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대화가 '육아 스케줄' 공유로 끝나는 요즘

남편과의 대화가 '육아 스케줄' 공유로 끝나는 요즘

남편과의 대화가 '육아 스케줄' 공유로 끝나는 요즘 대화가 사라진 부부 어젯밤 남편이 말을 걸었다. "내일 회의 길어질 것 같은데, 아이들 픽업 가능해?" 나는 캘린더를 열었다. "4시까지는 힘들고, 5시면 돼." "알겠어. 그럼 엄마한테 부탁할게." "응." 대화 끝.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우리 언제부터 이랬지. 결혼 10년 차다. 대화의 90%가 아이들 일정이다. "내일 준호 학원 몇 시야?" "지아 준비물 챙겼어?" "다음 주 학부모 상담 누가 갈래?" "주말에 애들 어디 데리고 갈까?" 이런 것만 나눈다.언제부터였을까 둘째 낳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 그전부터였을 수도. 연애 시절엔 밤새 통화했다. 신혼 때는 주말마다 데이트했다. 드라마 같이 보고, 맛집 찾아다니고. 첫째 낳고도 괜찮았다. 아기 재우고 와인 마시며 이야기했다. "오늘 지아가 뒤집기 했어." "우리 딸 천재 아냐?"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있었다. 둘째는 달랐다. 창업도 겹쳤다. 나는 회사 키우느라, 남편은 승진 준비하느라. 아이 둘은 각자 다른 시간표로 움직였다. 어느새 우리는 '육아 파트너'가 됐다. 부부가 아니라. 남편도 노력한다 불만은 아니다. 남편은 정말 노력한다. 주변 대기업 남자들 중에선 잘하는 편이다. 아침에 아이들 밥 먹인다. 주말엔 공원 데리고 간다. 분리수거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시어머니가 놀랐다. "우리 아들이 집안일을 해?" 나는 웃었다. '집안일'이 아니라 '당연한 거'인데. 그래도 남편은 바뀌었다. 예전엔 '육아는 엄마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캘린더에 아이들 일정 다 넣는다. 나보다 더 꼼꼼할 때도 있다. 고맙다. 진심으로. 근데 뭔가 부족하다.우리는 팀원이 됐다 어느 날 깨달았다. 우리는 '프로젝트 팀'이다. 프로젝트명: 육아. 목표: 아이들 잘 키우기. 역할 분담: 명확. 업무 보고: 수시로. "내일 PT 있어서 늦을 것 같아." "알겠어, 내가 저녁 담당할게." "지아 준비물은?" "체크했어." "고마워." 효율적이다. 문제없다. 잘 굴러간다. 근데 외롭다. 회사에서도 팀 미팅한다. 집에서도 팀 미팅한다. 남편과의 대화가 슬랙 메시지 같다. "확인했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공유 감사합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업무적이 됐지. 연애가 그립다 가끔 남편이 웃으면 낯설다. '아, 이 사람 이렇게 웃었지.' 지난주 회식 사진을 봤다. 남편이 동료들과 맥주 마시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편하게 웃은 게 언제였지. 나한테는 안 웃는다. 아니, 웃긴 한다. 근데 다른 웃음이다. 피곤한 웃음. 의무적인 웃음. 나도 마찬가지다. 투자자 미팅에선 활짝 웃는다. 직원들이랑은 편하게 농담한다. 남편한테만 딱딱하다. 왜지. 생각해봤다. 남편 앞에서 긴장한다. 아이들 일 제대로 못 하면 미안하다. 회사 때문에 늦으면 미안하다. '좋은 엄마'가 못 되는 것 같아서. 남편도 그럴까. '좋은 아빠' 해야 한다는 부담. 그래서 우리가 서로 어색한 걸까.어제 저녁의 짧은 순간 어제 아이들 재웠다. 거실로 나왔다. 남편이 소파에 있었다. 보통은 각자 노트북 연다. 나는 슬랙, 남편은 이메일. 30분 후 각자 자러 간다. 근데 어제는 달랐다. 남편이 TV를 켰다.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같이 볼래?" 순간 당황했다. '나 일 해야 하는데...' 근데 앉았다. 프로그램은 재미없었다. 근데 웃었다. 남편도 웃었다. "저 사람 웃기네." "완전." 짧은 대화. 30분. 별거 아니었다. 근데 오랜만이었다. '육아 스케줄' 없이 나눈 대화. 