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Dec, 2025
강남 위워크 11층, 스타트업 오피스의 현실과 이상
11층에서 본 풍경 강남 위워크 1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여전히 설렌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리벽 너머로 강남대로가 보인다. 아침 9시, 출근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직인다. 나도 저들 중 하나였다. 11번가 MD 5년,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여기가 꿈이었다. '언젠가 저런 곳에서 일하겠지.' 위워크 11층, 스타트업 대표.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2020년 1월. 처음 계약서에 사인했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280만원. 6인실 작은 공간. 남편이 물었다. "너무 비싼 거 아냐?" 아니었다. 투자였다. 좋은 주소는 브랜드다. 직원 3명이랑 입주했다. 프리 맥주, 커피, 간식. 회의실은 앱으로 예약. 복사기도 스캐너도 다 있다. '여기서 성공하자.' 모두 눈빛이 반짝였다. 나도 그랬다. 진짜로. 4년이 지났다 지금은 15인실로 옮겼다. 월세 650만원. 직원은 15명. 숫자만 보면 성장이다. 시리즈A 15억 유치했다. 테크크런치 기사도 났다. "여성 육아용품 큐레이션 플랫폼, 투자 유치 성공"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근데 여기 앉아있으면 이상하다. 내가 뭘 이룬 건지 모르겠다. 월매출 8000만원. 손익분기점 근접. 투자자 보고는 '선방'이다. 그런데. 저녁 7시에 퇴근한다. 아이들 저녁 먹여야 해서. 직원들은 9시까지 있다. 미안하다. 늘. "대표님 먼저 가세요." 다들 웃으며 말한다. 진심인지 모르겠다. 남자 대표들은 밤 11시까지 있다. 옆 팀 대표는 자정 넘어 택시 타고 간다. "헌신적"이라고들 한다. 나는? "워라밸 챙기시네요." 투자자가 웃으며 말했다. 칭찬인지 비난인지. 이상과 현실 사이 4년 전엔 이상만 있었다. '여성도 창업할 수 있다.' '엄마도 대표가 될 수 있다.' '아이 키우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 믿었다. 진짜로.근데 현실은 다르다.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아이들 깨기 전 2시간. 이게 내 골든타임이다. 메일 확인, 기획서 검토, 슬랙 답장. 7시에 아이들 깨운다.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등원시킨다. 8시 반에 위워크 도착. 점심은 미팅이다. 투자자, 파트너사, 입점 브랜드. 밥 먹는 건지 일하는 건지. 저녁 7시 퇴근. 아이들 데리고 저녁 먹는다. 숙제 봐준다. 씻긴다. 재운다. 밤 10시. 노트북 다시 켠다. 직원들이 올린 슬랙 메시지. "대표님, 내일 회의 전에 검토 부탁드려요." 12시에 잔다. 5시간 자고 다시 일어난다. 이게 4년째다. 여기서 본 것들 위워크엔 스타트업이 많다. 다 비슷해 보인다. 맥북, 듀얼모니터, 서서 일하는 책상. 근데 다르다. 남자 대표들은 밤늦게까지 있다. 주말에도 나온다. "회사가 내 애기죠." 농담처럼 말한다. 여자 대표는 드물다. 11층에 나 포함 3명. 한 명은 미혼, 한 명은 아이 없다. 아이 있는 여성 대표는 나뿐. 투자자 미팅 때마다 듣는다. "아이 있으시죠? 시간 괜찮으세요?" 남자 대표한테는 안 묻는다. 한 번은 화가 났다. "괜찮습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일합니다." 말했다. 투자자가 웃었다. "열정 있으시네요." 열정? 선택지가 없는 거다. 옆 팀 남자 대표. 30대 초반, 미혼. 밤 11시까지 일한다. 주말에 해외 출장 간다. 투자자들이 좋아한다. "저런 친구가 성공하죠." 나는? "대표님, 워라밸 좋으시겠어요."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여기 있는 이유가 있다. 작년 가을, 고객 후기 하나를 봤다. "저희 집 아기 피부가 너무 약해서 고민이었는데, 여기서 추천해준 제품 써보니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그 순간. '아, 이거구나.' 돈 벌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육아하면서 아팠던 기억. 믿을 만한 제품 찾기 어려웠던 기억. '내가 만들자.' 그래서 시작했다. 시리즈A 투자 유치했을 때. 남편이 물었다. "이제 좀 여유로워지겠네?" 아니었다. 더 바빠졌다.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 투자금은 직원 월급이다. 마케팅 비용이다. 재고 확보다. 내 통장엔 여전히 돈이 없다. 대표 월급 300만원. 4년째 그대로다. 남편 월급으로 산다. 애들 학원비도, 생활비도. 미안하다. 늘. 11층의 밤 가끔 야근한다. 아이들 친정에 맡기고. 직원들 다 퇴근하고. 밤 10시 위워크. 조용하다. 청소하시는 분만 계신다. 창밖을 본다. 강남이 빛난다. 여전히 불 켜진 건물이 많다. 다들 열심히 산다. 나도.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안다. 4년 전 꿈꿨던 것과 지금이 다르다는 걸. 그래도. 여기 있다. 11층 위워크. 강남대로가 내려다보이는 곳. 여자가, 엄마가, 대표로 있다. 쉽지 않다. 매일 미안하고 힘들다. 근데 그만둘 생각은 없다. 아침이 온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자동으로 몸이 일어난다. 거실로 나간다. 아이들 장난감이 어질러져 있다. 어젯밤에 못 치웠다. 노트북을 켠다. 슬랙에 메시지 50개. 메일 80통. 커피를 내린다. 세 번째다. 아니, 첫 번째. 하루가 시작된다. 7시. 아이들 깨운다. "엄마, 오늘 수업 참관 오는 거지?" 딸아이가 묻는다. 캘린더를 확인한다. 투자자 미팅이 잡혀 있다. 옮길 수 없다. "미안해. 다음엔 꼭 갈게." 딸이 실망한 표정이다. 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 8시 반. 위워크에 도착한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11층. 문이 열린다. 유리벽 너머로 강남이 보인다. 오늘도 사람들이 움직인다. 이상과 현실. 꿈과 일상. 대표와 엄마. 다 나다. 동시에 존재한다.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여기 강남 위워크 11층. 4년이 지났다. 처음 꿈꿨던 것과 다르다. 더 힘들다. 더 복잡하다. 근데 후회는 없다. 여자도 창업할 수 있다. 엄마도 대표가 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직원 15명이 매일 출근한다. 고객들이 후기를 남긴다. 투자자들이 기대한다. 압박이지만 책임이다. 무겁지만 의미 있다. 저녁 7시. 오늘도 퇴근한다. 직원들에게 말한다.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 다들 웃으며 답한다. "대표님도요." 미안함과 감사함. 항상 같이 온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11층에서 1층으로. 문이 열린다. 강남역 출구.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나도 섞인다. 집으로 간다. 아이들이 기다린다. "엄마 왔다!" 안는다. 따뜻하다. 이것도 내 일이다. 밤 10시. 노트북을 다시 켠다. 내일 준비한다. 새벽 5시에 또 일어날 것이다. 위워크 11층으로 갈 것이다. 계속 할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 나는 여기 있다.완벽한 대표도, 완벽한 엄마도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 출근한다.
