. 아이 둘을 함께 키우는 사람. 힘들 때 옆에 있는 사람. 완벽하지 않아도. 매일 사랑한다고 말 못 해도. 데이트 자주 못 해도. 우리는 부부다. 여전히. 지금 이대로 변하고 싶다. 동시에 지금이 나쁜 건 아니다. 우리는 나름 잘하고 있다. 아이들은 행복하다. 각자 일도 열심히 한다. 싸우지도 않는다. 근데 '나쁘지 않다'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좋아서 결혼했으니까. 육아 스케줄 공유하는 팀원이 아니라. 부부로 살고 싶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자주 실패할 것이다. 바쁜 날은 또 각자 살 것이다. 그래도 계속 시도하려고. 아주 작게라도. 남편도 그런 것 같다. 어제 말했다. "우리 주말에 영화 볼까?" "아이들은?" "...엄마한테 부탁하고." 데이트.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좋아." 작은 시작. 근데 시작은 한 거다.육아 파트너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부부니까. 작게라도 시도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