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미팅에서 나를 보지 않고 '아이 있는 여자'를 본다는 생각
- 21 Dec, 2025
투자자 미팅에서 나를 보지 않고 ‘아이 있는 여자’를 본다는 생각
그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아이 있으시죠?”
투자자가 웃으며 물었다. 미팅 시작 5분.
우리 서비스 설명도 안 끝났다. 숫자도 안 보여줬다.
“네, 둘 있습니다.”
“아, 그럼… 시간 관리가 좀 어려우시겠네요?”

옆에 앉은 공동창업자한테는 안 물었다. 그도 초등학생 아들 있다.
지난주 다른 VC 미팅. 똑같은 질문 나왔다.
“육아하면서 회사 운영이 가능하세요?”
가능하니까 4년째 하고 있다. 월 매출 8000만원 찍고 있다.
근데 그 말은 안 나왔다. 그냥 웃었다.
“네, 괜찮습니다.”
집에 와서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남자 대표들은 받지 않는 질문
작년에 시리즈A 15억 받았다.
투자 미팅 12번 다녔다. 8번은 아이 얘기가 먼저 나왔다.
숫자보다 먼저. 팀보다 먼저.
“결혼하셨어요?” “애 몇 살이에요?” “남편 분은 뭐 하세요?”
같은 업계 남자 대표 친구가 있다. 그도 아이 둘이다.
걔한테 물어봤다. “투자 미팅에서 육아 질문 받아?”
“응? 한 번도.”

그 친구가 말했다. “오히려 ‘가정도 잘 챙기시는구나’ 이러던데?”
같은 상황인데 다른 평가.
남자는 ‘균형잡힌 리더’. 여자는 ‘집중 못 하는 엄마’.
이게 2024년이다.
의심과 싸우는 에너지
투자자들이 궁금한 건 안다.
‘이 사람이 회사에 올인할 수 있나?’
정당한 질문이다.
근데 남자한테는 안 물으면서 나한테만 묻는 건 뭐냐.
아이 있는 남자는 책임감 있는 거고, 아이 있는 여자는 위험부담인 건가.
작년 여름, 어떤 VC 대표가 말했다.
“김대표님, 솔직히 여자 창업가는 출산하면 회사가 흔들리잖아요.”
나 이미 둘 낳았다. 그 사이에 회사 키웠다.
근데 그 사람 눈엔 안 보인다. 내가 한 일이.
보이는 건 ‘여자’, ‘엄마’, ‘리스크’.