- 13 Dec, 2025
'시간 없어서요'가 내 버릇이 된 언제부터인가
'시간 없어서요'가 내 버릇이 된 언제부터인가 또 그 말을 했다 "죄송해요, 시간이 없어서요." 오늘만 세 번째다. 아침에 남편한테, 점심에 투자사 담당자한테, 저녁에 딸아이한테. 입에 붙었다. 자동 응답처럼 나온다. 남편이 "이번 주말에 우리 둘이 영화 볼까?" 했을 때. 투자사에서 "다음 주 목요일 저녁 어떠세요?" 물었을 때. 딸이 "엄마 금요일 학예회 올 거지?" 물었을 때. 전부 같은 대답이었다. "시간이 없어서."그런데 진짜 시간이 없는 걸까. 오늘 캘린더를 다시 봤다. 9시부터 7시까지 빼곡하긴 하다. 팀 회의, 1대1 미팅, 신규 브랜드 제안서 검토, 시리즈A 후속 보고. 근데 그 사이 SNS는 봤다. 유튜브 쇼츠도 3개 봤다. 점심 먹고 동료랑 커피 마시면서 30분 수다 떨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었다. 우선순위가 꽉 차 있는 거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창업 1년차엔 안 그랬다. "시간 만들면 되죠!" 했다. 실제로 만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저녁엔 남편이랑 와인 마시고, 주말엔 아이들이랑 놀이터 갔다. 2년차부터 달라졌다. 직원이 5명에서 10명이 됐다. 책임이 늘었다. 누군가 "대표님 이것 좀 봐주세요" 하면 못 본 척 못 했다. 투자 미팅이 잡히면 무조건 갔다. "다음에요"가 "안 된다"는 뜻인 걸 알았으니까. 3년차엔 아예 포기했다. 운동은 사치. 친구 약속은 3개월에 한 번. 부부 데이트는 기념일만. 딸아이 학예회는... 작년 거 하나 놓쳤다. 올해도 놓칠 것 같다."시간 없어서요"가 내 시그니처가 됐다. 명함에 새겨도 될 정도다. 김대표, 38세, '시간 없는 사람'. 진짜 중요한 건 뭘까 어제 딸이 물었다. "엄마는 회사가 더 중요해, 나랑 동생이 더 중요해?" 칼이었다. 가슴에 꽂혔다. "너희가 더 중요하지!" 했다. 근데 거짓말 같았다. 내 캘린더는 정직했다. 회의 12개, 미팅 8개, 아이들 학교 행사 1개. 그것도 '미정'. 중요한 건 뭘까. 진짜로. 회사가 잘 돼야 아이들 학비 낼 수 있다. 투자 받아야 직원들 월급 줄 수 있다. 브랜드 미팅 가야 매출이 는다. 다 맞는 말이다. 근데 딸아이 학예회는 올해밖에 없다. 2학년 학예회는 다시 안 온다. 남편이랑 영화 보는 것도, 올해 안 보면 내년엔 또 다른 핑계가 생긴다.우선순위가 꽉 차 있다는 건, 누군가를 계속 밀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 일이 1순위면, 가족은 2순위다. 투자사 미팅이 먼저면, 부부 데이트는 나중이다. 신규 브랜드 제안이 급하면, 내 운동은 안 급하다. 그렇게 밀려난 것들이 쌓인다. 남편의 서운함, 딸의 실망, 내 건강, 친구들과의 거리. 전부 "나중에"로 쌓여있다. 언젠간 처리해야 할 숙제처럼. 포기하고 있는 것들 정리해봤다. 내가 '시간 없어서'라는 말로 실제로 포기한 것들. 운동. 작년엔 필라테스 3개월 끊었다. 5번 갔다. 1회당 12만원. 웃긴다. 친구. 대학 동기들 만남 3번 연속 펑크. 이제 단톡방에서 내 이름 부르면 다들 "또 시간 없다고 하겠지" 농담한다. 농담이 아니다. 사실이다. 부부 대화. 침대에 눕자마자 노트북 켠다. 남편이 "오늘 어땠어?" 물으면 "피곤해"라고 답한다. 대화가 아니다. 리포트다. 나. 책 읽는 것, 음악 듣는 것, 그냥 멍 때리는 것. 다 없어졌다. 나를 위한 시간이 제일 먼저 잘렸다. 매일 아침 거울 보면 낯설다. 이게 나인가. 항상 피곤한 얼굴, 항상 바쁜 표정, 항상 "시간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네 선택이잖아." 맞다. 내가 선택했다. 창업도, 확장도, 투자 유치도. 다 내가 원했다. 근데 선택이라는 말이 면죄부는 아니다. 선택한 것에도 대가가 있다. 회사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한 거다. 선택과 포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요즘 드는 생각.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회사가 시리즈B 받고, 매출이 월 2억 되고, 직원이 30명 되면. 그때는 시간이 날까. 아니다. 더 바빠진다. 더 많은 회의, 더 큰 책임, 더 복잡한 문제. 결국 '시간이 나면'이라는 가정은 오지 않는다. 시간은 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 근데 나는 만들지 않고 있다. 핑계만 만들고 있다. "시간 없어서요." 이 말은 거짓말이다. 진짜 의미는 이거다. "당신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서요." 잔인하지만 사실이다. 오늘은 달리 말해볼까 오늘 저녁, 딸이 또 물었다. "엄마 금요일 올 수 있어?" 입이 먼저 움직였다. "시간이..." 근데 멈췄다. 다시 생각했다. 금요일 오후 2시. 신규 브랜드 제안 미팅이 잡혀 있다. 옮길 수 있나. 옮길 수 있다. 옮기고 싶냐. 솔직히 귀찮다. 하지만 해야 하나. 해야 한다. "갈게." 말했다. "엄마 꼭 갈게." 