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온 가족이 함께인데 자꾸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 09 Dec, 2025
주말 온 가족이 함께인데 자꾸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토요일 오전 10시
딸아이가 “엄마, 나랑 놀자” 했다. 손에 레고 들고 있었다. “응, 엄마 잠깐만”이라고 했다. 슬랙 알림이 떴다.

토요일인데 알림을 껐어야 했다. 근데 못 껐다. 왜냐면 투자자가 주말에 메일 보낸다고 했거든. 시리즈B 준비 중이다. 그 메일이 올 수도 있다.
딸아이는 내 옆에 앉았다. 혼자 레고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랙을 봤다. 개발팀 리드가 긴급 이슈 올렸다. “주말인데 죄송한데요, 결제 오류 떴어요”
손가락이 움직였다. “확인했어요. 월요일 아침 회의 잡을게요” 타이핑하는 동안 딸아이가 “엄마” 했다. “응?” 하면서도 눈은 화면에 있었다.
점심 먹으면서
남편이 파스타를 만들었다. 아들이 “맛있다!” 소리쳤다. 딸아이는 조용히 먹었다. 나는 포크 들고 한 손으론 폰을 봤다.

슬랙 읽지 않은 메시지 37개. 주말인데 왜 이렇게 많아. 아, 마케팅팀이 월요일 광고 기획안 공유했구나. 지금 안 봐도 되는데. 근데 보게 된다.
남편이 “맛있어?” 물었다. “응, 맛있어”라고 했다. 근데 뭘 먹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맛을 모르겠다.
딸아이가 “엄마 오늘 뭐 할 거야?” 물었다. “응? 아, 엄마랑 뭐 하고 싶어?” “공원 가고 싶어” “그래, 갈게”
근데 마음 한편에서는 계산했다. 공원 2시간, 집 돌아오면 4시. 저녁 준비 6시까지. 그럼 오늘은 투자 제안서 못 보는 거네. 일요일에 봐야 하나.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남편이랑 벤치에 앉았다. 햇살이 좋았다. 근데 폰이 진동했다.

