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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Dec, 2025
아이 둘, 초등 2학년과 6살 사이의 발달 단계 관리하기
아이 둘, 초등 2학년과 6살 사이의 발달 단계 관리하기 아침 7시, 두 개의 세계 아침이 전쟁터다. 둘째가 "엄마 양말 신겨줘"라고 할 때, 첫째는 "나 혼자 할 수 있어요"라며 방문을 닫는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완전히 다른 두 명.첫째 하은이는 초등 2학년. "엄마 나 혼자 할 수 있어"가 입버릇이다. 동시에 "엄마 왜 나한테만 안 와줘?"라고도 한다. 둘째 지훈이는 6살. "엄마 같이 해줘"가 기본값이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8년 차이가 아니다. 8살과 6살, 딱 2년 차이인데 세상이 다르다. 출근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써야 한다는 것을. 회의실에서 떠오른 생각 오전 10시 투자자 미팅. "내년 목표 수치는요?" 대답하면서 문득 떠올랐다. 어젯밤 하은이가 울먹이던 얼굴. "엄마는 지훈이만 좋아해."미팅 끝나고 화장실에서 5분 울었다. 하은이는 이제 "엄마 사랑해"를 직접 말 안 한다. 대신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칭찬받았어"라고 말한다. 인정받고 싶어 한다. 지훈이는 아직 "엄마 사랑해" 연발한다. 그리고 24시간 껴안기를 원한다. 같은 사랑인데, 다른 언어다. 점심 먹으면서 남편한테 문자 보냈다. "우리 하은이 요즘 어때 보여?" 답장: "잘 크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남자들은 모른다. '잘 크고 있다'와 '행복하다'는 다른 말이다. 6시 반, 엄마 출동 퇴근해서 집 문 열면 두 아이가 달려온다. 지훈: "엄마! 유치원에서 미끄럼틀 타다가 넘어졌어!" (포옹 요구) 하은: "엄마, 나 수학 100점 맞았어." (무심한 척하지만 눈빛은 반짝)10초 안에 결정해야 한다. 누구 먼저? 지훈이를 안아주면, 하은이가 방으로 들어간다. 하은이 시험지 먼저 보면, 지훈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정답이 없다. 매일 찍기다. 어제는 하은이 먼저 했다. "우와, 100점! 엄마가 제일 자랑스러워." 30초 집중. 그리고 "지훈아, 어디 다쳤어? 엄마가 봐줄게." 하은이는 괜찮다는 표정 지었다. 근데 저녁 먹을 때 말이 없었다. 오늘은 지훈이 먼저 했다. "아이고 우리 아기, 많이 아팠구나." 1분 안아주고. "하은아, 시험지 보여줘. 와, 진짜?" 오버해서 칭찬. 지훈이는 금방 놀러 갔다. 하은이는 웃었다. 근데 눈빛이 복잡했다. 저녁 7시, 각자의 숙제 식탁에 앉았다. 하은이는 수학 문제집. 혼자 푼다. 가끔 "엄마 이거 맞아?"라고 확인만 받는다. 지훈이는 한글 쓰기. 5분마다 "엄마 이거 어떻게 써?" 시간 배분이 안 된다. 지훈이 옆에 붙어있으면, 하은이가 20분 뒤 "엄마 이거 틀렸네"라며 자책한다. 내가 옆에서 봐줬으면 안 틀렸을 거라는 뉘앙스. 하은이 옆에 앉으면, 지훈이가 "엄마~ 나 못 하겠어~" 징징댄다. 남편이 지훈이 봐준다고 하면? 5분 만에 "아빠는 엄마처럼 안 해줘"라며 온다. 이게 매일이다. 회사에서는 15명 직원 관리한다. 각자 업무 분배하고, 피드백하고, 동기부여한다. 집에서는 두 명도 못 한다. 밤 9시, 재우기 전쟁 하은이는 "나 혼자 잘 거야"라고 한다. 근데 불 끄고 나가려면 "엄마 조금만 옆에 있어줘"라고 한다. 지훈이는 "엄마 안 자"라며 버틴다. 결국 안고 누워서 재운다. 30분 걸린다. 문제는 이거다. 지훈이 재우는 30분 동안, 하은이는 혼자 천장 보면서 기다린다. 그걸 알기 때문에 지훈이 재우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 "언니 기다리니까 빨리 자야지"라고 재촉하게 된다. 지훈이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자기는 아직 엄마 품이 필요한데, 언니 때문에 빨리 자라는 압박. 하은이 입장에서는 서운하다. 동생은 30분 안아주면서, 자기는 5분만 옆에 있어주고 가니까. 어제 하은이가 물었다. "엄마, 나도 6살로 돌아갈 수 있어?" 칼로 찌르는 기분이었다. 투자자가 물었다 지난주 시리즈A 후속 미팅. "대표님, 직원 관리 노하우가 뭔가요?" 