딸이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환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 보니까 알겠다. 내가 뭘 포기하고 있었는지. 미팅은 다음 주로 옮겼다. 담당자한테 "개인 사정이 생겨서요" 했다. 개인 사정. 딸의 학예회. 이것도 '사정'이 맞다. 중요한 사정이다. 캘린더에 금요일 오후 2시를 블록했다. 제목은 "은지 학예회". 회의실 예약하듯 블록했다. 이 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안 옮긴다. 시간은 만드는 것 깨달았다. 시간 없다는 말은 변명이다. 진짜 의미는 "우선순위가 아니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만든다. 투자사 대표가 "내일 점심 어때요?" 하면 만든다. 기존 약속 옮기고, 회의 미루고, 시간 만든다. 왜. 중요하니까. 가족도 중요하다. 남편도 중요하다. 나도 중요하다. 근데 이건 안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로 미루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이제 바꾸려고 한다. 완벽하게는 못 바꾼다. 나도 안다. 여전히 바쁠 거고, 여전히 선택해야 하고, 여전히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바꾸고 싶다. "시간 없어서요"라는 자동 응답. 이 말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기. 진짜 시간이 없나, 아니면 우선순위가 아닌가. 그리고 가끔은 우선순위를 바꾸기. 회사가 아니라 가족을, 투자사가 아니라 남편을, 미팅이 아니라 나를 먼저 두기. 버릇을 고치는 중 여전히 바쁘다. 오늘도 회의 3개, 미팅 2개 있다. 근데 저녁 7시는 비워뒀다. 남편이랑 집에서 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 배달 시켜서 먹을 거다. 근사하진 않다. 근데 함께 있는 시간이다. 토요일 오전도 비워뒀다. 아이들이랑 놀이터 가기로 했다. 노트북 안 들고 간다. 슬랙 알림도 끈다. 2시간만. 온전히 엄마로만 있는 시간. 일요일 저녁은 내 시간이다. 책 한 권 읽는다. 아무도 방해 안 한다. 남편한테 부탁했다. "이 시간만큼은 나 좀 내버려 둬." 남편이 웃으며 고개 끄덕였다. 작은 시작이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다. 근데 이렇게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10년 뒤에도 똑같을 것 같다. "시간 없어서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걸 계속 놓치면서. 누구를 위한 바쁨인가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가. 회사 키우려고. 맞다. 그럼 회사는 왜 키우나. 가족 먹여 살리려고. 맞다. 그럼 가족과의 시간은 왜 없나. 모순이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면서, 가족과의 시간은 제일 나중이다. 아이들 좋은 학교 보내려고 번다면서, 아이들 학교 행사는 못 간다. 남편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도 회사 다닌다. 과장이다. 야근도 한다. 근데 이 사람은 "시간 없어"란 말 잘 안 한다. 주말엔 아이들이랑 논다. 저녁엔 설거지한다. 어떻게 그럴까. 물어봤다.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내?" 남편이 웃었다. "안 내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지. 중요하니까." 맞다. 만드는 거다. 중요하면 만든다. 나도 회사 일은 만든다. 투자 미팅, 브랜드 제안, 팀 회의. 다 중요하니까 만든다. 그럼 가족은. 나는. 덜 중요한가. 아니다. 더 중요하다. 근데 덜 긴급하다. 여기가 함정이다.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것들은 계속 밀린다. 변명을 멈추기로 했다 "시간 없어서요"는 이제 안 쓰려고 한다. 대신 솔직하게 말하려고 한다. "지금은 다른 게 더 급해서요." 또는 "이게 제겐 우선순위가 아니에요." 또는 "죄송하지만 이번엔 못 할 것 같아요." 변명 안 한다. 핑계 안 댄다. 시간 탓 안 한다. 내 선택이니까. 선택하는 거니까. 근데 동시에 이것도 하려고 한다. 가끔은 우선순위 바꾸기. 회사가 1순위인 날이 80%라면, 가족이 1순위인 날을 20%는 만들기. 나를 1순위로 두는 날을 10%는 만들기. 완벽하진 않을 거다. 여전히 회의 많고, 미팅 많고, 결정해야 할 게 많다. 여성 CEO라는 것도 여전히 힘들다. "애 있는데 괜찮으세요?"라는 질문도 여전히 받는다. 근데 적어도 이건 바꿀 수 있다. 내가 뭘 선택하고, 뭘 포기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 "시간 없어서요"가 아니라 "이번엔 이걸 선택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시간은 없는 게 아니다. 만드는 거다. 중요한 건 만들어진다.