또 슬랙이다. 이번엔 CFO였다. “대표님, 이번 주 캐시플로우 리포트 드립니다” 엑셀 파일이 첨부됐다.
열어봤다. 숫자들이 보였다. 마케팅비 800만원 초과. 예상보다 200만원 더 나갔다.
심장이 쿵 했다. 월요일에 물어봐야 한다. 어디서 샜는지.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근데 계속 생각난다.
딸아이가 “엄마! 그네 밀어줘!” 소리쳤다. “응!”하고 일어났다. 근데 폰은 손에 쥐고 있었다. 그네를 밀면서도 화면을 봤다.
“엄마, 높이!” “그래” 밀면서도 슬랙 채널을 스크롤했다. 한 손으로.
남편이 “폰 좀 놔” 했다.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아, 미안. 급한 거” “토요일인데 뭐가 급해”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안 급하다. 근데 안 보면 불안하다. 그게 문제다.
저녁 8시
아이들 재웠다. 남편이랑 소파에 앉았다. TV를 틀었다. 근데 또 폰을 봤다.
남편이 한숨 쉬었다. “오늘 하루 종일 폰만 봤어” “미안해. 일이 좀…” “일은 항상 있잖아”
맞는 말이다. 일은 항상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도 모자라서. 토요일 일요일까지 일한다.
“나도 안 그러고 싶어”라고 했다. 근데 목소리가 작았다. 확신이 없었다. 정말 안 그러고 싶은 건가. 아니면 못 놓는 건가.
남편이 “애들이 섭섭해해”라고 했다. 그 말이 제일 아팠다. 사실 나도 안다. 딸아이 눈빛 봤다. “엄마 또 폰 보네” 하는 표정.
일요일 아침
새벽에 깼다. 5시 30분. 원래 새벽형 인간이긴 한데. 오늘은 꿈을 꿨다.
투자자가 “대표님은 집중력이 없으시네요”라고 했다. 회의실에 아이들이 있었다. 레고 조립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슬랙을 보고 있었다.
식은땀 흘리며 일어났다. 폰을 봤다. 슬랙 알림 12개. 일요일 새벽인데도.
아, 시차 있는 파트너사구나. 미국 금요일 오후니까. 그래도 지금 볼 필요는 없다.
근데 봤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중독이다. 이건 중독인 거다.
거실로 나왔다. 커피를 내렸다. 창밖을 봤다. 아직 어둡다.
이 시간이 예전엔 좋았다. 아이들 깨기 전 나만의 시간. 근데 요즘은 이 시간도 일한다. 슬랙 확인하고, 메일 답장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투자 제안서를 열었다. 집중하려고 했다. 근데 딸아이 방에서 소리가 났다.
월요일이 두렵다
주말이 끝나간다. 아이들이랑 제대로 놀지 못했다. 남편이랑도 제대로 대화 못 했다. 근데 일은 어느 정도 했다.
이게 맞나. 잘 모르겠다. 대표로서는 책임감이고. 엄마로서는 직무유기다.
여성 CEO 모임에서 들었다. “완벽한 워라밸은 환상이에요” “그냥 덜 죄책감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근데 어떻게 배워. 딸아이 눈빛 보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엄마는 나보다 폰이 더 좋아” 그 말 듣고 싶지 않은데.
슬랙을 끄려고 했다. 알림을 off 하려고 했다. 근데 못 했다. 손가락이 안 움직였다.
만약에. 만약에 진짜 급한 일이 생기면. 만약에 투자자가 연락하면. 만약에 서버가 다운되면.
핑계다. 다 핑계인 거 안다. 월요일 아침에 처리해도 된다. 세상이 안 망한다.
근데 불안하다. 통제력을 잃는 기분이다. 회사가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갈 것 같다. 착각인 거 아는데.
남편이 주말에 한 말. “회사는 네가 없어도 하루는 돌아가. 근데 애들은?”
그 말이 계속 맴돈다. 맞는 말이다. 근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음 주말은
다르게 하고 싶다. 슬랙 알림 꺼놓고.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일요일 저녁 7시까지. 완전히 끄고 싶다.
근데 할 수 있을까. 자신 없다. 벌써 불안하다.
딸아이가 자기 전에 물었다. “엄마, 다음 주말엔 진짜 나랑만 놀 거야?” “응, 그럴게” “폰 안 볼 거야?” ”…응”
대답하면서 떨렸다. 지킬 수 있을까. 이 약속.
창업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시간 관리하는 거니까 더 자유롭겠지’ ‘아이들이랑 더 많이 있을 수 있겠지’
개소리였다. 오히려 더 못 놓는다. 출퇴근이 없으니까 경계가 없다. 집에 있어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아이들 옆에 있어도 머릿속은 회사다.
엄마 CEO 선배가 그랬다. “10년 후 후회하는 건 일을 덜 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랑 덜 논 거예요” 그 말이 머리로는 이해된다. 근데 지금 당장은 회사가 불타고 있는 것 같다.
매출 성장률. 투자 유치. 직원 관리. 다 중요하다. 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진짜 그런가. 정말 다 나여야만 하나. 조금 놓으면 안 되나.
손가락이 말해준다
슬랙 확인하는 손가락. 자동으로 움직인다. 의식하지 않아도. 씻으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아이 재우면서도.
이 손가락이 내 상태를 보여준다. 불안한 거다. 통제 욕구가 강한 거다. 놓지 못하는 거다.
다음 주 월요일. 팀 회의에서 말할까 생각한다. “주말엔 긴급한 것만 연락 주세요” “저도 주말엔 슬랙 안 볼게요”
근데 무섭다. 팀원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대표는 편하게 쉬네’ ‘우린 주말에도 일하는데’
아니다. 이런 생각 자체가 문제다. 내가 먼저 경계를 만들어야. 팀원들도 따라온다.
딸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 폰 좀 그만 봐” 그 목소리가 들린다.
다음 주말. 정말로 슬랙을 끈다. 알림을 off 한다. 폰을 서랍에 넣는다.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근데 해야 한다.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초등 2학년도 금방 지나간다. 6살도 이미 컸다.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슬랙은 월요일에도 있다. 메일도 그때 확인하면 된다. 회사는 하루 이틀 내가 없어도 돌아간다.
근데 아이들의 주말은. 딱 이 주말만 있다. 다시 안 온다.
손가락은 또 슬랙을 향한다. 근데 이번엔 멈춘다. 조금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