남편이 말했다. "요즘 너 많이 힘들지?" "응, 너도 그렇고." "...그러게." 또 침묵. 근데 이 침묵은 편했다. 우리는 여전히 부부다 깨달았다. 나는 남편을 '아이들 아빠'로만 봤다. 남편도 나를 '아이들 엄마'로만 봤을 것이다. 우리는 역할이 됐다. 사람이 아니라. '대표'인 나. '과장'인 남편. '엄마'인 나. '아빠'인 남편. 근데 원래는 아니었다. '지영'이었고 '민수'였다. 28살 회사원이었고 30살 영업사원이었다. 그 사람들은 어디 갔지. 오늘 아침에 물었다. "당신 요즘 행복해?" 남편이 놀랐다. "갑자기?" "그냥." 남편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잘 모르겠어. 너는?" "나도." 솔직한 대답이었다. 행복한가. 불행하지는 않다. 아이들은 건강하다. 회사는 잘 굴러간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근데 행복하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작은 시도들 바꿔보기로 했다. 거창하게는 못 한다.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다. 근데 작게라도. 첫째, 주 1회 '우리 시간'. 아이들 재우고 30분만. TV든 뭐든 같이 본다. 스케줄 얘기 금지. 둘째, 아침 커피. 남편이 먼저 일어나면 커피를 내린다. 내가 먼저면 내가 내린다. 같이 마신다. 5분이라도. 셋째, 감사 표현. "고마워" 자주 하기. 당연한 거 없다고 생각하기. 넷째, 스킨십. 출근할 때 포옹. 어색하지만 해보기. 거창하지 않다. 근데 안 하던 것들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며칠 해봤다. 매일은 못 한다. 회의 늦으면 못 본다. 남편 야근하면 각자 잔다. 완벽하지 않다. 근데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남편이 웃는 횟수가 늘었다. 나도 덜 외롭다. 여전히 대화의 대부분은 육아다. "내일 준호 치과." "알겠어." 근데 가끔은 다른 얘기도 한다. "오늘 회의에서 말이야..." "어제 그 드라마 봤어?" 작은 것들. 우리는 완벽한 부부가 아니다. 연애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아이 둘 키우면서 창업하고 직장 다니는데. 당연히 힘들다. 근데 포기는 안 하려고. '육아 파트너'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부부니까. 오늘 밤에도 오늘도 아이들 재웠다. 거실로 나왔다. 남편이 노트북 보고 있다. "일 많아?" "응, 좀." "힘들겠다." "너도." 짧은 대화. 예전 같으면 여기서 끝이었다. 근데 오늘은 말했다. "10분만 쉬고 해." "...그럴까." 남편이 노트북을 덮었다. 나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말은 별로 없었다. 근데 괜찮았다. 10년을 함께 산 사람. 아이 둘을 함께 키우는 사람. 힘들 때 옆에 있는 사람. 완벽하지 않아도. 매일 사랑한다고 말 못 해도. 데이트 자주 못 해도. 우리는 부부다. 여전히. 지금 이대로 변하고 싶다. 동시에 지금이 나쁜 건 아니다. 우리는 나름 잘하고 있다. 아이들은 행복하다. 각자 일도 열심히 한다. 싸우지도 않는다. 근데 '나쁘지 않다'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좋아서 결혼했으니까. 육아 스케줄 공유하는 팀원이 아니라. 부부로 살고 싶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자주 실패할 것이다. 바쁜 날은 또 각자 살 것이다. 그래도 계속 시도하려고. 아주 작게라도. 남편도 그런 것 같다. 어제 말했다. "우리 주말에 영화 볼까?" "아이들은?" "...엄마한테 부탁하고." 데이트.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좋아." 작은 시작. 근데 시작은 한 거다.육아 파트너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부부니까. 작게라도 시도해보려고.

투자자가 물었다: '아이 둘이 있으시는데, 시간이 괜찮으세요?'

