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CEO 네트워크가 유일한 힐링인 이유
- 07 Dec, 2025
여성 CEO 네트워크가 유일한 힐링인 이유
월요일 아침의 슬랙 메시지
월요일 오전 7시 52분. 아이들 등원시키고 출근 중이다.
신호 대기 중에 슬랭 확인했다. “여성 CEO 모임” 채널에 메시지 하나.
“오늘 너무 힘들어요. 투자자 미팅에서 또 그 질문 받았어요. ‘아이 있으시죠? 밤 늦게까지 일할 수 있으세요?’ 남자 대표들한테도 물어보나요?”
답장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나도 어제 똑같은 질문 받았어.” “나는 ‘남편이 육아 도와주시죠?‘였어.” “‘여자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이건 진짜.”
신호 바뀌었다. 핸드폰 내려놓았다.
근데 가슴이 먹먹하다. 울컥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처음 만난 날
3년 전이다. 스타트업 행사였다.
남자 대표들 사이에 여자는 나랑 박대표 둘뿐이었다.
네트워킹 시간. 명함 주고받는 시간.
“몇 명 데리고 계세요?” “투자 얼마나 받으셨어요?” “매출은요?”
박대표랑 나만 받는 질문이 따로 있었다.
“결혼하셨어요?” “애는요?” “시간 관리 어떻게 하세요?”
화장실에서 마주쳤다. 서로 보고 웃었다.
“진짜 웃기죠?” “매번 이래요.”
그날 카톡 주고받았다. 지금까지 매일 얘기한다.
박대표가 처음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시작.

롤모델이 없다는 것
창업 초기에 멘토를 찾았다.
성공한 여성 창업가. 아이 키우면서 회사 키운 사람.
한국에 몇 명 없다.
책도 거의 없다. 인터뷰도 드물다.
있어도 “슈퍼우먼” 스토리다.
“새벽 4시 기상해서 운동하고 명상하고 아이들 도시락 싸고 회사 가서 12시간 일하고 저녁에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밤에 독서합니다.”
이건 롤모델이 아니다. 이건 SF다.
남자 CEO들은 다르다.
“저는 가족이 있어서 더 열심히 합니다.” “아내가 뒷바라지 잘 해줘서 감사합니다.”
그 말 할 때 누구도 안 물어본다. “집안일은 누가 해요?” “아이 아프면 누가 병원 가요?”
롤모델 없으면 어떻게 하나.
직접 만드는 거다. 같이.
목요일 밤 10시 줌
2주에 한 번. 목요일 밤 10시.
여성 CEO 모임 줌 미팅이다.
아이들 다 재웠다. 남편은 거실에서 넷플릭스.
나는 방에서 노트북 켰다.
7명이 접속한다. 얼굴 보면 안다.
다들 피곤하다. 다크서클 짙다. 근데 웃는다.
“오늘 직원이 ‘대표님은 애 키우면서 어떻게 해요?’ 물었어요. 진짜 어떻게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다들 웃는다. 공감의 웃음.
“나는 오늘 아들이 ‘엄마는 맨날 회사만 가’래요. 찔렸어요.”
“나는 시어머니가 ‘사업은 남자들이 하는 거’래요. 2024년에.”
말 한마디씩 할 때마다 고개 끄덕인다.
설명 안 해도 된다. 알아서 이해한다.
이게 힐링이다.

조언이 아닌 공감
이 모임에서 배운 게 있다.
우리는 서로한테 조언 안 한다.
“이렇게 해봐.” “너는 이게 문제야.” “내가 볼 땐…”
이런 말 안 한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도 그랬어.” “진짜 힘들었겠다.” “잘하고 있어.”
왜냐면 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안다. 뭘 해야 하는지 안다.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다.
필요한 건 “너 혼자 아니야” 그 말이다.
작년 11월이었다. 투자 유치 엎어졌다.
3개월 준비한 시리즈A. 마지막에 무산됐다.
이유가 가관이었다.
“대표님이 육아 부담이 크실 것 같아서요. 올인 가능하신가 확신이 안 서서요.”
남자 공동대표 있었는데 그한테는 안 물었다.