대답했다. "각자 다른 걸 원한다는 걸 인정하는 거요. 똑같은 방식으로 동기부여 안 됩니다." 박수 나왔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나는 회사에서는 이걸 아는데, 집에서는 왜 못 할까. 직원 A는 칭찬이 동력이다. 직원 B는 자율성이 동력이다. 직원 C는 명확한 피드백이 동력이다. 그렇게 각자 다르게 대한다. 15명 모두. 그런데 왜 집에서는 "나는 공평하게 해야 해"라고 생각할까. 하은이는 인정이 필요하다. "엄마가 너를 봤어"라는 확인. 지훈이는 스킨십이 필요하다. "엄마가 너를 안아줘"라는 확인. 같은 사랑, 다른 언어다. 공평하게 30분씩 줄 게 아니라, 각자 필요한 걸 줘야 한다. 근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엄마의 죄책감 공식 계산해봤다. 하루 깨어있는 시간: 17시간 일하는 시간: 10시간 (출퇴근 포함)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4시간 나 혼자 있는 시간: 0.5시간 4시간을 2명이 나눠 갖는다. 1명당 2시간. 근데 2시간으로는 6살도, 8살도 만족 못 한다. 특히 8살은 2시간 중 1.5시간을 동생한테 빼앗긴다고 느낀다. 6살은 2시간이 원래 자기 거였는데, 언니 때문에 줄었다고 느낀다. 결과: 둘 다 불만족. 그리고 나는 둘 다 만족시키지 못 한 죄책감. 이게 워킹맘의 수학이다. 시어머니의 말씀 며칠 전 통화. "하은이가 요즘 표정이 안 좋더라. 엄마가 바빠서 그런가봐." 참았다. "네, 신경 쓰겠습니다." 끊고 울었다. 시어머니는 모른다. 나도 알고 있다는 것을. 매일 미안하다는 것을. 그리고 회사 그만두면 해결될까? 아니다. 집에만 있으면 하은이는 "엄마 나 혼자 있고 싶어"라고 할 거다. 지훈이는 "엄마 놀아줘"라고 할 거다. 시간 문제가 아니다. 타이밍 문제다. 하은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과, 지훈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겹친다. 그게 문제다. 여성 CEO 모임에서 지난달 모임에서 털어놨다. "나 요즘 회사보다 집이 더 어려워." 5명 중 4명이 고개 끄덕였다. 선배 언니가 말했다. "애들 연령차가 작을수록 힘들어. 각자 다른 세계 살잖아." 맞다. 지훈이는 아직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유치원 갔다 와서 제일 먼저 "엄마 어디 있어?" 하은이는 이제 친구들이 중요하다. 학교 갔다 와서 제일 먼저 "친구가 나한테..." 근데 둘 다 저녁 7시에 집에 들어온다. 그 순간부터 9시 재울 때까지 2시간. 2시간 안에 두 세계를 다 케어해야 한다. 불가능하다. 다른 언니가 위로했다. "그래도 넌 잘하고 있어. 완벽한 엄마는 없어." 알고 있다. 근데 위로가 안 된다. 어제 밤, 하은이와의 대화 지훈이 재우고 나왔다. 하은이 방 불이 켜져 있었다. 들어갔다. "왜 안 자?" "엄마 기다렸어." 옆에 누웠다. "엄마, 나 언제 커?" "왜? 빨리 크고 싶어?" "응. 그럼 엄마가 동생만 안 돌봐도 되잖아." 가슴이 뭉클했다. "하은아, 엄마가 미안해. 요즘 네 마음 못 챙겨줘서." "아니야. 엄마 바쁜 거 알아. 근데..." "근데?" "나도 가끔 안아줬으면 좋겠어. 동생처럼." 울컥했다. 8살은 이미 다 안다. 엄마가 바쁜 것도, 동생이 손이 많이 가는 것도. 그래서 참는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한다. 근데 정말 괜찮은 게 아니다. 그날 밤 30분 안아줬다. 아무 말 없이. 하은이가 잠들면서 중얼거렸다. "엄마 좋아." 남편과의 싸움 주말에 터졌다. "당신은 몰라. 애들이 각각 얼마나 다른지." "나도 애 봐줘. 근데 당신이 자꾸 내가 하는 거 못미더워해." "그게 아니라..." 말이 안 나왔다. 남편은 지훈이 옷 입히고, 하은이 숙제 봐주고, 밥도 먹인다. 근데 뭔가 다르다. 지훈이한테 "형아 다 됐어, 너도 빨리 해"라고 한다. 하은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하은이한테 "동생 먼저 해주고, 네 거 해"라고 한다. 둘째를 우선순위에 둔다. 효율적이다. 근데 공평하지 않다. 그걸 설명하려다 포기했다. "아니야, 미안해. 내가 예민했어." 남편은 이해했다는 표정 지었다. 근데 진짜 이해한 건 아니다. 회사에서 배운 것 직원 면담할 때 쓰는 기법이 있다. 1:1 미팅. 15분씩. 