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투자

전 11번가 MD에서 육아용품 이커머스 창업까지, 왜 이 길을 택했나

전 11번가 MD에서 육아용품 이커머스 창업까지, 왜 이 길을 택했나

전 11번가 MD에서 육아용품 이커머스 창업까지, 왜 이 길을 택했나 시작은 분노였다 첫째 낳고 복직했다. 11번가 육아용품 MD로. 8년차였다. 회의실에서 기저귀 카테고리 전략 발표했다. 부장이 물었다. "김 대리, 본인도 쓰세요?" 웃으면서 답했다. "네, 저희 애가 지금 이거 쓰거든요." 그날 저녁. 아이 기저귀 갈다가 샜다. 새벽 2시. 빨래 돌리면서 생각했다. '아, 내가 회사에서 팔던 게 이거였구나.' 숫자로만 보던 상품이 손에 잡혔다. 판매량 15% 증가, 반품률 8%. 그 뒤에 새벽 2시 빨래하는 엄마가 있었다. 출근해서 기획서 뜯어고쳤다. 부장이 말했다. "너무 소비자 입장이야. 마진 생각해야지." 그때 알았다. 여긴 아니구나.11번가에서 배운 것들 8년이 짧진 않았다. 많이 배웠다. MD는 숫자 싸움이다. 마진율, 회전율, 재고율. 매일 엑셀과 씨름했다. 공급가 협상, 프로모션 기획, 경쟁사 분석. 머릿속이 계산기였다. 근데 엄마가 되니까 보였다. 숫자 뒤의 사람들. 판매 1위 물티슈. 20% 세일하면 주문 폭증. 근데 그 물티슈, 내가 써보니 너무 얇았다. 한 장에 두세 장 뽑게 돼. 결국 더 쓴다. 싸지 않다. 리뷰 1000개. 별점 4.5. 근데 악플 보면 '택배 박스 찢어져 옴', '배송 일주일 걸림'. 육아는 전쟁인데 일주일은 길다. 회의 때 말했다. "배송 개선하면 재구매율 오를 겁니다." 팀장이 답했다. "물류비 더 들어. 마진 줄어." 그래. 회사는 그렇게 돌아간다. 틀린 말 아니다. 근데 나는 이제 소비자였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둘째 낳고 퇴사했다 임신 7개월. 팀장이 불렀다. "승진 얘기 좀 하자." 앉았다. 배가 책상에 걸렸다. "김 대리 실력은 인정해. 근데 지금 둘째잖아. 과장 되면 출장도 많고, 야근도..." 말끝을 흐렸다. 물었다. "제 업무 성과에 문제 있었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요?" "솔직히 말하면, 애 둘 키우면서 과장 업무 소화 가능해?" 가능하냐고 물었다. 할 수 있냐가 아니라. 출산휴가 들어갔다. 복직 안 했다. 남편이 물었다. "후회 안 해?" 답했다. "잘 모르겠어. 근데 거기선 안 될 것 같았어." 둘째 백일 지나고 노트북 폈다. 밤 10시. 아이들 다 잤다. 에버노트에 썼다. '엄마들이 진짜 필요한 육아용품 쇼핑몰.' 구체적으로 적었다.배송 48시간 이내 보장 전 상품 엄마 MD가 직접 테스트 리뷰 조작 절대 금지 필요 없는 건 추천 안 함마지막 줄이 핵심이었다. '안 사도 되는 건 말해주기.'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다. 내가 필요했다. 창업은 무모했다 자본금 3000만원. 퇴직금이랑 예금 깼다. 남편이 물었다. "이거 망하면?" "모르겠어. 근데 해볼게." 시어머니 전화 왔다. "애들은 누가 키우려고." "낮에 봐주시잖아요." "내가 언제까지 봐주냐. 애 엄마가 집에 있어야지." 끊고 울었다. 화나서. 친정엄마는 달랐다. "해봐라. 안 되면 그때 생각하고." 사무실은 집 근처 공유오피스. 월 30만원. 혼자 시작했다. 첫 달 매출 120만원. 마진 15만원. 인건비 0원. 내가 다 했으니까. 