투자자가 물었다: '아이 둘이 있으시는데, 시간이 괜찮으세요?'

투자자가 물었다 시리즈A 미팅. 10시 정각. 투자사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김대표님. 아이 둘이 있으시는데, 시간이 괜찮으세요?" 나는 웃음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네, 시스템을 잘 만들어놨어요. 팀에 믿을만한 리더들이 있고요." 투자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은 여전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남자 CEO도 아이 있는 사람 많다. 김OO, 박OO... 다들 둘, 셋 있다. 근데 누가 걔넘한테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묻나. 묻는 사람 본 적 없다. 나는 왜 이 질문을 받는 건가. 엄마니까? 창업가이기 전에 엄마라는 전제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고, 그래서 투자할 가치가 낮다는 거인가.처음 받은 질문은 아니었다 작년 상반기 시드 라운드. 다른 투자사였다. "육아는 어떻게 하세요? 회사 성장하면 시간이 더 부족해질 텐데." 그다음 년도. 또 다른 투자자. "팀원 중에 엄마들이 많으신데, 야근이나 주말 출근 할 때 괜찮아요?" 패턴이 보였다. 나는 여성 창업가 네트워크에 물었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다. 신혜경 대표는 "넷 중 셋이 애 있다고 했을 때 투자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얘기까지 들었어"라고 했다. 한수정 대표는 "인터뷰 때 '아, 그럼 아빠 도와줄 사람이 있으세요?'라고 물어서 웃다가 화났어"라고 했다. 남자 CEO들은 안 받는 질문이다.그 밤 노트북 앞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밤 11시. 노트북을 켰다. 투자자 이메일을 다시 읽었다. 투자 조건들. 실적 목표. 마일스톤. 다 이해했다. 근데 그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시간이 괜찮으세요?' 이 질문 뒤에는 뭐가 숨어있나. 첫 번째: 너는 일을 제대로 못 할 거라는 의심. 두 번째: 아이들 때문에 회사를 팽개칠 거라는 예상. 세 번째: 여자는 결국 엄마 역할을 우선시한다는 선입견. 나는 지금 딸 학교 운동회를 못 갔다. 아들 첫 한글 수업도 못 했다. 남편 보고 '다녀와'라고 했다. 미안함도 죄책감도 있었다. 근데 그렇다고 나는 회사를 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생각한다.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서핑한다. 마케팅 데이터. 경쟁사 분석. 신입 이직 이유. 일요일 아침에 몰래 슬랙을 본다. 직원 메시지. 클레임. 솔루션. 나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회사를 위해 시간을 낸다. 그런데 투자자는 이 둘을 배타적으로 본다. 내가 엄마라는 건, 내가 경영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인가.통계와 현실 사이 나는 찾아봤다. 여성 창업가 자금 조달 통계. 한국 스타트업 투자 중 여성 창업가 비율: 8%. 전년도 대비 감소했다. 감소했다. 여성 창업가 중 자녀 있는 경우: 70%. 그 중 시리즈A 이상 자금 조달에 성공한 비율: 22%. 남성 창업가 중 자녀 있는 경우: 65%. 그 중 시리즈A 이상 자금 조달: 58%. 숫자는 말한다. 너무 명확하게. 투자자는 남자 CEO가 일과 가정을 병행해도 그걸 '효율성'이라고 부른다. 여자 CEO가 하면 '시간 관리 능력'을 의심한다. 같은 행동인데 다르게 평가된다. 내 동생 남편은 대기업 임원이다. 아이 셋 있다. 누가 그 사람한테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본 적 없다. 오히려 '와, 잘하시네요'라고 한다. 똑같이 아이를 낳았고, 똑같이 일하고 있는데. [IMAGE_4] 나는 뭐라고 대답했나 미팅 때로 돌아가자. 투자자: "아이 둘이 있으시는데, 시간이 괜찮으세요?" 내 대답: "네, 시스템을 잘 만들어놨어요. 팀에 믿을만한 리더들이 있고요." 솔직한 대답이었나? 아니다. 진짜 대답은 이거였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죠. 근데 그건 제 경영 능력의 증거입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 성과를 내는 법을 배웠거든요. 현재 월 매출 8000만원. 손익분기점 근접. 직원 만족도 4.7점. 이 수치들이 제 시간 관리 능력을 말해주지 않나요?" 근데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방어적으로 들릴까봐. 겁냈다. 혹시 '쓸데없는 감정섞은 대답'이라고 느껴질까봐. 여자라는 이유로 더 따져질까봐. 그래서 웃으며 둘러댔다. "시스템이 있어요." 나약했나. 그럼 뭐 어쩌겠나. [IMAGE_5] 결국 혼자 정리해야 했다 투자를 받긴 받았다. 15억. 조건은 통과했다. 근데 그 질문은 남아있다. 나는 생각한다. 이게 내 문제인가, 투자자의 문제인가. 둘 다다. 