각자 다른 질문. 신입한테는 "어려운 거 있어?" 중급한테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시니어한테는 "네 의견은 뭐야?" 같은 시간, 다른 질문. 각자 필요한 걸 듣는다. 이걸 집에 적용해봤다. 하은이한테는 "오늘 제일 재밌었던 거 뭐야?" 지훈이한테는 "오늘 뭐했어?" 하은이는 생각을 정리해서 말한다. 지훈이는 즉석에서 쏟아낸다. 같은 질문 하면 안 된다. 하은이는 "글쎄..."하고 말 없고, 지훈이는 산만하게 늘어놓는다. 각자 다르게 물어봐야 한다. 회사에서는 당연한데, 집에서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아마 회사는 '업무'고, 집은 '사랑'이라서 그런가. 업무는 효율이지만, 사랑은 공평이어야 한다는 강박. 근데 공평은 불가능하다. 친정엄마의 조언 "네가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해." 주말에 엄마가 말했다. "둘 다 똑같이 해줄 필요 없어. 어차피 애들은 불만 있어." "그래도 엄마는..." "나도 너하고 동생 다르게 키웠어. 넌 학원 많이 보냈고, 동생은 친구 만나게 해줬고." "공평하지 않게요?" "공평하게 하면 둘 다 안 맞아. 네가 원하는 거 주고, 동생이 원하는 거 줬지." 생각해보니 맞다. 나는 책 좋아했다. 엄마는 책 사줬다. 동생은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 엄마는 놀이터 데려갔다. 같은 사랑, 다른 방식. 그게 공평한 거였다. 새로운 시도 이번 주부터 바꿨다. 월수금: 하은이 집중 데이. 지훈이 재우고, 하은이랑 20분 더 있어준다. 화목: 지훈이 집중 데이. 하은이 먼저 재우고 (혼자 잘 수 있으니까), 지훈이랑 그림책 읽어준다. 주말: 각자 1시간씩 일대일 시간. 하은이한테 설명했다. "엄마가 너랑 동생이랑 각각 시간을 줄게. 똑같이는 아니야. 너한테 필요한 거, 동생한테 필요한 거 다르니까." 하은이가 물었다. "나한테 필요한 게 뭔데?" "음... 엄마가 네 얘기 들어주는 거?" "맞아!" 지훈이한테는 설명 안 했다. 어차피 6살은 이해 못 한다. 그냥 안아주면 된다. 첫날, 효과가 있었다. 하은이가 20분 동안 친구 얘기 쏟아냈다. "엄마 있잖아, 오늘 애들이..." 평소 같으면 "나중에 얘기해줘"라고 했을 시간이다. 지훈이 재우느라. 근데 지훈이 이미 잔 상태. 하은이만 집중. 끝나고 하은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진짜 좋았어." 완벽하진 않다. 근데 조금 나아졌다. 죄책감은 여전하다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미안하다. 하은이한테 월수금만 집중한다는 게 미안하다. 화목은? 주말만으로 충분한가? 지훈이한테 형아처럼 혼자 자라고 할 날이 미안하다. 아직 6살인데. 회사 일 때문에 둘 다 놓칠 때가 미안하다. 근데 깨달았다.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워킹맘이면 기본 장착. 중요한 건, 죄책감에 압도되지 않는 것. '미안하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뭘 할까'로 가는 것. 완벽한 엄마는 없다. 근데 노력하는 엄마는 될 수 있다. 어제 지훈이가 물었다 "엄마, 나도 언니처럼 혼자 잘 수 있어?" "응, 조금 더 크면." "빨리 크고 싶어." "왜?" "그럼 엄마가 덜 힘들잖아." 6살이 이런 말을 한다. 하은이는 "내가 빨리 커서 엄마 도와줄게"라고 한다. 둘 다 엄마를 걱정한다. 나는 애들 걱정하느라 죽겠는데, 애들은 엄마 걱정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힘든 모습 보이는 게, 애들한테 부담 주고 있었다. "엄마 괜찮아"라고 말해줘야 한다. 진짜 괜찮든 아니든. 애들은 엄마가 행복해야 자기들도 편하다. 결론은 없다 이 글 쓰면서도 답은 안 나왔다. 8살과 6살, 어떻게 동시에 키우나요? 모른다. 매일 즉흥연주다. 하은이가 필요로 할 때, 지훈이도 필요로 한다. 지훈이 돌봐주면, 하은이가 서운해한다. 정답은 없다. 최선만 있다. 그리고 최선도 매일 바뀐다. 어제의 최선이 오늘은 최악일 수 있다. 그래도 한다. 왜냐면 나는 엄마니까. 동시에 나는 대표니까. 둘 다 포기 못 한다. 둘 다 내 정체성이다. 힘들다. 근데 계속한다. 이게 워킹맘이다.오늘도 하은이 월요일 집중 데이. 20분 더 있어줘야지.