포장, 발송, CS, 마케팅, 상품 소싱. 낮에 4시간, 밤에 3시간. 쪼개서 일했다. 둘째 어린이집 보내고 첫째 학교 보내면 10시. 오후 4시까지 집중. 애들 데리고 와서 저녁, 숙제. 9시 재우고 다시 시작. 새벽 1시까지. 체력이 바닥났다. 매일 피곤했다. 근데 이상했다. 행복했다.엄마 MD의 강점 6개월 지났다. 월매출 800만원. 상품 10개. 전부 내가 썼다. 아이들한테 썼다. 물티슈 3종 테스트했다. 제일 두껍고 촉촉한 거 골랐다. 단가 200원 비쌌다. 올렸다. 설명에 썼다. "한 장에 제대로 닦입니다. 두세 장 쓸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저렴합니다." 팔렸다. 재구매율 67%. 리뷰 왔다. "딱 이거였어요. 추천 감사합니다." 답글 달았다. "저희 애들도 써요. 좋죠?" 11번가에선 못 하던 대화였다. 고객이 아니라 동료였다. 같이 육아하는. 기저귀도 마찬가지. 흡수력 테스트했다. 밤 12시간 테스트. 새는 거 뺐다. 유명 브랜드였는데. 본사에서 전화 왔다. "왜 안 팔아요? 다른 데는 다 팔아요." 답했다. "테스트해봤는데 샜어요." "그래도 브랜드 파워가..." "저희 고객들 속일 순 없어요." 안 팔았다. 매출 포기했다. 근데 이상했다. 입소문 났다. '여기는 진짜만 판다.' MD 경력이 여기서 빛났다. 협상, 소싱, 마진 계산. 다 할 줄 알았다. 엄마 경험에 전문성 더했다. 대기업 MD들은 회의실에서 기획한다. 나는 집에서 실험했다. 아이한테 먹이고, 입히고, 써봤다. 경쟁력은 그거였다. 사용자이자 큐레이터. 1년 차, 직원 채용 매출 3000만원 넘었다. 혼자는 한계였다. 첫 직원 뽑았다. 29살 여성. 육아 경험 없었다. 면접 때 물었다. "왜 여기 지원했어요?" "저도 엄마 될 건데요. 배우고 싶어요." 뽑았다. 시작은 그거다. 마음. 가르쳤다. 상품 고르는 법, 리뷰 읽는 법, 엄마들 마음 읽는 법. "리뷰 100개 읽으면 보여요. 진짜 불편한 게 뭔지." 두 번째 직원은 육아맘이었다. 6살 아들. 오후 3시 퇴근 조건. 수락했다. "시간보다 집중력이에요. 3시까지 200% 일하면 돼요." 팀이 생겼다. 여자 5명. 전부 육아 관심 있거나 경험 있거나. 회의는 짧았다. 30분. 본론만. 애들 데리러 가야 하니까. 효율이 올랐다. 불필요한 회의 사라졌다. 워라밸이 생산성이었다. 11번가에선 9시까지 야근했다. 여기선 6시 칼퇴. 매출은 더 올랐다. 이유? 집중. 그리고 진짜 필요한 일만. 투자 유치의 벽 2년 차. 시리즈A 준비했다. IR 자료 만들었다. 밤 새웠다. 아이들 재우고. 투자사 10곳 미팅. 7곳 거절. 이유는 비슷했다. "시장 너무 작아요." "쿠팡이랑 어떻게 경쟁해요?" "마진이 낮은데요." 한 곳은 달랐다. 남자 파트너, 40대 후반. 물었다. "대표님, 아이 둘이시죠? 시간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솔직히 육아하면서 회사 키우기 힘들지 않나요?" 멈췄다. 숨 참았다. 웃었다. "그럼 남자 대표님들한테도 같은 질문 하세요?" "...그게 아니라, 워낙 바쁘시잖아요." "바쁜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불편한 침묵. 떨어졌다. 예상했다. 근데 하나 붙었다. 40대 여성 파트너. 미혼, 커리어우먼. "대표님 강점이 육아예요. 그게 경쟁력입니다. 15억 드릴게요." 울었다. 미팅룸에서. 참았는데 나왔다. "괜찮으세요?" "감사해서요." 투자 받았다. 15억. 조건 좋았다. 