- 12 Dec, 2025
새벽에 혼자 우는 밤,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혼자 우는 밤, 아무도 모르게 새벽 2시 17분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손으론 키보드 치고, 한 손으론 눈물 닦았다. 투자자한테 보내는 주간 리포트. "이번 주 목표 달성률 92%, 고객 만족도 상승 중입니다." 타이핑하면서 눈물 떨어졌다. 키보드에 눈물 떨어지면 안 된다. 15만원짜리 기계식이다. 이런 거 생각하니까 웃겼다. 웃으면서 또 울었다.거실 바닥엔 레고가 널려 있다. 아까 준우가 "엄마랑 만들자"고 가져온 거다. "엄마 지금 일 있어. 내일 할게." 했다. 내일은 언제인가. 내일도 똑같을 건데. 강한 척하는 것도 일이다 오늘 오후 3시. 시리즈B 투자 미팅. VC 파트너가 물었다. "아이들 있으시죠? 시간 관리 괜찮으세요?" 남자 대표들한테도 이런 질문 하나. 궁금해서 물어봤다. 안 한대. "네, 괜찮습니다. 시스템이 잘 잡혀 있어서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시스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저녁 10시까지 버티는 게 시스템이다. 친정엄마한테 "미안해" 스무 번 말하는 게 시스템이다. 아이들 재우고 다시 노트북 여는 게 시스템이다. 그 파트너는 40대 남자다. 아이 셋 있다고 했다. 미팅 끝나고 "애들이랑 저녁 먹으러 가봐야죠" 했다. 6시에. 나는 9시에 들어갔다. 준우는 이미 자고 있었다.누구한테 말하나 남편한테? 남편도 힘들다. "나도 회사 다니고 육아 분담하잖아." 맞다. 한다. 근데 다르다. 남편이 야근하면 "일 열심히 하네" 소리 듣는다. 나는 "애 좀 보지" 소리 듣는다. 시어머니한테? 지난주에 또 그랬다. "며느리가 집에 좀 있어야 애들이 안정적이지." 친정엄마한테? 엄마는 나 때문에 매주 서울 올라온다. 부산에서 KTX로. "괜찮아, 손주들 보는 재미로 산다." 고맙지만 미안하다. 직원들한테? "대표님 힘드시죠? 저희도 도와드릴게요." 고마운데 말 못 한다. 나는 대표다. 버텨야 한다. 여성 CEO 모임에서? 거기서도 조심스럽다. 다들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무너지는 것 같다. 그래서 새벽에 운다. 혼자서. 오늘 울게 된 이유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아침에 지윤이가 그랬다. "엄마, 오늘 학교 참관 수업인데." 모른다. 알림장에 있었나. 확인 못 했다. "엄마 일 있어서 못 가. 미안해." "다른 애들 엄마는 다 온대." 가슴이 찢어졌다. 근데 오늘 투자 미팅이 있다. 15억 들어오면 직원 15명이 월급 받는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답이 없다. 점심에 MD팀장이 말했다. "대표님, 리뷰 응대 가이드 확인해주세요." 확인했다. "수고했어요. 이대로 진행해요." 팀장이 웃었다. "대표님 항상 긍정적이셔서 좋아요." 긍정적인 게 아니다. 무너질 시간이 없는 거다. 저녁에 남편이 물었다. "요즘 네 얼굴 왜 그래?" "피곤해서." "좀 쉬지 그래." 쉬면 회사가 멈춘다. 그럼 직원들이 어떻게 되나. 고객들은. 투자자들은. 아이들은. 모든 게 내 어깨에 있다.강한 여자가 되라고 어렸을 때부터 들었다. "여자는 강해야 해." 대학 때도. "여자가 사회 나오려면 남자보다 두 배는 해야지." 회사 다닐 때도. "여자 임원 별로 없잖아. 네가 해봐." 창업할 때도. "여성 창업가 롤모델이 되세요." 출산 후에도. "워킹맘들 희망이 되는 거예요." 강하다는 게 뭔가. 안 우는 거? 안 힘든 거? 다 해내는 거? 나는 강하지 않다. 그냥 버티는 거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버틴다. 아이들 밥 먹이고 버틴다. 출근해서 버틴다. 미팅하면서 버틴다. 직원들 앞에서 버틴다. 투자자 앞에서 버틴다. 시어머니 앞에서 버틴다. 그리고 새벽에 무너진다. 혼자서. 그래도 키보드를 친다 리포트는 보내야 한다. 내일 아침 9시까지. "Q2 목표: 월 매출 1억 돌파" "핵심 지표 개선 현황" "다음 주 액션 플랜" 타이핑한다. 눈물은 멈췄다. 컴퓨터 시계가 새벽 3시를 넘었다. 2시간 후면 일어나야 한다. 거실을 본다. 준우 레고가 보인다. "내일 같이 만들자"던 그거. 내일은 토요일이다. 오전엔 준우랑 레고 만들 거다. 오후엔 지윤이 학원 데려다줄 거다. 저녁엔 가족이랑 외식할 거다. 그리고 밤엔 다시 노트북 열 거다. 월요일 준비해야 하니까. 이게 내 삶이다. 선택했다. 후회는 안 한다. 근데 힘들다. 말할 수 없이. 누가 나를 이해하나 여자들끼리도 다르다. 전업주부 친구들은 말한다. "나는 경력 단절이야. 넌 좋겠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말한다. "창업? 대단하다. 나는 못 해." 남자 동기들은 말한다. "애 둘 키우면서 창업? 미쳤다." 시어머니는 말한다. "애들이 불쌍하다." 친정엄마는 말한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남편은 말한다. "힘들면 그만둬." 그만두면 뭐가 되나. 4년 쌓은 게 날아간다. 직원 15명이 어떻게 되나. 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은. 우리 제품 쓰는 엄마들은. 그리고 내 꿈은. 못 그만둔다. 그만두고 싶지도 않다. 근데 버티기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새벽의 진실 이 시간만 솔직해진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좋은 엄마도 아니다. 훌륭한 대표도 아니다. 학교 행사 못 간다. 아이들이랑 시간 부족하다. 회사 숫자도 목표보다 낮다. 투자자들 기대에 못 미친다. 직원들한테 미안하다. 모든 게 부족하다. 근데 최선이다. 지금 이게 내 최선이다. 더 잘하고 싶다.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 시간은 24시간이고. 몸은 하나고.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슈퍼우먼은 없다. 그냥 버티는 여자들만 있다. 그래도 일어난다 알람이 울릴 거다. 5시에. 일어날 거다. 씻을 거다. 커피 내릴 거다. 아이들 깨울 거다. 웃으면서. "좋은 아침!" 준우가 물을 거다. "엄마 잤어?" "응, 잤어." 거짓말이다. 근데 사실이기도 하다. 1시간은 잤으니까. 회사 갈 거다. 직원들 만날 거다. 웃을 거다. "오늘도 화이팅!" 힘들다는 말 안 할 거다. 대표니까. 투자자 미팅 들어갈 거다. 자신감 있게. "저희 이번 달 성과 보고드립니다." 떨리는 목소리 안 나올 거다. 연습했으니까. 저녁에 집 갈 거다. 아이들 안을 거다. "엄마 보고 싶었어?" "응!" 미안하다는 말 대신 안을 거다. 더 세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 누군가 물으면 말할 거다.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재밌어요." "후회 안 하세요?" "아니요. 잘한 선택이에요." "어떻게 해내세요?" "시스템이요. 시스템." 다 진실이다. 근데 전부는 아니다. 말 못 하는 게 있다. 매일 아침 거울 보면서 스스로 다독인다. "오늘도 할 수 있어." 출근길에 운전하면서 눈물 흘린다. 아무도 모르게. 점심시간에 화장실 칸에서 숨 고른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밤에 아이들 재우고 또 운다. 소리 안 나게. 새벽에 키보드 친다. 눈물 닦으면서. 이게 내 진짜 일상이다. 누구도 모르는. 혼자가 아니길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벽에 눈물 닦으면서 노트북 켜는 여자. 엄마이면서 대표인. 아내이면서 리더인. 딸이면서 롤모델인. 모든 걸 다 해내야 하는. 근데 아무것도 완벽하지 못한. 버티면서도 무너지는. 강한 척하지만 약한.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그렇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 있다. 새벽에 우는 우리. 아무도 모르게. 근데 계속 일어나는 우리. 매일 아침. 내일도 리포트 보냈다. 새벽 3시 47분. 침대로 간다. 1시간 13분 잘 수 있다. 남편이 자고 있다. 아이들 방에서 준우 코 고는 소리. 이 순간만큼은 평화롭다. 눈 감는다. 내일도 똑같을 거다. 버티고 무너지고 또 일어나고. 그래도 괜찮다.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힘들어도. 혼자 울어도. 나는 계속 간다.새벽 눈물은 약함이 아니다. 버티기 위한 준비 운동이다.