내 문제는 내가 이 질문을 받을 때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는 것. 투자자의 문제는 여전히 여자는 시간이 부족할 거라고 가정한다는 것. 근데 바꿀 수 있는 건 뭔가. 나는 투자자를 바꿀 수 없다. 투자자는 구사정(舊思定)에 빠져있다. 여자+엄마=업무 능력 저하. 이 공식은 그들 머리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숫자로. 성과로. 팀의 만족도로. 재투자율로. 그래서 맡은 일을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아이들 등원시킨 후 출근한다. 점심은 미팅으로 해결한다. 저녁 7시 퇴근해서 아이 봐준다. 밤 10시 다시 일을 한다. 이건 포기가 아니다. 이건 선택이다. 투자자가 의심해도, 시어머니가 뭐라고 해도, 나는 안다. 내가 뭐를 하고 있고, 왜 하는지. [IMAGE_6] 그 이후 미팅 다음 주에 투자자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혹시 시간 때문에 경영 체계 구축할 때 고민 있으신 분 있으신가요? 우리가 외부 경영 컨설턴트 지원해주고 싶어서요."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좋은 제안인가,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건가. 여성 CEO 모임에서 물어봤다. 신혜경 대표가 웃었다. "아, 그건 투자자 나름의 성장이야. 최소한 의식은 했단 거지." 맞다. 그게 뭐든 간에, 투자자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한 거다. 내 대답이 뭔지는 몰라도. 나는 컨설턴트를 받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답장을 썼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현재 경영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직원 50명, 100명으로 늘어날 때 그런 지원이 필요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이메일. 명확한 톤. 나는 감사하지만,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 투자자는 3일 후에 답변을 보냈다. "좋습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응원합니다." 응원한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투자 후 발생할 리스크에 대한 사전 대비인지는 모른다. 근데 뭐 상관인가. 나는 여기 있고, 일은 계속된다. [IMAGE_7] 솔직히 답하자면 투자자가 물었던 "시간이 괜찮으세요?"에 대한 진짜 대답은 이거다. 시간이 부족하다. 매우. 아이들이랑 시간도 부족하다. 남편이랑 대화할 시간도 없다. 운동할 시간, 친구 만날 시간, 책 읽을 시간. 다 부족하다. 근데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원들도 비슷하다. 강지은(27)은 엄마 아파서 주말마다 시골 내려간다. 박은영(32)은 아직 결혼 못 했는데, 회사에서는 그걸 왜 못 했냐고 은근히 묻는다. 신수영(35)은 '아이 두 명 있으니까 야근 빼달라'는 제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여자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나는 직원들한테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근데 나는 지키지 않는다. 이게 가장 큰 모순이다. 투자자가 나한테 물었던 질문을. 나는 내 직원들한테는 절대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안다. 이 질문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IMAGE_8] 마지막으로 다음 투자자 미팅이 있다. 내일 2시. 이번엔 다른 투자사다. 사람도 다르다. 혹시 또 같은 질문을 받을까. 받으면 어떻게 할까. 그땐 답할 거다. 명확하게. "시간은 부족합니다. 근데 저는 그 부족한 시간을 전략으로 채웠습니다. 현재 저희 팀의 생산성은 업계 평균 140% 입니다. 직원 1인당 매출은 5300만원. 마진율은 32%. 이게 제 시간 부족함을 증명하지 않나요? 오히려 이게 제 능력을 증명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덧붙일 거다. "아, 그리고. 이 질문이 필요하신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혹시 시간이 부족하면 회사가 망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대기업 임원들은 대부분 아이가 있는데요. 그분들한테는 같은 질문을 안 하시죠?" 아, 근데 이건 너무 공격적이겠다. 그냥 이렇게 하자. "시간이 부족하면 효율적이 되거든요. 그게 저한테 준 가장 큰 자산입니다." 웃으면서. 자신 있게.밤 11시 30분. 아이들은 자고 남편은 소파에 누워있다. 나는 여전히 노트북 켜있다. 내일 피칭 준비. 그 투자자는 누군지, 어떤 포트폴리오가 있는지, 어떤 점이 중요한지. 모두 찾아봤다. 시간은 부족하다. 근데 나는 계속된다.