남편한테 전화했다. "됐어." "진짜?" "응, 울었어." "축하해." 저녁에 샴페인 샀다. 애들은 주스. 건배했다. "엄마 회사 커진대!" 딸이 물었다. "그럼 엄마 더 바빠져?" 할 말 없었다. "...응." "에이." 삐졌다. 미안했다. 근데 멈출 순 없었다. 3년 차, 팀 15명 사무실 옮겼다. 강남 위워크. 월 500만원. 팀 15명. 여성 12명. 육아맘 6명. 회의실 이름 지었다. '새벽', '낮잠', '칼퇴'. 웃겼다. 근데 진심이었다. 규칙 만들었다.아이 아프면 당연히 조퇴 학교 행사 참석 권장 재택 주 2회 가능 야근 금지직원이 물었다. "대표님은요?" "나?" "네, 대표님도 지키세요." 못 지켰다. 들켰다. 밤 11시 슬랙 메시지 보냈다가 혼났다. "대표님, 자야죠." 미안했다. 본이 안 됐다. 월매출 8000만원. 손익분기점 근처. 거의 왔다. 직원들이 말했다. "대표님, 우리 회사 좋아요." "뭐가?" "진짜 엄마들 생각해서 만든 거 같아요." 보람이었다. 돈보다. 근데 피곤했다. 매일 피곤했다. 체력이 문제였다. 38살. 20대처럼 안 됐다. 새벽 5시 기상. 밤 12시 취침. 7시간도 못 잤다. 허리 아팠다. 어깨 뭉쳤다. 병원 갈 시간 없었다. 남편이 말했다. "너 쓰러지겠어." "괜찮아." "안 괜찮아 보여." 싸웠다. 요즘 자주 싸웠다. "당신은 9시 퇴근하면 끝이잖아." "나도 힘들어." "나는 퇴근 없어. 집 와서도 일해." "그럼 회사 그만둬." "...뭐?" 할 말 없었다. 둘 다. 미안했다. 남편한테. 화풀이했다. 근데 그만둘 순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엄마이자 대표 딸 학예회 날. 캘린더에 3개월 전 블록해뒀다. 근데 투자사 미팅 잡혔다. 같은 날. 오후 2시. "날짜 변경 어려우세요?" 물었다. "네, 대표님 스케줄 맞추기 힘들어서요." 고민했다. 10분. 전화했다. "미안해, 딸. 엄마가..." "괜찮아, 엄마." 목소리 작았다. 괜찮지 않았다. 미팅 갔다. 집중 안 됐다. 머릿속은 학예회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었다. 택시 기사 놀랐다. "손님, 괜찮으세요?" "네." 괜찮지 않았다. 집 왔다. 딸이 물었다. "엄마, 회사 재밌어?" "...응." "나보다?" 칼이었다. 가슴에 꽂혔다. "아니야. 너희가 제일 좋아." "근데 맨날 회사 가잖아." 할 말 없었다. 남편이 말했다. "애들이 이해할 거야." "언제?" "크면." 기다려야 했다. 애들이 크는 걸. 근데 그 시간은 안 돌아온다. 초등 2학년, 6살. 지금이 전부다. 죄책감 들었다. 매일. 엄마로서 부족하다고 느꼈다. 대표로서도 완벽하지 않았다. 둘 다 70%씩 하는 기분. 100%는 없었다. 여성 CEO 모임에서 말했다. "저만 이래요?" 다들 고개 끄덕였다. "나도 그래." "나도." 위로였다. 혼자가 아니었다. 근데 해결책은 없었다. 각자 버티는 거였다. 왜 이 길을 택했나 질문 받는다. 자주. "왜 창업했어요?" "대기업 다니면 편했을 텐데." 답은 간단하다. 안 편했다. 거기도. 11번가에서 배웠다. 시스템, 전략, 숫자. 엄마 되면서 배웠다. 진짜 필요한 것, 불필요한 것. 두 개 합쳤다. 전문성과 공감. 내가 만든 쇼핑몰은 내가 쓰고 싶은 곳이다. 엄마로서. 솔직한 추천, 빠른 배송, 진짜 리뷰. 당연한 건데 없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쉽냐고? 아니다. 개 힘들다. 후회하냐고? 가끔. 딸 학예회 못 갈 때. 그만두고 싶냐고? 