- 11 Dec, 2025
직원 15명 중 12명이 여성인 팀을 이끄는 방식
직원 15명 중 12명이 여성인 팀을 이끄는 방식 채용 공고에 '여성 우대'라고 쓴 적은 없다 그냥 그렇게 됐다. 첫 직원을 뽑을 때였다. 이력서 30장 중에 여성이 25장이었다. 육아용품 이커머스라서 그런가 싶었다. 근데 개발자 뽑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원자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면접 보면서 알았다. 다들 비슷한 이유로 이 회사를 선택했다는 걸. "대표님도 엄마시니까... 이해해주실 것 같아서요." "전 직장에선 육아휴직 쓰고 복귀하니까 눈치가..." "아이 아프면 조퇴해야 하는데, 여기선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15명 중 12명이 여성이 됐다. 계획한 건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생리통으로 재택 신청한 팀원에게 'OK' 보낼 때 월요일 아침 8시. 슬랙 메시지가 왔다. "대표님, 오늘 생리통이 심해서... 재택 가능할까요?" 답장 보냈다. "그럼요. 푹 쉬세요." 3초 만에. 고민 없이. 남자 대표였다면? 어땠을까. 어색했을까. '그 정도로?' 생각했을까. 나는 안다. 생리통이 진짜 일 못 할 정도일 때가 있다는 걸. 진통제 먹고 버티면서 키보드 치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그 팀원은 그날 저녁 9시까지 일했다. 집에서 편하게. 통증 가라앉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은 걸 해냈다. 이게 공감 리더십이다. 여성 팀원들은 이런 걸 말할 수 있다. "생리통이요", "아이 열이 나서요", "유치원 면담이 있어요". 눈치 안 봐도 된다. 대표도 똑같으니까.회의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목요일 오후 3시. 주간 회의. 마케팅 팀장이 말했다. "대표님, 다음 주 캠페인 론칭일이 아이 입학식이랑 겹쳐서요. 이틀만 앞당기면 안 될까요?" 개발팀 리드가 덧붙였다. "저도 그날 학교 상담 있어서... 오전엔 빠져야 할 것 같아요." 남자들만 있는 회의였다면? 이런 얘기가 나왔을까. 우리 회의실에선 자연스럽다. 아이 얘기, 육아 얘기, 학교 일정. 일정 조율할 때 먼저 고려되는 게 '아이들 스케줄'이다. 그래서 우리 팀 일정표는 특이하다. 칼라 코드가 세 개다. 빨강(업무 중요), 파랑(미팅), 초록(육아 일정). 초록 블록 먼저 박고, 나머지를 맞춘다. 비효율적일까? 아니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서로 배려하니까. 누가 힘들면 다른 사람이 커버한다. 자연스럽게. "나 내일 아이 아파서 반차 쓸게. A 미팅 대신 가줄 사람?" "내가 갈게. 대신 금요일 B 미팅 부탁해." 거래다. 공정한.한계도 있다 솔직히 말한다. 다 좋은 건 아니다. 작년 여름. 투자 IR 준비하던 때. 3명이 동시에 휴가였다. 아이들 여름방학. 어쩔 수 없다. 남은 사람들은? 죽어라 일했다. 그때 생각했다. '남자 직원 비율이 좀 더 높았으면...' 육아 부담 없는 사람들이 더 있었으면 했다. 미안했다. 남은 팀원들한테. "우리도 엄마라서 이해는 하는데..." 그 말 뒤에 숨은 피곤함이 보였다. 공감만으론 부족하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꿨다. 여름방학 시즌엔 프리랜서 2명 계약. 출산휴가 전엔 미리 후임 교육. 학기 초엔 중요 프로젝트 런칭 안 함. 완벽하진 않다. 여전히 구멍 날 때 있다. 그래도 전보단 낫다. 남자 직원 3명이 말하는 것 우리 회사 남자는 3명이다. 개발자 둘, 디자이너 하나. 궁금했다. 불편하지 않냐고. 개발팀 막내가 웃으며 말했다. "형들이 부러워해요. 여기 분위기." "뭐가?" "야근 안 해도 눈치 안 보이고. 칼퇴 당연하고. 딴 데선 상상도 못 하는 거래요." 디자이너도 거들었다. "저 전 회사에서 밤 11시까지 일했거든요. 여긴 7시면 사무실 텅텅 비잖아요. 처음엔 이상했는데, 지금은 좋아요." 남자들한테도 좋은 회사다. 워라밸이 확실하니까. 여성이 많다고 남자가 불편한 게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문화가 만들어진다. 