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분기점 근처에서 멈춰 있는 이유, 그리고 다음 단계로 가려면
- 22 Dec, 2025
손익분기점 근처에서 멈춰 있는 이유, 그리고 다음 단계로 가려면
8000만원이라는 숫자
지난달 매출이 8000만원을 찍었다. 팀원들한테 “우리 드디어 8000 넘었어요!” 했다. 다들 박수 쳤다.
근데 나는 웃으면서 속으로 계산했다. 인건비 4500만원. 마케팅비 2000만원. 사무실, 물류센터, 각종 운영비 1800만원. 남는 거 300만원도 안 된다.
4년 했다. 매출은 계속 올랐다. 작년 이맘때 5000만원이었으니까 확실히 성장은 했다.
근데 적자다. 여전히 적자다.
투자금 15억 받았을 때 투자자가 그랬다. “2년 안에 손익분기점 찍고, 3년차엔 흑자 전환하세요.”
지금 4년차다. 손익분기점은 커녕 아직도 월 2000만원씩 까먹는다.

CFO가 보낸 엑셀 파일
어제 CFO가 메시지 보냈다. “대표님, 런웨이 정리해봤어요.”
엑셀 파일 열었다. 남은 현금 4억 2000만원. 현재 번레이트 월 2000만원. 계산하면 21개월.
2년도 안 남았다.
시리즈B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근데 지금 지표로 어떻게 투자 받나.
작년에 만난 VC가 했던 말 생각났다. “CAC(고객획득비용) 대비 LTV(고객생애가치)가 3배는 넘어야 해요.”
우리는 2.1배다. “성장률이 MoM 20%는 되어야죠.” 우리는 8%다.
숫자가 모자라다. 아니, 숫자는 나쁘지 않은데 ‘대박’은 아니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건 ‘대박’이다. 10배 성장 가능성. 유니콘 스토리.
근데 우리는 착실한 중소기업 같다. 나쁜 건 아닌데, 투자 받기엔 섹시하지 않다.
새벽 3시의 질문
어젯밤에 잠이 안 왔다. 아이들 재우고 노트북 켜서 대시보드 봤다.
매출은 오른다. 고객 수도 늘어난다. 리텐션(재구매율)도 42%로 나쁘지 않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마케팅비가 많다. 인스타 광고, 인플루언서 협찬, 구글 애즈. 월 2000만원 쓴다. 이거 끊으면 매출이 반으로 준다.
인건비도 문제다. 15명인데 4500만원. 1인당 300만원. 적은 거 안다. 근데 지금 이것도 빠듯하다.
물류비도 만만찮다. 육아용품은 부피가 크다. 무겁다. 배송비가 평균 4500원. 우리가 부담하는 게 3000원.
하나하나는 합리적이다. 근데 더하면 남는 게 없다.
새벽 3시에 혼자 생각했다. “이거 사업이 맞나?”

투자금이냐, 팀이냐, 나냐
남편이랑 얘기했다. “시리즈B 준비해야 할 것 같아.”
남편이 물었다. “투자 받으면 뭐 할 건데?”
그러게. 뭘 할까.
마케팅 확대? 지금도 ROAS(광고수익률) 2.5배다. 더 쓰면 효율 떨어진다.
팀 확대? 지금 팀도 바쁜데 일 잘한다. 더 뽑으면 관리 포인트만 늘어난다.
새 사업? 육아용품 외에 뭘 더 한다고? 리소스 분산되면 지금 것도 망한다.
결국 대답 못 했다. “그냥… 필요할 것 같아서.”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투자 받는 게 목적이 되면 안 되지.”
맞는 말이다. 근데 돈이 필요하다.
아니면 팀 문제일까. 15명으로 부족한 걸까.
지난주 마케팅 팀장이 그랬다. “대표님, 콘텐츠 제작 인력 한 명만 더 있으면 자체 콘텐츠로 CPA(전환당비용)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요.”
운영팀장은 말했다. “CS 담당 한 명만 더 뽑으면 리텐션 50% 넘길 수 있습니다.”
개발팀은 항상 부족하다. “추천 알고리즘 고도화하려면 개발자 2명 더 필요해요.”
다 맞는 말이다. 다 필요하다.
근데 지금 뽑으면 인건비가 월 5400만원. 매출 8000만원에서 5400만원. 말이 안 된다.
그럼 내 문제인가.
여성 CEO 모임에서 선배가 그랬다. “스케일업 못 하는 건 대표의 한계야.”
냉정했다. 근데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디테일을 챙긴다. 상품 큐레이션, CS 응대, 마케팅 카피. 다 관여한다.
시스템으로 안 만들고 내가 한다. 팀원들한테 권한을 못 준다. “제가 할게요” 자주 한다.
그게 병목일 수 있다.
손익분기점이라는 착각
CFO가 웃으면서 그랬다. “대표님, 우리 지금 손익분기점 근처 아니에요.”
“응? 매출 8000에 비용 8200이잖아.”
“그게 착각이에요. 지금 마케팅비 2000만원은 투자예요. 성장을 위한 투자. 이거 빼면 우리 이미 흑자거든요.”
”…”
“실제 손익분기점은 매출 6000만원이에요. 우리 이미 넘었어요. 지금은 성장을 위해 수익을 재투자하는 단계고요.”
관점의 차이였다.
손익분기점을 ‘살아남기’로 봤다. 근데 그건 ‘성장 중’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마케팅비를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럼 매출도 0이 된다.
근데 마케팅비를 줄이면서 효율을 높일 수는 있다. 지금 ROAS 2.5배를 3.5배로 만들면?
매출 8000만원 유지하면서 마케팅비를 1400만원으로 줄인다. 그럼 600만원 남는다.
흑자다.