새벽 5시, 엄마 CEO의 골든타임 일과

새벽 5시, 엄마 CEO의 골든타임 일과

새벽 5시, 엄마 CEO의 골든타임 일과 알람이 울린다 새벽 5시. 휴대폰 화면이 켜진다. 나는 눈을 감은 상태로 손을 뻗어 알람을 끈다. 남편은 여전히 자고 있다. 침대 옆 아이들 침대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이고 깊은 숨. 이게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침대에서 나온다. 발이 찬 바닥에 닿는다. 화장실에 간다. 세수한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어제 밤 11시에 잤으니까 6시간.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정도면 이제 괜찮은 편이다. 옷을 갈아입는다. 회사에 입을 옷이 아니라 사무실 카디건. 침대에서 입었던 티셔츠 그대로도 괜찮은데, 마음가짐의 문제다. 냉장고를 연다. 어제 준비해둔 커피가 있다. 아메리카노. 서너 모금에 마신다. 이제 5시 15분.2시간의 진짜 일 이게 골든타임이라고 깨달은 건 언제였나. 대아이 학교 보내고 나서 회사 가면 회의가 3개, 이메일 100개, 슬랙 알림 50개. 집중력을 모으려는 찰나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대표님, 잠깐 여쭤봐도 돼요?" 당연히 돼야 한다. 난 대표다.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새벽 5시부터 7시까지는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슬랙도 조용하다. 투자자 메일도 없다. 직원도 깨어나지 않았다. 고객 클레임도 잠든 시간이다. 오직 내 노트북과 내 생각만 있다. 전략 기획서를 연다. 요즘 고민이던 거. Q3 신사업 진출 계획. 저번 주 투자자 미팅에서 나온 피드백. "큐레이션만 하면 차별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차별성. 맞다. 그게 지금 문제다. 노트북 앞에서 1시간 반을 쓴다. 타닥타닥타닥. 손가락으로만 사고한다. 내 사고는 타이핑 속도와 같다.현재: 육아용품 큐레이션, 의존성 높음 문제: 차별성 부족, 마진율 낮음 기회: 커뮤니티 연결, 심화된 정보 제공 추진: 구독형 콘텐츠? 라이브 커머스? 전문가 매칭?이 생각들을 회사에서 출근 후에 정리하려고 했으면 언제 했을까. 회의 때문에, 전화 때문에, 직원 회의 때문에 절대 못 했다.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진실 근데 이게 지속 가능할까. 이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새벽 5시에 깨는 게 시스템인지 아니면 체력 낭비인지. 회사에서 주간회의 때 직원들 한테 말한다. "우리는 워라밸이 중요해요. 야근 금지. 저도 8시엔 나가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다. 정말 8시에 나간다. 그런데 10시에 다시 켜진다. 노트북을. 새벽 5시 루틴을 시작한 지 8개월. 3주 정도 쉰 날도 있다. 감기 걸렸을 때. 그 3주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나.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갔다. 투자자도 기다렸다. 시장도 움직였다. 근데 내 회사는 멈추지 않았다. 직원들이 돌렸다. 그럼 이 새벽 2시간은 뭐지.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잖아"라는 자위. "나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라는 핑계. 그런데 한편으로는 진짜다. 이 시간에 나온 아이디어들이 지난분기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신입 온보딩 프로세스를 다시 짠 것도 이 시간이었다. 시리즈A 투자 피치 자료의 첫 버전도. 회사가 성장하는 부분들 대부분이 이 2시간에서 나왔다. 그래서 계속한다. 어떻게 보면 그게 다다. 계속하는 것. 