투자자 미팅에서 듣는 질문 작년 시리즈A 투자 받을 때. 어떤 VC 파트너가 물었다. "팀 구성이... 여성이 많네요. 출산휴가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웃었다. 속으로. 남자 CEO한테도 똑같이 물을까? 대답했다. "출산은 리스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라이프 사이클입니다. 저희는 그걸 시스템으로 관리해요. 교육 기간, 인수인계, 프리랜서 풀. 다 준비돼 있습니다." 그 VC는 결국 투자 안 했다. 괜찮다. 우리한테 투자한 곳은 달랐다. 여성 파트너가 리드였다. 그녀는 물었다. "여성 팀원이 많다는 게 강점이라고 보시나요?" "네. 육아용품 시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고객이 우리고, 우리가 고객이에요." 그 투자는 성사됐다. 15억. 엄마들이 만드는 제품의 디테일 우리 제품 기획 회의는 다르다. "이 기저귀 가방, 아빠들은 안 멜 것 같은데요. 너무 분홍색이에요." "유모차 후크, 이 무게론 장바구니 못 걸어요. 직접 테스트해봤거든요." "수유복 설명에 '외출 시 편리'는 빼요. 실제론 불편해요." 다 경험에서 나온다. 우리 팀 12명 중 엄마가 8명이다. 직접 써본 제품. 직접 겪은 불편함. 그게 다 기획에 들어간다. 남자들만 있었다면? 설문조사하고, 리서치하고, 추측했을 거다. 우리는 안다. 이미. 작년에 출시한 '외출용 수유 케이프'. 대박이었다. 월 매출 800만원. 경쟁사 제품이랑 뭐가 다르냐고? 작다. 가볍다. 파우치에 쏙 들어간다. 우리 디자이너가 직접 가방 10개 테스트해서 만든 크기다. "기저귀 3개, 물티슈, 여벌 옷, 케이프 넣으면 딱이에요." 이게 공감의 힘이다. 새벽 5시, 혼자 우는 날 솔직히 말한다. 힘들다. 여성 팀 이끄는 게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무겁다. 팀원들이 말한다. "대표님 덕분에 일할 수 있어요." 그 말이 고맙지만, 압박이다. 내가 무너지면? 이 사람들도 무너진다. 그래서 아픈데 출근한다. 피곤해도 웃는다. "괜찮아요, 나도 엄마라 다 이해해요" 라고 말한다. 근데 나는? 누가 이해해줄까. 새벽 5시. 아이들 깨기 전. 혼자 운다. 아무도 모르게. '엄마 대표'라는 롤모델이 되려니까 힘들다. 완벽해야 할 것 같다. 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고, 팀도 잘 이끌고. 근데 다 못 한다. 어제는 딸 숙제 검사 못 했다. 오늘은 회의 중에 졸았다. 내일은 뭘 못 할까. 그래도 계속하는 이유 지난달. 팀원 한 명이 1년 육아휴직 들어갔다. 떠나기 전에 말했다. "대표님, 저 여기 돌아올게요. 꼭요." 그 말이 뭔지 안다. 전 직장에선 못 했던 말이다. 육아휴직 쓰면 복귀 자리가 없었으니까. 우리 회사는 다르다. 육아휴직 3명 다 복귀했다. 자리가 있다. 기다려준다. 그게 자랑이다. 여성이 일할 수 있는 회사. 엄마가 대표인 회사. 아이 있어도 커리어 포기 안 해도 되는 회사. 나 혼자 만든 건 아니다. 우리 12명이 함께 만들고 있다. 힘들지만 의미 있다. 5년 후에는? 직원 50명 중 40명이 여성이었으면 좋겠다. 그중 절반은 엄마였으면 좋겠다. 그때도 여전히 생리통으로 재택 신청하면 3초 만에 'OK' 보낼 수 있는 회사. 아이 행사 때문에 미팅 옮기자고 말할 수 있는 회사. 그런 회사를 만들고 있다. 지금. 공감 리더십의 진짜 의미 공감은 무조건 이해해주는 게 아니다. 함께 해결책을 찾는 거다. "아이 아파서 못 나올 것 같아요." "그럼 이 업무는 누가 커버할까? A씨 괜찮아? 내일 B씨가 대신하고." 이해하되, 시스템으로 풀어낸다. "생리통이 심해서요." "그럼 오늘은 쉬고, 내일 컨디션 좋을 때 집중해서 하자." 배려하되, 책임도 함께 진다. 여성 팀원이 많다고 특별 대우하는 게 아니다. 인간적으로 대하는 거다. 각자의 상황을 존중하는 거다. 남자든 여자든, 엄마든 아빠든, 다 삶이 있다. 그 삶을 무시하고 일만 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우리 회사는 그걸 인정한다. 당연하게.직원 15명 중 12명이 여성인 팀을 이끈다는 건, 특별한 게 아니다. 그냥 인간답게 일하는 거다. 그게 전부다.