- 04 Dec, 2025
캘린더에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하고 투자자 미팅을 맞추는 방식
캘린더에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해놓는다 새벽 5시, 캘린더 정리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커피 내리고 노트북 연다. 제일 먼저 하는 건 구글 캘린더 열기. 3월 일정을 쭉 본다. 딸아이 학예회가 3월 15일 오전 10시. 아들 어린이집 소풍이 3월 22일. 부모 참관 수업이 3월 29일 오후 2시. 전부 빨간색으로 블록한다. "참석 필수"라고 메모 단다.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일정이다. 그다음 투자자 미팅 요청 메일을 본다. "3월 15일 어떠세요?" 안 된다. "3월 16일은 어떠신가요?" 답장 보낸다. 4년 전엔 반대였다. 아이 행사를 투자자 일정에 맞췄다. 학예회 날 회의 잡히면 남편한테 부탁했다. "미안, 내가 못 가. 대신 가줘." 지금은 아니다.투자자 미팅에서 들은 질문 작년 가을이었다. 시리즈A 투자 미팅이었다. 프레젠테이션 끝나고 질문 시간. 한 투자자가 물었다. "대표님, 아이 있으시죠? 학교 행사는 어떻게 하세요?" 순간 멈칫했다. 남자 창업가 선배한테 물어봤다. "형, 투자 미팅에서 아이 질문 받아봤어?" "아니, 한 번도." 나만 받는 질문이었다. "네, 둘 있습니다. 중요한 행사는 참석합니다." 웃으면서 답했다. 근데 속으로는 생각했다. '왜 이걸 물어보지?' 그 투자자는 투자 안 했다. 이유는 말 안 했다. 근데 느낌은 왔다. 여자 대표, 아이 둘, 시간 관리 안 될 거라는 판단. 말은 안 해도 느껴진다. 집에 와서 울었다. 남편한테 말했다. "나 왜 이래야 돼?" 남편이 말했다. "당신 잘못 없어. 그 사람이 편견 있는 거지." 맞다. 근데 그게 현실이다.3월 15일 학예회 딸아이 학예회 날이었다. 오전 10시 시작. 9시에 사무실 슬랙에 썼다. "오늘 오전 외근입니다. 12시쯤 복귀할게요." 팀장이 물었다. "혹시 급한 건 있으세요?" "없어요, 천천히 하세요." 학교 강당에 앉았다. 다른 엄마들이 많았다. 아빠는 셋. 딸아이가 무대에 올랐다. 합창 발표였다. 노래 부르면서 나를 찾았다. 눈이 마주쳤다. 손 흔들었다. 딸이 웃었다. 그 웃음이 전부였다. 공연 끝나고 교실로 갔다. 딸이 달려왔다. "엄마 왔어!" "응, 엄마 왔지."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요즘 엄마들 바쁘셔서... 와주셔서 감사해요." 미안한 말투였다. 나도 미안했다. 매번은 못 온다. 12시에 사무실 복귀했다. 오후 2시 투자자 화상 미팅. 3시 팀 회의. 5시 파트너사 콜. 저녁 7시에 퇴근했다. 딸이 현관에서 기다렸다. "엄마, 오늘 온 거 자랑했어." 그날 밤 일기장에 썼다. "오늘 학예회 갔다. 회사는 안 망했다. 딸은 웃었다. 둘 다 가능하다."누가 더 중요한지 고르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아이랑 회사 중 뭐가 더 중요해요?" 이상한 질문이다. 왜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남자 CEO한테는 안 묻는다. "가족이랑 회사 중 뭐가 더 중요해요?" 당연히 둘 다 중요하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둘 다 중요하다. 방법의 문제다. 우선순위가 아니라 전략이다. 캘린더를 보면 내 가치관이 보인다. 빨간색 블록이 많으면 아이가 중요한 사람. 파란색 블록이 많으면 회사가 중요한 사람. 나는 빨간색이랑 파란색이 섞여 있다. 그게 내 삶이다.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딸의 초등학교 2학년은 한 번뿐이다. 아들의 6살도 한 번뿐이다. 투자자는 기다려준다. 다음 주로 미룰 수 있다. 다른 날짜 제안할 수 있다. 급한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걸 먼저 블록해야 한다. 시어머니의 전화 지난주 시어머니한테 전화 왔다. "며느리, 회사 일 좀 줄여. 애들이 엄마가 필요해." 할 말이 없었다. "네, 알아요." 전화 끊고 남편한테 말했다. "당신 어머니한테 설명 좀 해줘." 남편이 말했다. "엄마가 옛날 사람이라서 그래. 이해해줘." 이해는 한다. 근데 힘들다. 시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평생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했다. 그게 당연한 시대였다. 나는 다르다. 일하는 엄마다. 나쁜 엄마가 아니라 다른 엄마다. 딸한테 보여주고 싶다. 엄마도 꿈이 있다는 걸. 엄마도 일한다는 걸. 엄마도 성장한다는 걸. 아들한테도 보여주고 싶다. 여자도 CEO 한다는 걸. 엄마도 회의한다는 걸. 시어머니의 세대와 내 세대는 다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다. 근데 설명하기 힘들다. "며느리, 그래도 애 엄마잖아." 맞다. 나는 엄마다. 동시에 대표다. 둘 다 내 정체성이다. 친정엄마의 도움 친정엄마가 주 2회 아이들 봐준다. 화요일이랑 목요일. 엄마한테 미안하다. 