그날 미팅 끝나고 화장실 가서 10분 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내가 뭘 더 증명해야 하나.‘
숫자로 말해도 안 보이는 것들
우리 회사 재구매율 68%. 업계 평균 42%.
고객 만족도 4.8점. NPS 72점.
직원 이직률 5%. 스타트업 평균의 절반.
다 숫자다. 감정 아니다. 팩트다.
근데 투자자가 보는 건 내 결혼반지.
“남편 분이 도와주시나요?”
도와준다. 근데 그게 왜 중요하냐.
남자 대표한테 “부인 분이 도와주세요?” 안 묻잖아.
작년에 만난 여성 투자자가 달랐다.
“팀 구성 좋네요. 여성 비율이 경쟁력이겠어요.”
“재구매율 이 정도면 PMF 확실한데, 다음 마일스톤은요?”
질문이 달랐다. 사업을 봤다. 나를 봤다.
엄마를 본 게 아니라.
그 사람한테서 투자 받았다. 5억.
피곤하다는 말 못 하는 이유
요즘 체력이 한계다.
새벽 5시 기상. 밤 12시 취침. 7시간 자면 다행.
지난주 몸살났다. 열 38도.
약 먹고 미팅 나갔다. 7시간 동안 5곳.
남편이 말했다. “쉬면 안 돼?”
쉬고 싶다. 근데 못 쉰다.
쉬면 ‘역시 여자는’ 소리 들을까봐.
남자 창업가 친구들 보면 편하게 말한다.
“어제 술 먹어서 죽겠네.” “주말에 골프 쳤더니 피곤해.”
나는 못 한다. “아이가 아파서” 말도 조심스럽다.
‘애 핑계 대네’ 소리 들을까봐.
작년에 딸 독감 걸려서 미팅 한 번 미뤘다.
상대 대표가 이해한다고 했는데, 어조가 달랐다.
‘역시 아이 있으면 이래서…’ 그 뉘앙스.
다음부터는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했다.
완벽해야만 믿는 세상
남자는 70% 해도 잠재력 보고 투자한다.
여자는 120% 해도 의심부터 한다.
이게 내가 4년 느낀 거다.
남자 대표 피칭 보면 비전 얘기한다. 꿈 얘기한다.
“10년 후엔 이렇게 될 겁니다.”
박수 나온다. “패기 있네요.”
내가 똑같이 말하면 다르다.
“구체적 실행 계획은요?”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꿈 얘기하면 ‘현실감 없다’. 숫자 얘기하면 ‘비전이 작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준비한다.
피칭 자료 50장. 예상 질문 100개. 다 외운다.
근데 그것도 지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여성 창업가 선배가 말했다.
“우리는 2배 잘해야 동등하게 평가받아.”
맞다. 근데 공평하지 않다.
아이를 숨기고 싶지 않다
딸이 어제 물었다.
“엄마는 왜 맨날 일해?”
“엄마가 회사 대표거든. 책임이 있어.”
“그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이면서 대표다. 둘 다 나다.
근데 세상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
엄마면 대표 못 하고, 대표면 엄마 자격 없고.
왜 남자는 둘 다 해도 되는데 나는 안 되냐.
예전에는 미팅 갈 때 아이 얘기 안 했다.
사무실에 아이 사진도 안 뒀다.
‘엄마’ 티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근데 요즘은 당당하게 말한다.
“네, 아이 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 관리 더 잘합니다.”
“육아 경험이 우리 서비스 인사이트가 됐어요.”
“우리 타겟이 워킹맘인데, 제가 바로 그 고객이죠.”
의심하는 투자자도 있다. 근데 믿어주는 곳도 있다.
그 곳에 집중한다.
바뀌지 않는 질문들
이번 주도 미팅 3개 있다.
또 물을 거다. “아이 있으세요?”
이제는 대답이 준비돼 있다.
“네, 초등 2학년, 6살 있습니다. 둘 다 건강하고요, 저도 건강합니다. 우리 회사도 건강합니다. 숫자 보시죠.”
웃으면서 말한다. 근데 속으론 피곤하다.
언제까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하나.
언제쯤 내 사업을 먼저 볼까.
언제쯤 나를 ‘대표’로 먼저 볼까.
남편이 어제 말했다.
“당신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고맙다. 근데 이해는 못 할 거다.
남자니까. 그 질문 안 받아봤으니까.
여성 CEO 모임에서 언니들 만나면 다들 안다.
말 안 해도 안다. 다 겪었으니까.
“오늘도 그 질문 받았어?”
“받았지.”
웃는다. 근데 웃음이 씁쓸하다.
증명은 끝이 없다
월 매출 8000만원 찍었을 때 좋았다.
‘이제 인정받겠지.’
근데 다음 질문이 나왔다.
“스케일업 계획은? 더 키울 수 있어요?”
남자 대표는 ‘성장 가능성’ 본다. 나는 ‘한계’ 묻는다.
손익분기점 넘었을 때도 마찬가지.
“지속가능한가요? 아이 키우면서 이 속도 유지 가능해요?”
뭘 해도 부족하다.
완벽해도 의심한다.
근데 포기는 못 한다.
내 뒤에 후배들이 있다. 나를 보고 있다.
“김대표님처럼 저도 창업하고 싶어요.”
“아이 있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 들으면 힘난다. 그래서 계속한다.
결국 내가 증명할 것
5년 후에는 달라질까.
10년 후에는?
모르겠다. 근데 일단 나는 한다.
회사 키운다. 매출 올린다. 직원 행복하게 한다.
아이들도 잘 키운다. 둘 다 한다.
누가 뭐래도 한다.
투자자 미팅에서 나를 안 볼 수도 있다.
‘아이 있는 여자’만 볼 수도 있다.
근데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고객은 내 성별 안 본다. 서비스를 본다.
직원들도 내 육아 안 본다. 리더십을 본다.
결국 증명되는 건 사업이다.
나는 그걸 믿는다.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아이들 깨우고, 밥 먹이고, 웃으면서 안아준다.
그리고 회사 간다.
미팅 간다. 또 그 질문 받는다.
대답한다. 웃으면서.
속으로는 센다. 몇 번째 질문인지.
100번째 되면 책 쓸까 싶다.
‘투자자들이 여성 창업가에게 묻는 100가지 질문’
팔릴 것 같다. 공감할 사람 많을 거다.
오늘도 증명한다. 나는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고. 계속할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