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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가
- 26 Dec, 2025
친정엄마가 주 2회 아이들을 봐주시는 그 감사와 미안함
화요일 오후 5시 30분 초인종이 울렸다. 엄마다. "왔어." "네, 엄마." 현관문 열자마자 아이들이 달려간다. 나보다 할머니가 좋은 나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밥은 먹었어?" "아직이요." "또 안 먹었네. 너 요즘 많이 말랐어." 말랐다기보다 늙었다. 거울 볼 때마다 느낀다. 엄마가 부엌으로 간다. 냉장고 연다. 반찬통 꺼낸다. 어제 만들어 오신 거다. 김치찌개, 시금치무침, 계란말이. "애들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워. 9시까지면 되지?"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루에 몇 번 하는지 모르겠다.주 2회, 화요일과 목요일 엄마가 와주시는 날이다. 없으면 회사를 못 돌린다. 화요일은 투자자 미팅 데이. 목요일은 전체 회의와 1:1 면담. 7시 전에 퇴근이 불가능한 날들이다. 남편? 야근 많다. 대기업 과장이 뭐 그리 바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쁘다. 나도 바쁘니까 뭐라 못 한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은 4시 30분. 초등학교 하교는 2시. 누가 데려오나. 베이비시터? 월 300만원. 시리즈A 받았지만 그 돈은 없다. 아니, 있어도 아깝다. 결국 엄마다. "엄마,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손주 보는 게 할머니 일이지." 일이 아니다. 엄마는 70살이다. 허리도 안 좋으시다. 무릎도 아프시다. 그래도 오신다. 버스 타고 50분. 우리 집까지.엄마의 70년대 엄마는 24살에 결혼했다. 25살에 나를 낳았다. 결혼하고 회사 그만뒀다. 당연한 거였다. 1970년대니까. 아빠가 벌었고, 엄마가 집을 지켰다. 나와 동생을 키웠다.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엄마가 늘 하시던 말이다. 공부해서 좋은 직장 다니라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라고. 그래서 나는 공부했다. 대학 나왔다. 11번가 MD 했다. 연봉 6천. 그런데 창업했다. 엄마는 반대했다. "안정적인 게 최고야. 결혼도 했는데." 결혼했으니 더 안전하게 살라는 뜻이었다. 나는 안 들었다. 내 삶은 내가 산다고 했다. 지금 엄마가 내 아이들을 봐주신다. 아이러니다. 감사와 미안함의 무게 엄마 없으면 불가능하다. 인정한다. 남편 월급으로는 베이비시터 못 쓴다. 내 회사 수익으로도 아직은 무리다. 손익분기점 근처니까. 엄마가 안 와주시면? 회사를 접어야 한다. 아니면 아이들을 포기하거나. 둘 다 못 한다. 그래서 감사하다. 진심으로. 그런데 미안하다. 더 진심으로. 엄마는 나를 키우느라 30년을 썼다. 이제 손주를 또 키운다. 엄마의 삶은 언제 시작되나. "엄마, 요즘 뭐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없어. 이거면 돼." 이거면 되는 게 아니다. 엄마도 살아야 한다. 엄마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 근데 나는 그걸 뺏고 있다.세대 간 계약서 엄마 세대는 자식 위해 산다. 그게 당연하다고 배웠다. 우리 세대는? 나를 위해 산다고 배웠다. 커리어도 쌓고 자아실현도 하고.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 다시 돌아간다. 엄마 세대처럼. 희생하고 포기하고. 아니, 포기는 못 한다. 커리어도 지키고 싶다. 그래서 더 힘들다. 결국 윗세대한테 도움을 받는다. 엄마한테, 시어머니한테. 시어머니는 "회사 그만두고 애나 키워라" 하신다. 엄마는 그 말 안 하신다. 대신 몸으로 지원하신다. 어느 게 더 나은가. 모르겠다. 둘 다 무겁다. 목요일 저녁 8시 47분 회의 끝났다. 택시 탔다. 집 도착 8시 50분 예상. 엄마한테 문자 보냈다. "거의 다 왔어요. 10분 후 도착이요." "ㅇㅋ" 엄마도 이모티콘 쓰신다. 내가 가르쳐드렸다. 집 앞 도착. 엘리베이터 탄다. 9층. 초인종 누른다. 엄마가 문 연다. 피곤한 얼굴이다. "애들 잤어. 숙제도 다 했어." "고생하셨어요." "괜찮아. 가봐야지." "저녁은요?" "집 가서 먹을게." 9시에 저녁을 먹으러 가신다. 50분 버스 타고. 택시 타고 가시라고 5만원 드렸다. 안 받으신다. "괜찮아. 버스 편해." 편한 게 아니다. 아끼시는 거다. 나한테 부담 안 주려고. 현관에서 엄마를 본다. 엘리베이터 타신다. 손 흔드신다. 나도 손 흔든다. 문 닫는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조용하다. 아이들 잔다. 남편은 아직 안 왔다. 냉장고 연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반찬들. 김이 다 식었다.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혼자 먹는다. 맛있다. 엄마 손맛이다. 눈물 난다. 뭐가 이렇게 미안한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엄마한테 뭘 드릴 수 있을까. 돈? 드린다. 매달 50만원. 용돈이라고. 안 받으려 하셔서 계좌로 넣는다. 선물? 한다. 명절 때, 생신 때. 옷이랑 건강식품이랑. 여행? 보내드리고 싶다. 아빠랑 같이. 근데 엄마가 안 가신다. "너희 애들 누가 봐." 결국 시간이다. 엄마의 시간을 내가 쓰고 있다. 언젠가 갚을 수 있을까. 아니, 갚는다는 표현 자체가 틀렸다. 엄마는 빚이라고 생각 안 하신다. 그게 더 무겁다. 여성 CEO 모임에서 지난주 모임에서 나온 얘기다. "친정엄마 없으면 창업 못 했어요." 5명 중 4명이 고개 끄덕였다. 나머지 한 명? 시어머니가 봐주신다고. 운 좋은 케이스다. "근데 미안하지 않아요?" 다들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미안하죠. 근데 어쩌겠어요. 해야죠." 해야 한다. 그래서 한다. 근데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부모님 노년을 또 육아에 쓰게 하는 게. "우리가 성공하면 되죠. 그게 보답이죠." 성공. 그게 뭘까. Exit? 100억짜리 매각? 아니면 그냥 오래 버티는 것? 모르겠다. 일단 한다. 월요일 아침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 이번 주는 제가 일찍 들어갈게요. 화목 안 오셔도 돼요."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냥 엄마 쉬세요." "괜찮아. 내가 갈게." "엄마." "응?" "사랑해요." "...갑자기 왜 그래. 이상한 애." 전화 끊으셨다. 근데 30초 후 문자 왔다. "나도♡" 하트 이모티콘이 두 개였다. 결론 같은 거 친정엄마 없으면 불가능하다. 인정한다. 감사하고,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 언젠가 엄마가 편히 쉬실 수 있게. 그때까지 버틴다. 회사 키운다. 돈 번다. 엄마한테 여행 보내드린다. 아빠랑 같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감사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성공으로 하는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