다음 단계는 효율이다
깨달았다. 다음 단계는 투자금이 아니다. 팀도 아니다.
효율이다.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이. 같은 마케팅비로 더 효과적으로. 같은 시간에 더 집중해서.
지난주에 실험했다. 마케팅 채널 10개를 3개로 줄였다. ROAS 낮은 채널 다 끊었다.
매출 10% 떨어졌다. 근데 마케팅비는 40% 줄었다.
순이익은 늘었다.
CS 시스템도 바꿨다. 챗봇 도입했다. 단순 문의 80%가 자동 처리된다.
CS 담당 2명이 이제 VIP 고객만 집중한다. 리텐션이 42%에서 47%로 올랐다.
새 사람 안 뽑았다. 시스템 바꿨다.
내 일하는 방식도 바꿨다. 매일 하던 상품 체크, 이제 주 2회만 한다. MD팀장한테 권한 넘겼다.
처음엔 불안했다. “내가 안 보면 망하는 거 아냐?”
안 망했다. 오히려 팀장이 더 잘한다.
내가 빠진 시간에 뭐 했나. 투자자 미팅 준비했다. 제대로 된 IR 자료 만들었다.
시리즈B 받을 거다. 근데 지금 당장은 아니다.
6개월 뒤. 매출 1억, 순이익 500만원 만들고. 그때 투자 받는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건 ‘대박’이라고 했다. 근데 대박의 시작은 탄탄함이다.
엄마와 대표 사이
어제 딸이 물었다. “엄마, 회사 잘돼?”
“응, 잘되고 있어.”
“그럼 이제 집에 일찍 와?”
”…아직은 좀 더 시간 필요해.”
딸이 아무 말 안 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미안했다.
근데 포기는 못 한다. 4년 했다. 여기서 멈추면 그냥 ‘해봤던 사람’이다.
나는 ‘해낸 사람’이 되고 싶다.
여성 창업가로서. 워킹맘으로서. 두 아이 엄마로서.
다 해내는 사람.
무리한 목표일 수 있다. 근데 해보고 싶다.
효율을 높이면 시간이 생긴다. 시간이 생기면 아이들도 보고 회사도 키운다.
이상적인 얘기 같다. 근데 해보려고.
시스템 만들고. 팀 키우고.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그러면서 성장한다.
멈춰 있는 게 아니었다
손익분기점 근처에서 멈춰 있다고 생각했다. 4년 동안 제자리걸음 같았다.
근데 아니었다.
매출 100만원에서 8000만원. 직원 3명에서 15명. 사무실 공유오피스에서 강남 위워크.
많이 왔다.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쉬고 있었다. 다음 점프를 위해.
스타트업은 계단이다. 쭉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오르고 쉬고 오르고 쉬고.
지금은 쉬는 구간이다. 힘 모으는 중이다.
다음 계단은 월매출 1억. 그다음은 3억.
천천히 가도 된다. 확실하게 가면 된다.
투자금 받든, 팀 키우든, 내가 바뀌든. 방법은 여러 개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4년 했으면 4년 더 할 수 있다.
손익분기점은 목표가 아니라 통과점이었다. 이제 다음으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