아니. 이상하다. 이렇게 힘든데 행복하다. 이유? 의미. 숫자 올리는 게 아니라 사람 돕는다. 나 같은 엄마들. 리뷰 읽으면 보인다. "덕분에 시간 아꼈어요." "믿고 삽니다." "추천이 진짜네요." 거기서 힘 얻는다. 새벽에 일어나는 이유. 대기업 MD 시절엔 없었다. 마진율 올려도 뿌듯함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매출 8000만원이 자랑스럽다. 우리가 도운 엄마가 8000명이니까. 직원들한테 말한다. "우리 회사는 엄마 편이야. 무조건." 마진 줄여서라도 빠르게 배송한다. 안 좋은 상품은 안 판다. 리뷰 조작 절대 안 한다. 손해 보냐고? 단기로는 맞다. 근데 길게 보면 이긴다. 신뢰니까. 남편이 물었다. "5년 뒤엔?" "모르겠어. 근데 계속할 거야." "힘들어도?" "응. 의미 있으니까." 시어머니는 아직도 이해 못 한다. "애들 크면 후회해." 모르겠다. 후회할지도. 근데 지금 이 순간. 내 선택은 이거다. 엄마인 대표. 대표인 엄마. 70%씩 하는. 완벽하진 않다. 근데 최선이다. 그걸로 됐다."이 길을 택한 건 편해서가 아니야. 의미 있어서지.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해."

학교 행사 날, 나만 빠진 사진을 보는 마음

학교 행사 날, 나만 빠진 사진을 보는 마음

학교 행사 날, 나만 빠진 사진을 보는 마음 오전 10시 17분 투자자 미팅 중이었다. 시리즈B 준비 때문에 만난 VC 파트너. 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준비한 자료 보며 고개 끄덕였다. "성장률이 좋네요. 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엄마였다. 사진 12장.딸아이가 달리기하는 모습. 빨간 모자 쓰고. 얼굴이 빨개서 모자랑 구분이 안 됐다. "죄송한데, 잠깐만요." 화장실 간다고 했다. 변기 뚜껑 덮고 앉아서 사진을 하나씩 넘겼다. 할머니 손 잡고 운동장 들어가는 사진. 친구들이랑 줄 서 있는 사진. 2등으로 들어오는 사진. 마지막 사진. 시상식. 은메달 목에 걸고 웃는 딸. 옆에 서 있는 건 엄마가 아니라 외할머니였다. "엄마 오면 보여준다고 메달 안 벗어ㅋㅋ 밥도 안 먹고 기다림" 친정엄마 톡이었다. 울었다. 5분. 엄마의 계산법 오늘 아침 6시에 계산했었다. 운동회 가면: 투자자 미팅 취소, 재조정 최소 2주 소요, 시리즈B 일정 전체가 밀림. 엄마 부탁하면: 딸이 서운해함, 내가 죄책감 느낌, 그래도 회사는 돌아감. 정답이 있는 문제였다. 근데 정답을 고르는 게 이렇게 아픈 줄 몰랐다.초등 1학년 때도 그랬다. 입학식. 2학년 학부모 참관 수업. 지난달 현장학습. 내가 간 행사: 입학식 1번. 끝. 다른 엄마들은 다 왔다. 전업주부도 있고, 직장인도 있었다. 근데 다들 왔다. 나만 못 갔다. 미팅으로 돌아와서 "괜찮으세요?" 투자자가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그 사람이 말을 이었다. "아까 얘기 이어가자면, 창업가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하거든요. 대표님, 아이 있으시죠?" 또 이 질문. "네, 둘 있습니다." "아, 그럼 시간 관리가 쉽지 않으시겠네요. 육아랑 병행이..." 남자 대표한테는 안 하는 질문이었다. 지난달 만난 남자 창업가. 그 사람도 아이 둘이었다. 아무도 안 물었다. "잘하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참았다.