환갑 넘었는데 손주 돌보느라 힘들다. "엄마, 미안해. 내가 회사 때문에..." "괜찮아, 손주들 보는 게 좋아." 엄마 말투는 담담하다. 근데 피곤한 얼굴이 보인다. 지난주 엄마한테 용돈 드렸다. "엄마, 이거 쓰세요." "아니야, 괜찮아." 받지 않았다. 기분 나빠한다. "내가 돈 받으려고 손주 보나?"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니다. 감사의 표현이다.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았다. 백화점 상품권. 엄마 좋아하는 화장품. 마사지 쿠폰. "엄마, 이건 선물이야. 받아줘." 그제야 받았다. 친정엄마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회사도, 육아도. 여자 CEO들 만나면 얘기 나온다. "친정 엄마 도움 받으세요?" 대부분 받는다. 남편 엄마는 도와주기 힘들다. 며느리한테 '일 그만두라'고 말한다. 친정 엄마는 다르다. 딸의 꿈을 응원한다. 한국 사회에서 워킹맘이 가능한 이유. 친정엄마의 헌신. 감사하다. 동시에 미안하다. 이게 정상은 아니다. 여성 CEO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 여성 창업가 모임이 있다. 10명 정도 모인다. 지난달 모임에서 한 언니가 말했다. "나 이번에 투자 못 받았어. 아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다들 고개 끄덕였다. 비슷한 경험들. "저도 비슷한 질문 받았어요." "저는 아예 임신 사실 숨겼어요." "애 낳고 복귀했더니 투자자가 놀라더라고요." 슬픈 얘기들이다. 근데 공감된다. 한 언니가 말했다. "우리가 선배가 돼줘야 돼. 후배들한테." 맞는 말이다. 롤모델이 없다. 아이 키우면서 회사 키운 여성 CEO가 드물다. 있어도 숨긴다. "아이요? 네, 있죠." 짧게 답하고 넘어간다. 약점으로 보일까봐. 나도 그랬다. 초기에는 아이 얘기 안 했다. 미팅에서 "주말에 뭐 하세요?" 물으면 "독서요" 라고 답했다. 진짜는 아이랑 놀이터 갔다. 근데 말 안 했다. 지금은 숨기지 않는다. "주말에 아이들이랑 시간 보냈어요." 당당하게 말한다. 약점이 아니다. 내 삶이다. 남편과의 대화 남편이랑 대화 시간이 부족하다. 요즘 서먹하다. 지난주 주말에 남편이 말했다. "우리 요즘 대화가 없어." 맞다. 아이들, 회사 얘기만 한다. 우리 얘기는 안 한다. "미안해. 내가 요즘 바빠서." "나도 바빠. 그래도 시간은 만드는 거잖아." 할 말이 없었다. 남편 말이 맞다. 남편은 대기업 과장이다. 야근 많다. 주말 출근도 한다. 근데 육아는 분담한다. 아침에 아이들 밥 먹인다. 설거지한다. 주말엔 아이들 축구 레슨 데려간다. 좋은 남편이다. 좋은 아빠다. 근데 우린 서먹하다. 결혼 10년차. 연애 감정은 사라졌다. 이제 동료 같다. 육아 동료, 생활 동료. 나쁜 건 아니다. 근데 허전하다. 지난주 금요일 밤에 제안했다. "우리 데이트할까?" "좋지, 언제?" 캘린더 봤다. 빈 시간이 없다. 3주 뒤 토요일 오후 3시. "3주 뒤?" 남편이 웃었다. "우리 데이트도 미팅이네." 웃프다. 근데 현실이다. 손익분기점 근처에서 회사는 잘 된다. 월 매출 8000만원. 손익분기점이 9000만원. 곧 도달한다. 1년 안에 가능하다. 직원들이 열심히 한다. 15명이 가족 같다. 여성 비율 80%. 워라밸을 강조한다. "칼퇴 하세요." "휴가 쓰세요." "육아휴직 당연하죠." 근데 나는 못 지킨다. 새벽에 일한다. 밤에 일한다. 주말에도 슬랙 확인한다. 팀장이 말했다. "대표님, 대표님도 쉬세요." "응, 괜찮아." 괜찮지 않다. 피곤하다. 늘 피곤하다. 지난달 건강검진 받았다. "스트레스 수치가 높네요. 피로도도 높고." "네, 알아요." 의사가 말했다. "좀 쉬세요." "네, 쉴게요." 거짓말이다. 못 쉰다. 회사가 손익분기점 넘어야 한다. 투자자한테 증명해야 한다. '여자 CEO도 된다'는 걸. '아이 있어도 된다'는 걸. 체력 관리의 실패 작년에 헬스장 등록했다. 3개월 끊었다. 세 번 갔다. 그리고 못 갔다. 요가 수업도 신청했다. 한 번 갔다. 시간이 없다. 새벽은 일해야 하고, 저녁은 아이들이고, 주말은 가족이고. 친구들이 말한다. "너 운동해야 해. 안 그러면 무너져." 안다. 근데 못 한다. 대신 영양제 먹는다. 비타민 C, 비타민 D, 오메가3, 철분제. 아침에 한 줌 먹는다. 이게 운동 대신이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스트레스다. 살은 쪘다. 3kg. 운동 안 하고 야식 먹어서. 거울 보면 피곤해 보인다. 화장으로 가린다. 남편이 걱정한다. "당신 좀 쉬어." "응, 괜찮아." 거짓말이다. 안 괜찮다. 근데 멈출 수 없다. 딸아이의 질문 지난주 저녁이었다. 딸이 물었다. "엄마는 왜 맨날 바빠?" 뭐라고 답해야 할까. "엄마가 회사 다녀서 그래." "회사 그만두면 안 돼?" "그만두면 돈 못 벌잖아." "아빠 돈 있잖아." 순간 멈칫했다. "엄마도 일하고 싶어. 회사가 재밌거든." "나랑 노는 것보다?" 대답이 안 나왔다. 딸이 서운한 표정이었다. "엄마는 너랑 노는 것도 좋아하고, 회사도 좋아해. 둘 다야." "그럼 학교 행사 다 와줘." "...노력할게." 약속은 못 했다. 다 갈 수 없다. 딸이 방으로 들어갔다. 문 닫는 소리가 컸다. 남편이 말했다. "애가 서운한가봐." "나도 안다." 그날 밤 딸 방에 들어갔다. 