- 10 Dec, 2025
38세 여성 스타트업 대표, 이 나이가 좋고 나쁜 이유
38세 여성 스타트업 대표, 이 나이가 좋고 나쁜 이유 투자자 미팅에서 "대표님, 혹시 나이가...?" 투자자가 물었다. 이력서에 다 나와 있다. 38세.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은 거다. "38입니다." "아, 그럼 결혼은? 아이는?" 남자 대표들한테는 안 물어본다. 작년에 27세 남자 창업가 만났을 때 그 질문 안 했다. 나만 받는다. "둘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랑 유치원생." 투자자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시간 괜찮으시겠어요?' 같은 걱정. 아니, 걱정이 아니라 의심이다. 이 나이, 여자, 엄마. 세 가지가 겹치면 신뢰도가 떨어진다. 스타트업판에서.20대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 팀 평균 나이는 28세다. 나를 빼면 26세. 회의하면서 느낀다. 에너지 차이. 저들은 밤새도 다음날 멀쩡하다. 나는 10시만 넘으면 머리가 안 돌아간다. "대표님, 이번 주말에 팀 번개 어때요?" 미안하지만 주말은 아이들 거다. 토요일 딸 발레 학원, 일요일 아들 축구. "나는 패스, 너희들끼리 가." 표정을 본다. '역시 나이 드신 분은...' 같은 느낌. 말은 안 하지만 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본다. 토요일 밤 홍대 클럽. 다들 신난다. 나는 그 시간에 아이들 재우고 엑셀 정리한다. 격차가 느껴진다. 문화적으로. 근데 또 다른 면도 있다. 회의에서 20대 직원이 말한다. "대표님, 이거 하면 대박 날 것 같은데요!" "근거는?" "느낌이요!" 10년 전 나도 그랬다. 느낌으로 일했다. 지금은 안다. 느낌은 데이터가 아니라는 걸. "느낌 말고 숫자로 보여줘. 시장 규모, 경쟁사 분석." 차갑게 들릴 수 있다. 근데 이게 38세의 장점이다. 경험.창업가 네트워크에서 서울 스타트업 위크 갔다. 창업가들 모였다. 대부분 20대 후반, 30대 초반. "저는 25살에 창업했어요. 지금 3년 차고요." "저는 올해 30인데, 작년에 시작했습니다." 다들 젊다. 실패해도 다시 할 시간이 있다. 나는 없다. 38세에 창업 4년 차면 이제 42세다. 만약 지금 망하면? 다시 시작할 때 40대 중반이다. 무섭다. 솔직히. 20대 창업가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 듣는다. '경험이다', '배움이다'. 나는 못 듣는다. '나이도 있는데 왜 그렇게 모험을 해' 소리 듣는다. 더 조심스러워진다. 공격적으로 못 간다. 시리즈B 투자 받으려고 하는데 망설여진다. 빚이 무섭다. 젊은 창업가들은 100억 투자받고 싶어 한다. 나는 생존이 먼저다. 이게 나쁜 건가? 좋은 건가? 모르겠다. 근데 네트워킹 끝나고 몇 명이 다가온다. 여성 창업가들. 나랑 비슷한 나이. "언니, 저도 37인데요. 진짜 공감돼요." "저 40인데, 언니 보면 힘 나요." 우리끼리는 통한다. 똑같은 고민. 아이, 집안일, 나이, 투자, 편견. 20대 남자 창업가는 모른다. 이 감정을.집에서 밤 11시. 아이들 잤다. 남편은 TV 본다. 나는 다시 노트북 연다. 투자 제안서 수정. 내일 미팅. 남편이 말한다. "또 일해? 좀 쉬지." 쉬고 싶다. 근데 못 쉰다. "나 지금 38이야. 40 넘으면 더 힘들어." "그럼 왜 시작했어, 그때." 34세에 창업했다. 늦은 나이였다. 근데 11번가 MD 7년 하고 나니까 하고 싶었다. 내 사업. 후회는 안 한다. 근데 가끔 생각한다. 27세에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쯤 시리즈C 받고 있지 않았을까. 100명 회사 만들지 않았을까. 근데 또 생각한다. 27세 나는 준비 안 됐었다. 경험도 없었고, 네트워크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34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 투자자 설득, 직원 관리, 위기 대응. MD 경험 7년이 전부 지금 써먹고 있다. 상품 선정, 가격 정책, 마케팅 전략. 27세 나는 이걸 못 했다. 38세라서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투자 받은 날 시리즈A 15억. 작년 일이다. VC 대표가 말했다. "대표님 경험이 좋았어요. 11번가 MD 출신이시고, 시장 이해도 높으시고." 나이 때문에 떨어질 줄 알았다. 근데 경험이 플러스였다. 38세의 역설이다. 젊음은 없지만 커리어가 있다. 20대 창업가는 열정을 판다. 나는 경험을 판다. "이 시장은 2019년부터 봤습니다. MD로 3년, 창업자로 4년. 총 7년 데이터 있습니다." 투자자가 고개 끄덕인다. 숫자가 있으니까. 근거가 있으니까. 이게 38세의 무기다. 근데 시리즈B는 다르다. 더 큰 돈이다. 30억, 50억. 그때는 '성장 가능성' 본다. 미래를 본다. 38세 대표의 미래. 투자자들이 믿을까? '5년 후 이 회사는?' 5년 후 나는 43세다. 스타트업 대표로 43세. 드물다. 이게 불안하다. 직원들한테 "대표님은 어떻게 일이랑 육아 병행하세요?" 26세 여직원이 물었다. 결혼 앞둔 상태. "잘 못 해. 솔직히." "그래도 다 하시잖아요." "다 하는 게 아니라 다 놓치는 거야." 회사에서는 엄마 역할 못 한다. 집에서는 대표 역할 완벽하게 못 한다. 둘 다 70점. 100점은 없다. "근데 언니, 그래도 멋있어요. 38세에 창업하고, 아이도 키우고." 멋있다는 말 들으면 좋다. 근데 속은 다르다. 매일 미안하다. 아이들한테. 직원들한테. 투자자한테. 남편한테. '더 젊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생각 맴돈다. 근데 또 생각한다. '더 젊었으면 지금 여기까지 못 왔어.' 38세의 단단함. 쉽게 안 무너진다. 20대처럼 감정적이지 않다. 직원이 그만둔다고 해도 이제 안 운다. 투자 거절당해도 다음 찾는다. 이게 나이의 힘이다. 시어머니랑 통화 "며느리, 그 일 언제까지 할 거야?" 매번 이 질문. "아직 계속할 거예요." "나이도 있는데, 이제 애들한테 집중해야지." 나이 있다는 말. 38세니까 늙었다는 뜻이다. "저 아직 젊어요." "38이 젊어? 40도 곧이야." 전화 끊고 거울 본다. 눈가 주름. 흰머리 몇 개. 38세. 젊지 않다. 인정한다. 근데 늙지도 않았다. 20대의 무모함은 없다. 50대의 지혜도 없다. 딱 중간. 애매하다. 