오후 7시, 집 앞 현관문 열자마자 딸이 뛰어왔다. "엄마! 나 2등 했어!" 메달 목에 걸고 있었다. 아침에 건 그대로. "우와, 진짜? 엄마가 못 가서 미안해..." "괜찮아. 할머니가 있었어. 근데 엄마는 왜 못 왔어?" 일 때문이라고 할까. 회사 때문이라고 할까. "엄마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엄마 일이 나보다 중요해?" 7살짜리가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안 나왔다. 딸이 고개 갸우뚱하다가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엄마는 대표잖아. 할머니가 그랬어. 엄마는 멋진 일 한다고." 그 말에 또 울었다. 저녁 먹으면서도, 설거지하면서도. 밤 11시, 다이어리 오늘 미팅 결과는 나빴다. "좀 더 고민해보겠다"는 답을 들었다. 매출은 전월 대비 12% 올랐다. 나쁘지 않았다. 신규 제휴 건 2개가 성사 직전이었다. 팀원들 야근 없이 다 퇴근시켰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근데. 딸의 운동회 사진을 다시 봤다. 12장 중에 나는 한 장도 없었다. 나쁜 엄마의 증거 여성 CEO 모임에서 들은 얘기. "우리는 선택하면 안 돼. 다 잘해야 해." 맞는 말이었다. 남편은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나가면 "육아 참여하는 좋은 아빠"였다. 나는 매일 아침 저녁 챙겨도 "애 놔두고 일만 하는 엄마"였다. 똑같이 창업해도 남자는 "도전하는 사업가", 나는 "애 두고 사업하는 엄마"였다. 기준이 달랐다. 시어머니가 명절 때 했던 말. "며느리가 회사를 다니면 애들이 불쌍하지." 친정엄마는 달랐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엄마가 도와줄게." 두 할머니, 두 세대, 두 가지 시선. 딸은 어떤 걸 보고 자랄까. 그래도 내일 아침에도 5시에 일어날 거다. 아이들 깨우고, 아침 먹이고, 등원시키고. 8시 반에 출근해서 미팅하고, 전략 짜고, 팀 이끌고. 저녁에 퇴근해서 저녁 먹이고, 숙제 봐주고, 재우고. 그리고 다시 노트북 열 거다. 이게 나쁜 엄마의 증거는 아닐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딸이 자라서 엄마를 기억할 때. "우리 엄마는 운동회에 못 왔어"가 아니라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날 키웠어"였으면.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엄마 아닐까. 엄마 톡 자기 전에 친정엄마한테 톡 보냈다. "엄마, 오늘 고마워. 미안해." 1분 만에 답장 왔다. "미안할 거 없어. 넌 잘하고 있어. 은지 엄청 자랑스러워했어. 엄마 얘기 하루 종일 했다." 그 말이 위로가 됐다. 조금. 내일은 또 다른 날이 올 거다. 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다. 또 죄책감이 밀려올 거다.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대표고, 엄마고, 아내고, 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믿고 싶다.오늘 하루, 버텼다. 내일도 버틸 거다. 그게 전부다.