이미 자고 있었다. 머리 쓰다듬었다. "미안해. 엄마가 부족해서." 자는 딸한테 속삭였다. 대답은 없었다. 아들의 담담함 아들은 다르다. 6살이라 그런지 덜 서운해한다. "엄마 회사 가?" "응, 가야 해." "그럼 할머니랑 놀게." 담담하다. 별로 신경 안 쓴다. 남편이 말했다. "아들은 아직 어려서 그래. 커지면 딸이랑 똑같을 거야." 불안하다. 나중에 아들도 서운해할까봐. 근데 지난주 아들이 그림 그렸다. 가족 그림. 나를 그렸다. 노트북 들고 있는 모습. "엄마는 항상 컴퓨터해." 아들의 설명. 웃프다. 아들이 기억하는 엄마는 노트북 든 모습. "엄마가 다음 주말엔 컴퓨터 안 할게. 우리 놀이동산 갈까?" "진짜?" 아들 눈이 반짝였다. "응, 진짜." 약속했다. 캘린더에 블록했다. 빨간색으로. "놀이동산 - 아들과 약속". 이번엔 지킬 거다. 우선순위가 아니라 전략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일과 가정은 시소라고.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간다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틀렸다. 시소가 아니다. 둘 다 올릴 수 있다. 방법의 문제다. 캘린더 블록이 그 방법이다. 중요한 걸 먼저 블록한다. 움직일 수 없는 일정을 먼저 잡는다. 아이 행사가 움직일 수 없다. 3월 15일 학예회는 3월 15일이다. 다른 날로 못 옮긴다. 투자자 미팅은 움직일 수 있다. 16일도 되고, 20일도 된다. 화상으로도 된다. 그러니까 아이 행사를 먼저 블록한다. 그다음 투자자 미팅을 맞춘다. 이게 우선순위가 아니다. 전략이다. 회사도 잘 되고, 아이도 챙긴다. 둘 다 가능하다. 힘들다. 피곤하다. 근데 불가능하진 않다. 완벽하진 않다. 딸은 가끔 서운해한다. 남편이랑은 가끔 서먹하다. 나는 늘 피곤하다. 근데 계속한다.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4년 전과 지금 4년 전엔 달랐다. 회사 일정이 우선이었다. "투자자 미팅 있어서 못 가." 남편한테 부탁했다. 학예회, 소풍, 참관 수업. 딸이 물었다. "엄마는 왜 안 와?" "엄마가 바빠서."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잘 돼야 가족도 행복하니까. 틀렸다. 회사가 잘 돼도 딸의 서운함은 안 사라진다. 아들의 그림 속 엄마는 노트북 든 모습이다. 2년 전에 깨달았다. 딸의 생일날이었다. 케이크 자르는데 전화 왔다. 투자자였다.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지금은 좀..." 딸이 쳐다봤다. "잠깐만요." 방으로 들어가서 통화했다. 20분 걸렸다. 나왔더니 케이크가 잘려 있었다. 딸이 울고 있었다. "엄마가 케이크 안 잘랐어." 남편이 대신 잘랐다. 그날 결심했다. 바꿔야겠다고. 지금은 다르다. 딸 생일에는 전화 안 받는다. 학예회에는 간다. 아들과의 약속은 지킨다. 회사는 안 망했다. 오히려 잘 된다. 투자자들도 이해한다. "다음 주로 미룰까요?" "네, 감사합니다." 문제없다. 여성 창업가 선배의 조언 작년에 만난 선배가 있다. 여성 CEO, 50대, 아이 둘 다 대학생. "후배님, 조언 하나 할게요." "네, 말씀하세요." "아이들은 금방 커요. 회사는 천천히 가도 돼요." 와닿지 않았다. 그때는. "회사가 빨리 커야 하지 않나요?" "왜요?" "투자자들 보여줘야 하잖아요." "투자자 인생 사세요? 본인 인생 사세요?" 할 말이 없었다. "저도 후배님처럼 했어요. 애들 학교 행사 못 갔어요. 회사 일정이 우선이었죠." "그래서요?" "후회해요. 지금도." 선배의 눈빛이 흔들렸다. "큰애가 작년에 말했어요. '엄마는 항상 안 왔잖아.' 대학생인데도 기억하더라고요." 무거운 침묵. "회사는 성공했어요. 매출 300억. 근데 아이들이랑은 서먹해요. 뭘 성공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 말이 계속 맴돈다. 나는 선배처럼 안 되고 싶다. 회사만 성공하고 싶지 않다. 회사도 키우고, 아이도 키운다. 둘 다. 롤모델의 부재 여성 창업가 선배가 적다. 더 적은 건 아이 키우면서 성공한 선배. 찾아봤다. 한국에 몇 명 안 된다. 있어도 인터뷰에서 아이 얘기 안 한다. "개인적인 질문은 곤란합니다." 이해한다. 약점으로 보일까봐. 미국은 다르다. 셰릴 샌드버그가 아이 얘기 한다. "워킹맘은 죄책감과 싸운다"고 책에 썼다. 한국은 없다. 다들 숨긴다. 나는 숨기고 싶지 않다. 블로그에 쓴다. "오늘 학예회 갔다. 회사도 잘 돌아갔다." 댓글이 달린다. "저도 힘내요." "대표님처럼 하고 싶어요." "용기 나요." 후배들한테 보여주고 싶다. 가능하다고. 쉽지 않다. 힘들다. 피곤하다. 근데 가능하다. 완벽하진 않다. 자주 실수한다.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남편한테 미안하다. 직원들한테도 미안하다. 근데 계속한다. 멈추고 싶지 않다. 캘린더가 보여주는 것 내 구글 캘린더를 보면 내가 보인다. 빨간색 블록: 아이 행사, 가족 시간, 학교 행사. 파란색 블록: 투자자 미팅, 팀 회의, 파트너 미팅. 초록색 블록: 여성 CEO 모임, 개인 시간, 운동(실패). 빨간색이 제일
- 02 Dec, 2025
투자자가 물었다: '아이 둘이 있으시는데, 시간이 괜찮으세요?'