유지하는 것. 그래도 뭔가 빠진다 새벽 5시부터 7시는 업무 시간이다. 근데 회사 일이 아닌, 진짜 경영 생각을 하는 시간이다. 미시적 관리가 아니라 거시적 전략. 직원 급여 계산이 아니라 회사의 5년 로드맵. 고객 한 명 한 명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 CEO로서의 생각.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생각. 근데 이마저도 슬랙을 켜거나, 이메일을 열 때마다 끊긴다. 누군가는 이미 일을 시작했다. 미국 시간대의 투자자. 싱가포르 시간대의 공급업체. 세계는 24시간 돈다. 7시가 되면 나는 다시 엄마가 된다. 아이들 깨울 준비. 학교 가방 챙기기. 아들 기저귀 확인. 밥 먹어라, 우유 마셔라, 양치질 해라. 목소리가 자동으로 낮아진다. 부드러워진다. 대표였던 내가 사라진다. 출근 길에 차 안에서 노트북에 적었던 메모들을 다시 본다. 사무실 도착 30분 전. 이 내용들을 어떻게 직원들한테 설명할 것인가. 어떻게 미팅 안건으로 만들 것인가. 5분. 3년이 5분 만에 끝난다. 새벽 CEO에서 아침 엄마. 엄마에서 점심시간 대표. 대표에서 저녁 엄마. 밤 10시 다시 CEO. 그 사이를 쉼 없이 넘나든다.5시는 기적인가, 착각인가 솔직한 대답: 둘 다다. 새벽 5시에 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착각이다. 나 혼자는 이 시간을 견딜 수 없다. 친정엄마가 주 2회 아이들을 봐주신다. 남편이 육아를 분담한다. 회사가 작아서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다 떨어지면 이 루틴은 무너진다. 그걸 안다. 근데 기적도 맞다. 이 2시간이 없었으면 내 회사는 지금 여기 있지 않다. 15억 투자를 받는 순간도 몇 가지 빅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그 아이디어들이 언제 나왔나. 자명하다. 그래서 계속한다. "이게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다른 질문으로 답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언제 멈춰야 하나." 아이들이 크면 멈춘다고 생각했다. 딸이 초등학교 올라갔을 때도 "이제 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더 바빠졌다. 학교 행사 소식이 카톡으로 온다. 학용품을 챙겨줘야 한다. 숙제를 봐줘야 한다. 그래서 새벽 5시가 더 필요해졌다. 투자자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는다. "두 분 계신데 일과 가정 어떻게 하세요?" 남자 CEO한테는 안 묻는 질문이다. 난 알고 있다. 저 질문 뒤에 숨어있는 의심. "그래도 괜찮으세요?"라는, 반은 걱정이고 반은 의심. 내 대답은 짧다. "새벽 5시에 깹니다." 그럼 투자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이해가 된 것처럼. "아, 그렇군요. 그럼 괜찮겠네요." 그게 다다. 나는 새벽 5시에 깬다. 그러니까 괜찮다. 그러니까 된다. 오늘도 5시가 온다 내일 새벽도 알람이 울린다. 그걸 끄고 다시 자고 싶을 날도 있을 거다. 출근해서 직원들이 "대표님 좀 피곤해 보여요"라고 물을 때도 있을 거다. 남편이 "좀 자고 일해"라고 할 때도 있을 거다. 근데 나는 계속 일어날 거다. 왜냐면 새벽 5시에만 나는 온전히 나기 때문이다. 엄마도 아니고, CEO도 아니고,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그냥 나. 나의 생각을 타닥타닥 두드리는 손가락들. 내 미래를 그려보는 노트북. 내 꿈을 담는 2시간. 그게 기적인지 착각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매일 아침 그 선택을 한다. 침대에서 나올 것을 선택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내일 새벽도 알람이 울린다. 나는 눈을 뜬다. 또 다른 2시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