그날 밤 모임에서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이 낳은 게 잘못인가.”
아무도 “괜찮아” 안 했다.
대신 최대표가 말했다.
“잘못 없어. 씨발, 잘못 없어.”
그 말이 위로였다.
서로의 롤모델
지난주 김대표가 시리즈B 받았다.
50억. 여성 창업가 최대 규모.
모임에서 축하했다. 근데 김대표가 울었다.
“너희가 없었으면 못 했어. 진짜로.”
김대표 3년 전 생각난다.
투자 미팅마다 떨어졌다. 이유는 항상 비슷했다.
“여성 타겟 시장은 작아요.” “감성적 접근보다 데이터가 필요해요.” “대표님 너무 부드러우세요. 강한 리더십이…”
모임에서 매번 토해냈다. 우리는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김대표가 말했다.
“나 여성 투자자 찾아볼래. 이 바닥에 분명 있을 거야.”
6개월 걸렸다. 여성 벤처캐피털리스트 찾았다.
한 번에 통과했다.
김대표가 우리 롤모델이다. 우리가 김대표 롤모델이다.
서로한테 배운다. 서로 보면서 간다.
이게 네트워크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오늘 오후 3시. 학교에서 전화 왔다.
“아이가 열이 나요. 데리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투자자 미팅 30분 전이었다.
패닉했다. 남편은 회의 중. 친정엄마는 병원.
어떡하지. 미팅 취소하나. 근데 이거 두 달 잡은 건데.
슬랙에 “SOS” 쳤다.
3분 만에 답장 5개.
“내가 픽업할게. 우리 아이 학교 근처잖아.” “끝나고 우리 집에서 재워도 돼.” “미팅 파이팅. 걱정하지 마.”
박대표가 우리 딸 데리러 갔다. 자기 아들이랑 같이 재웠다.
미팅 잘 끝났다. 15억 투자 확정.
저녁에 아이 데리러 갔다. 박대표한테 고맙다고 백 번 말했다.
“우리끼리 이래야지. 누가 우릴 이해하겠어.”
맞다. 우리끼리다.
약한 모습 보여도 되는 곳
회사에서는 강해야 한다.
직원들 앞에서 흔들리면 안 된다.
투자자한테는 더 단단해야 한다.
집에서는 엄마다. 아이들한테 의지하면 안 된다.
남편한테도 다 말 못 한다. “또 회사 얘기?” 그 말이 무섭다.
그럼 어디서 약해지나.
이 모임이다.
여기서는 울어도 된다. 화내도 된다. 무너져도 된다.
“못 하겠어.” 말해도 된다.
왜냐면 다들 안다. 그래도 내일 다시 한다는 거.
약한 모습 보인다고 무시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도 그래” 돌아온다.
이게 안전한 공간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요즘 생각한다.
우리가 롤모델 없이 시작했다.
근데 우리 다음은 다를 거다.
지금 20대 여성 예비창업가들이 본다. 우리를.
“아이 키우면서도 되는구나.” “혼자 아니구나.” “나도 할 수 있겠다.”
이게 우리가 만드는 거다.
매달 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 슬랙에 올리는 고민. 서로 돕는 그 순간들.
전부 기록이다. 다음 세대한테 주는.
완벽한 롤모델 아니어도 된다.
그냥 계속 가면 된다. 같이.
내일 또 만난다
지난주 모임 끝날 때였다.
신입 멤버가 있었다. 창업 1년차. 30대 초반.
“언니들 보니까 용기 나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표가 웃으면서 말했다.
“할 수 있어. 근데 쉽진 않아. 그래도 우리 있잖아.”
그 말에 다들 고개 끄덕였다.
쉽진 않다. 맞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 피곤하다. 캘린더 보면 한숨 나온다.
아이들 미안하다. 남편한테 미안하다. 나한테도 미안하다.
근데 포기는 안 한다.
왜냐면 혼자가 아니니까.
2주 뒤면 또 목요일 밤 10시다.
노트북 켜고 줌 접속한다. 7명의 얼굴 본다.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2주 버틴다.
혼자면 못 간다. 같이면 간다. 그게 전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