투자자가 물었다 시리즈A 미팅. 10시 정각. 투자사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김대표님. 아이 둘이 있으시는데, 시간이 괜찮으세요?" 나는 웃음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네, 시스템을 잘 만들어놨어요. 팀에 믿을만한 리더들이 있고요." 투자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은 여전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남자 CEO도 아이 있는 사람 많다. 김OO, 박OO... 다들 둘, 셋 있다. 근데 누가 걔넘한테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묻나. 묻는 사람 본 적 없다. 나는 왜 이 질문을 받는 건가. 엄마니까? 창업가이기 전에 엄마라는 전제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고, 그래서 투자할 가치가 낮다는 거인가.처음 받은 질문은 아니었다 작년 상반기 시드 라운드. 다른 투자사였다. "육아는 어떻게 하세요? 회사 성장하면 시간이 더 부족해질 텐데." 그다음 년도. 또 다른 투자자. "팀원 중에 엄마들이 많으신데, 야근이나 주말 출근 할 때 괜찮아요?" 패턴이 보였다. 나는 여성 창업가 네트워크에 물었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다. 신혜경 대표는 "넷 중 셋이 애 있다고 했을 때 투자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얘기까지 들었어"라고 했다. 한수정 대표는 "인터뷰 때 '아, 그럼 아빠 도와줄 사람이 있으세요?'라고 물어서 웃다가 화났어"라고 했다. 남자 CEO들은 안 받는 질문이다.그 밤 노트북 앞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밤 11시. 노트북을 켰다. 투자자 이메일을 다시 읽었다. 투자 조건들. 실적 목표. 마일스톤. 다 이해했다. 근데 그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시간이 괜찮으세요?' 이 질문 뒤에는 뭐가 숨어있나. 첫 번째: 너는 일을 제대로 못 할 거라는 의심. 두 번째: 아이들 때문에 회사를 팽개칠 거라는 예상. 세 번째: 여자는 결국 엄마 역할을 우선시한다는 선입견. 나는 지금 딸 학교 운동회를 못 갔다. 아들 첫 한글 수업도 못 했다. 남편 보고 '다녀와'라고 했다. 미안함도 죄책감도 있었다. 근데 그렇다고 나는 회사를 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생각한다.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서핑한다. 마케팅 데이터. 경쟁사 분석. 신입 이직 이유. 일요일 아침에 몰래 슬랙을 본다. 직원 메시지. 클레임. 솔루션. 나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회사를 위해 시간을 낸다. 그런데 투자자는 이 둘을 배타적으로 본다. 내가 엄마라는 건, 내가 경영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인가.통계와 현실 사이 나는 찾아봤다. 여성 창업가 자금 조달 통계. 한국 스타트업 투자 중 여성 창업가 비율: 8%. 전년도 대비 감소했다. 감소했다. 여성 창업가 중 자녀 있는 경우: 70%. 그 중 시리즈A 이상 자금 조달에 성공한 비율: 22%. 남성 창업가 중 자녀 있는 경우: 65%. 그 중 시리즈A 이상 자금 조달: 58%. 숫자는 말한다. 너무 명확하게. 투자자는 남자 CEO가 일과 가정을 병행해도 그걸 '효율성'이라고 부른다. 여자 CEO가 하면 '시간 관리 능력'을 의심한다. 같은 행동인데 다르게 평가된다. 내 동생 남편은 대기업 임원이다. 아이 셋 있다. 누가 그 사람한테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본 적 없다. 오히려 '와, 잘하시네요'라고 한다. 똑같이 아이를 낳았고, 똑같이 일하고 있는데. [IMAGE_4] 나는 뭐라고 대답했나 미팅 때로 돌아가자. 투자자: "아이 둘이 있으시는데, 시간이 괜찮으세요?" 내 대답: "네, 시스템을 잘 만들어놨어요. 팀에 믿을만한 리더들이 있고요." 솔직한 대답이었나? 아니다. 진짜 대답은 이거였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죠. 근데 그건 제 경영 능력의 증거입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 성과를 내는 법을 배웠거든요. 현재 월 매출 8000만원. 손익분기점 근접. 직원 만족도 4.7점. 이 수치들이 제 시간 관리 능력을 말해주지 않나요?" 근데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방어적으로 들릴까봐. 겁냈다. 혹시 '쓸데없는 감정섞은 대답'이라고 느껴질까봐. 여자라는 이유로 더 따져질까봐. 그래서 웃으며 둘러댔다. "시스템이 있어요." 나약했나. 그럼 뭐 어쩌겠나. [IMAGE_5] 결국 혼자 정리해야 했다 투자를 받긴 받았다. 15억. 조건은 통과했다. 근데 그 질문은 남아있다. 나는 생각한다. 이게 내 문제인가, 투자자의 문제인가. 둘 다다. 내 문제는 내가 이 질문을 받을 때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는 것. 