새벽 5시, 엄마 CEO의 골든타임 일과

새벽 5시, 엄마 CEO의 골든타임 일과

새벽 5시, 엄마 CEO의 골든타임 일과 알람이 울린다 새벽 5시. 휴대폰 화면이 켜진다. 나는 눈을 감은 상태로 손을 뻗어 알람을 끈다. 남편은 여전히 자고 있다. 침대 옆 아이들 침대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이고 깊은 숨. 이게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침대에서 나온다. 발이 찬 바닥에 닿는다. 화장실에 간다. 세수한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어제 밤 11시에 잤으니까 6시간.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정도면 이제 괜찮은 편이다. 옷을 갈아입는다. 회사에 입을 옷이 아니라 사무실 카디건. 침대에서 입었던 티셔츠 그대로도 괜찮은데, 마음가짐의 문제다. 냉장고를 연다. 어제 준비해둔 커피가 있다. 아메리카노. 서너 모금에 마신다. 이제 5시 15분.2시간의 진짜 일 이게 골든타임이라고 깨달은 건 언제였나. 대아이 학교 보내고 나서 회사 가면 회의가 3개, 이메일 100개, 슬랙 알림 50개. 집중력을 모으려는 찰나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대표님, 잠깐 여쭤봐도 돼요?" 당연히 돼야 한다. 난 대표다.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새벽 5시부터 7시까지는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슬랙도 조용하다. 투자자 메일도 없다. 직원도 깨어나지 않았다. 고객 클레임도 잠든 시간이다. 오직 내 노트북과 내 생각만 있다. 전략 기획서를 연다. 요즘 고민이던 거. Q3 신사업 진출 계획. 저번 주 투자자 미팅에서 나온 피드백. "큐레이션만 하면 차별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차별성. 맞다. 그게 지금 문제다. 노트북 앞에서 1시간 반을 쓴다. 타닥타닥타닥. 손가락으로만 사고한다. 내 사고는 타이핑 속도와 같다.현재: 육아용품 큐레이션, 의존성 높음 문제: 차별성 부족, 마진율 낮음 기회: 커뮤니티 연결, 심화된 정보 제공 추진: 구독형 콘텐츠? 라이브 커머스? 전문가 매칭?이 생각들을 회사에서 출근 후에 정리하려고 했으면 언제 했을까. 회의 때문에, 전화 때문에, 직원 회의 때문에 절대 못 했다.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진실 근데 이게 지속 가능할까. 이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새벽 5시에 깨는 게 시스템인지 아니면 체력 낭비인지. 회사에서 주간회의 때 직원들 한테 말한다. "우리는 워라밸이 중요해요. 야근 금지. 저도 8시엔 나가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다. 정말 8시에 나간다. 그런데 10시에 다시 켜진다. 노트북을. 새벽 5시 루틴을 시작한 지 8개월. 3주 정도 쉰 날도 있다. 감기 걸렸을 때. 그 3주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나.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갔다. 투자자도 기다렸다. 시장도 움직였다. 근데 내 회사는 멈추지 않았다. 직원들이 돌렸다. 그럼 이 새벽 2시간은 뭐지.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잖아"라는 자위. "나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라는 핑계. 그런데 한편으로는 진짜다. 이 시간에 나온 아이디어들이 지난분기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신입 온보딩 프로세스를 다시 짠 것도 이 시간이었다. 시리즈A 투자 피치 자료의 첫 버전도. 회사가 성장하는 부분들 대부분이 이 2시간에서 나왔다. 그래서 계속한다. 어떻게 보면 그게 다다. 계속하는 것. 