이 애매함이 싫을 때도 있다. 좋을 때도 있다. 투자자는 젊은 대표 좋아한다. 근데 고객은 경험 있는 대표 신뢰한다. 직원은 에너제틱한 리더 좋아한다. 근데 위기 때는 침착한 리더 찾는다. 38세는 둘 다 조금씩 있다. 완벽하게 젊지도,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다. 그냥 중간. 애매한 중간. 여성 CEO 모임에서 월 1회 모인다. 여성 창업가 5명. 다들 30대 후반, 40대 초반. "언니들, 나 요즘 힘들어." 털어놓는다. 다들 안다. "나도 그래. 투자자가 물어봐. 폐경 언제냐고." "진짜? 미쳤네." "아들이 엄마 왜 맨날 없냐고 물어봐. 울었어." "나도 딸이 학예회 왔으면 좋겠다고. 못 갔어." 다들 비슷하다. 나이, 성별, 육아. 세 개가 겹치면 이렇다. 남자 창업가는 모른다. 이 무게를. "근데 언니들, 우리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맞다. 여기까지 왔다. 38세 여자가 스타트업 대표. 쉽지 않다. 포기하고 싶었던 날 많았다. 그만두고 싶었다. 근데 안 했다. 버텼다. 이게 38세의 힘이다. 끈기. 20대는 열정으로 달린다. 30대 후반은 끈기로 버틴다. 더 멋있는 건 후자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새벽 5시 오늘도 일어났다. 아이들 깨기 2시간 전. 이 시간이 내 시간이다. 조용하다. 커피 내린다. 노트북 연다. 38세 여자 스타트업 대표의 새벽. 이메일 확인. 슬랙 확인. 오늘 일정 확인. 10시 투자자 미팅. 2시 직원 면접. 4시 협력사 미팅. 6시 아이들 학원 픽업. 빡빡하다. 늘 빡빡하다. 젊었으면 더 쉬웠을까?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27세였으면 지금처럼 못 했다. 육아 경험 없었으면 육아용품 사업 못 했다. MD 경험 없었으면 상품 선정 못 했다. 38세라서 가능했다. 나이가 핸디캡이면서 무기다. 모순이다. 근데 이게 현실이다. 창 밖 본다. 아직 어둡다. 곧 해 뜬다. 38세. 중간이다. 젊음의 끝자락, 성숙의 시작점. 여기가 내 위치다. 불안하다. 근데 괜찮다. 이 나이에, 여자로, 엄마로, 대표로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다. 근데 최선이다. 그걸로 됐다. 지금은. 손익분기점 넘은 날 지난달. 드디어 넘었다. 4년 만에. 월 매출 8500만원. 지출 8200만원. 300만원 남았다. 처음으로. 팀원들 불렀다. "회식 가자." 다들 좋아한다. 나도 좋다. 근데 집 가는 길에 생각했다. 300만원. 4년 걸렸다. 20대 창업가는 1년 만에 손익분기점 넘는다는 기사 봤다. 부럽다. 나는 4년. 느리다. 나이 때문일까? 조심스러워서? 공격적이지 못해서? 모르겠다. 근데 또 생각한다. 살아남았다. 4년 버텼다. 스타트업 70%가 3년 안에 문 닫는다. 나는 안 닫았다. 느려도 살아남았다. 이게 중요하다. 38세의 전략. 빠르게가 아니라 오래. 20대는 단거리 달리기. 나는 마라톤. 결승선이 어딘지 모르겠다. 근데 뛰고 있다. 그걸로 됐다.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맨날 바빠?" 초등학교 2학년. 이제 안다. 엄마가 다른 엄마랑 다르다는 걸. "엄마가 회사 하잖아." "친구 엄마는 안 해." "그 엄마는 다른 일 하시는 거야." "엄마는 언제 집에만 있어?" 찔린다. "미안해. 엄마가 좀 바빠서." "괜찮아. 근데 가끔은 같이 있으면 좋겠어." 울컥한다. 참는다. 38세에 창업한 이유. 아이들 위해서였다. '내 사업 하면 시간 자유로울 거야. 아이들이랑 더 있을 수 있어.' 착각이었다. 더 바빠졌다. 고용인일 때는 6시 퇴근이었다. 지금은 밤 10시도 일한다. 아이러니하다. 근데 또 다르다. 딸이 말한다. "엄마, 나도 커서 엄마처럼 회사 하고 싶어." "진짜?" "응. 멋있어." 이 한마디. 이것 때문에 한다.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걸. 38세 엄마도 할 수 있다는 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경쟁사 대표 만났다 같은 업계. 남자. 32세. 작년에 창업했다. 벌써 시리즈B 받았다. 50억. "대표님, 저희랑 협업 어떠세요?" 미팅했다. 젊다. 에너지 넘친다. "저희는 빠르게 갈 겁니다. 3년 안에 IPO 목표고요." 3년. 그때 나는 41세다. "저희는 천천히 가려고요." "아, 그러시구나. 저는 빨리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빨리'라는 단어. 나는 못 쓴다. 아이 둘, 집안일, 나이. 빨리 갈 수 없다. 근데 또 생각한다. 빠르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작년에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 5개 중 3개 망했다. 번아웃, 팀 붕괴, 자금 부족. 천천히 가는 게 때로는 답이다. 32세 대표는 모른다. 아직. 나는 안다. 38세니까. 미팅 끝나고 나왔다. 부럽다. 젊음이. 근데 안 바꾸고 싶다. 내 경험이랑. 이게 38세다. 부러우면서도 만족한다. 요즘 생각 38세 여자 스타트업 대표. 이 나이가 좋은가, 나쁜가? 둘 다다. 나쁜 점:투자자가 의심한다. 나이, 성별, 육아. 체력 떨어진다. 밤샘 못 한다. 시간 없다. 아이들, 집안일, 회사. 롤모델 없다. 여성 CEO 드물다. 다시 시작하기 무섭다. 실패하면 40대다.좋은 점:경험 있다. 7년 MD 커리어. 침착하다. 위기에 안 흔들린다. 네트워크 있다. 업계 사람들 안다. 고객 이해한다. 육아 경험이 사업 된다. 끈기 있다. 쉽게 안 포기한다.계산하면 비슷하다. 나쁜 것만큼 좋다. 좋은 것만큼 나쁘다. 그래서 뭐냐고? 그냥 간다. 계속. 38세가 핸디캡이면 어쩌냐. 이게 내 나이다. 여자라서 불리하면 어쩌냐. 이게 나다. 엄마라서 시간 없으면 어쩌냐. 이게 내 삶이다. 불평하고 앉아있을 시간 없다. 그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쓴다. 이메일 한 통이라도 더 보낸다. 이게 38세 여자 대표의 전략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다.38세. 애매하다. 근데 괜찮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한다.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