투자자의 문제는 여전히 여자는 시간이 부족할 거라고 가정한다는 것. 근데 바꿀 수 있는 건 뭔가. 나는 투자자를 바꿀 수 없다. 투자자는 구사정(舊思定)에 빠져있다. 여자+엄마=업무 능력 저하. 이 공식은 그들 머리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숫자로. 성과로. 팀의 만족도로. 재투자율로. 그래서 맡은 일을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아이들 등원시킨 후 출근한다. 점심은 미팅으로 해결한다. 저녁 7시 퇴근해서 아이 봐준다. 밤 10시 다시 일을 한다. 이건 포기가 아니다. 이건 선택이다. 투자자가 의심해도, 시어머니가 뭐라고 해도, 나는 안다. 내가 뭐를 하고 있고, 왜 하는지. [IMAGE_6] 그 이후 미팅 다음 주에 투자자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혹시 시간 때문에 경영 체계 구축할 때 고민 있으신 분 있으신가요? 우리가 외부 경영 컨설턴트 지원해주고 싶어서요."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좋은 제안인가,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건가. 여성 CEO 모임에서 물어봤다. 신혜경 대표가 웃었다. "아, 그건 투자자 나름의 성장이야. 최소한 의식은 했단 거지." 맞다. 그게 뭐든 간에, 투자자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한 거다. 내 대답이 뭔지는 몰라도. 나는 컨설턴트를 받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답장을 썼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현재 경영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직원 50명, 100명으로 늘어날 때 그런 지원이 필요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이메일. 명확한 톤. 나는 감사하지만,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 투자자는 3일 후에 답변을 보냈다. "좋습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응원합니다." 응원한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투자 후 발생할 리스크에 대한 사전 대비인지는 모른다. 근데 뭐 상관인가. 나는 여기 있고, 일은 계속된다. [IMAGE_7] 솔직히 답하자면 투자자가 물었던 "시간이 괜찮으세요?"에 대한 진짜 대답은 이거다. 시간이 부족하다. 매우. 아이들이랑 시간도 부족하다. 남편이랑 대화할 시간도 없다. 운동할 시간, 친구 만날 시간, 책 읽을 시간. 다 부족하다. 근데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원들도 비슷하다. 강지은(27)은 엄마 아파서 주말마다 시골 내려간다. 박은영(32)은 아직 결혼 못 했는데, 회사에서는 그걸 왜 못 했냐고 은근히 묻는다. 신수영(35)은 '아이 두 명 있으니까 야근 빼달라'는 제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여자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나는 직원들한테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근데 나는 지키지 않는다. 이게 가장 큰 모순이다. 투자자가 나한테 물었던 질문을. 나는 내 직원들한테는 절대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안다. 이 질문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IMAGE_8] 마지막으로 다음 투자자 미팅이 있다. 내일 2시. 이번엔 다른 투자사다. 사람도 다르다. 혹시 또 같은 질문을 받을까. 받으면 어떻게 할까. 그땐 답할 거다. 명확하게. "시간은 부족합니다. 근데 저는 그 부족한 시간을 전략으로 채웠습니다. 현재 저희 팀의 생산성은 업계 평균 140% 입니다. 직원 1인당 매출은 5300만원. 마진율은 32%. 이게 제 시간 부족함을 증명하지 않나요? 오히려 이게 제 능력을 증명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덧붙일 거다. "아, 그리고. 이 질문이 필요하신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혹시 시간이 부족하면 회사가 망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대기업 임원들은 대부분 아이가 있는데요. 그분들한테는 같은 질문을 안 하시죠?" 아, 근데 이건 너무 공격적이겠다. 그냥 이렇게 하자. "시간이 부족하면 효율적이 되거든요. 그게 저한테 준 가장 큰 자산입니다." 웃으면서. 자신 있게.밤 11시 30분. 아이들은 자고 남편은 소파에 누워있다. 나는 여전히 노트북 켜있다. 내일 피칭 준비. 그 투자자는 누군지, 어떤 포트폴리오가 있는지, 어떤 점이 중요한지. 모두 찾아봤다. 시간은 부족하다. 근데 나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