유지하는 것. 그래도 뭔가 빠진다 새벽 5시부터 7시는 업무 시간이다. 근데 회사 일이 아닌, 진짜 경영 생각을 하는 시간이다. 미시적 관리가 아니라 거시적 전략. 직원 급여 계산이 아니라 회사의 5년 로드맵. 고객 한 명 한 명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 CEO로서의 생각.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생각. 근데 이마저도 슬랙을 켜거나, 이메일을 열 때마다 끊긴다. 누군가는 이미 일을 시작했다. 미국 시간대의 투자자. 싱가포르 시간대의 공급업체. 세계는 24시간 돈다. 7시가 되면 나는 다시 엄마가 된다. 아이들 깨울 준비. 학교 가방 챙기기. 아들 기저귀 확인. 밥 먹어라, 우유 마셔라, 양치질 해라. 목소리가 자동으로 낮아진다. 부드러워진다. 대표였던 내가 사라진다. 출근 길에 차 안에서 노트북에 적었던 메모들을 다시 본다. 사무실 도착 30분 전. 이 내용들을 어떻게 직원들한테 설명할 것인가. 어떻게 미팅 안건으로 만들 것인가. 5분. 3년이 5분 만에 끝난다. 새벽 CEO에서 아침 엄마. 엄마에서 점심시간 대표. 대표에서 저녁 엄마. 밤 10시 다시 CEO. 그 사이를 쉼 없이 넘나든다.5시는 기적인가, 착각인가 솔직한 대답: 둘 다다. 새벽 5시에 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착각이다. 나 혼자는 이 시간을 견딜 수 없다. 친정엄마가 주 2회 아이들을 봐주신다. 남편이 육아를 분담한다. 회사가 작아서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다 떨어지면 이 루틴은 무너진다. 그걸 안다. 근데 기적도 맞다. 이 2시간이 없었으면 내 회사는 지금 여기 있지 않다. 15억 투자를 받는 순간도 몇 가지 빅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그 아이디어들이 언제 나왔나. 자명하다. 그래서 계속한다. "이게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다른 질문으로 답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언제 멈춰야 하나." 아이들이 크면 멈춘다고 생각했다. 딸이 초등학교 올라갔을 때도 "이제 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더 바빠졌다. 학교 행사 소식이 카톡으로 온다. 학용품을 챙겨줘야 한다. 숙제를 봐줘야 한다. 그래서 새벽 5시가 더 필요해졌다. 투자자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는다. "두 분 계신데 일과 가정 어떻게 하세요?" 남자 CEO한테는 안 묻는 질문이다. 난 알고 있다. 저 질문 뒤에 숨어있는 의심. "그래도 괜찮으세요?"라는, 반은 걱정이고 반은 의심. 내 대답은 짧다. "새벽 5시에 깹니다." 그럼 투자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이해가 된 것처럼. "아, 그렇군요. 그럼 괜찮겠네요." 그게 다다. 나는 새벽 5시에 깬다. 그러니까 괜찮다. 그러니까 된다. 오늘도 5시가 온다 내일 새벽도 알람이 울린다. 그걸 끄고 다시 자고 싶을 날도 있을 거다. 출근해서 직원들이 "대표님 좀 피곤해 보여요"라고 물을 때도 있을 거다. 남편이 "좀 자고 일해"라고 할 때도 있을 거다. 근데 나는 계속 일어날 거다. 왜냐면 새벽 5시에만 나는 온전히 나기 때문이다. 엄마도 아니고, CEO도 아니고,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그냥 나. 나의 생각을 타닥타닥 두드리는 손가락들. 내 미래를 그려보는 노트북. 내 꿈을 담는 2시간. 그게 기적인지 착각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매일 아침 그 선택을 한다. 침대에서 나올 것을 선택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내일 새벽도 알람이 울린다. 나는 눈을 뜬다. 또 다른 2시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