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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미팅 겸 식사가 기본값이 된 날들

점심은 미팅 겸 식사가 기본값이 된 날들

점심은 미팅 겸 식사가 기본값이 된 날들 오늘도 점심은 샌드위치 오늘 점심 메뉴? 투자자 미팅이다. 어제는? 파트너사 미팅. 그제는? 신입 면접. 벌써 3주째다. 혼자 앉아서 밥 먹은 기억이 없다. 아침 7시 반, 아이들 등원시키고 차에서 먹은 김밥이 첫 끼다. 신호 대기 중에 두 줄 먹고, 주차장 들어가면서 마지막 한 줄. 맛? 기억 안 난다. 삼키기만 했다. "대표님, 오늘 1시 투자사 미팅 있으세요." "네, 알아요. 어디서 만나기로 했죠?" "강남역 근처 이탈리안이요." 또 파스타다. 요즘 파스타만 먹는다. 투자자들이 좋아해서. 내가 먹고 싶은 건 순두부찌개인데, 미팅 테이블에서 순두부찌개 먹는 대표는 없다.씹는 횟수를 세어본 적 있나 점심 미팅은 1시간 30분이었다. 실제로 먹은 시간은? 10분도 안 된다. "저희 서비스가 타겟하는 건요..." 포크질 한 번. "엄마들의 큐레이션 니즈인데요..." 물 한 모금. "MAU는 지난달 대비 23% 증가했고요..." 빵 한 입. 투자자가 묻는다. "대표님, 음식 괜찮으세요? 별로 안 드시네요."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 맛있어요. 그냥 얘기하다 보니." 거짓말이다. 맛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맛을 음미할 시간이 없다. 씹는 건 10번 정도? 삼키는 게 목표다. 미팅 끝나고 나온다. 배는 반쯤 찬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애매하다. 이 상태가 익숙해졌다. 사무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 들른다. 단백질바 두 개 산다. 오후 3시쯤 허기지면 먹는 용도. 이게 요즘 내 간식이자 반 끼니다.혼자 먹는 밥이 사치가 된 이유 4년 전엔 아니었다. 창업 초기, 팀원 3명이었을 때.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회의실 문 닫고 치킨 시켰다. 배달 오는 30분 동안 딴 얘기 했다. 누가 연애한다는 둥, 어제 넷플릭스에서 뭘 봤다는 둥. 그땐 밥이 밥이었다. 지금은? 팀원 15명, 투자자 3곳, 파트너사 10개. 일주일에 미팅이 평균 12개다. 절반이 점심 시간대다. "점심 같이 하시죠." 이 말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거절하면 관계가 틀어진다. "시간 없으세요?" 하는 말투에 서운함이 섞인다. 특히 투자자한테. 돈 받아놓고 밥도 안 같이 먹냐는 뉘앙스. 그래서 받아들인다. 계속. 월요일 투자사, 화요일 파트너사, 수요일 신규 미팅, 목요일 멘토링, 금요일 네트워킹. 점심이 업무의 연장이 됐다. 혼자 먹는 밥? 그건 이제 사치다. 아니, 사실은 외로움이다.엄마의 밥은 애초에 없다 근데 생각해보니 익숙하긴 하다. 엄마 된 이후로, 내 끼니는 늘 마지막이었다. 아이들 먼저 먹이고, 남편 먼저 먹이고, 나는 설거지하면서 남은 거 먹는다. 차가운 밥, 식은 국. 이게 10년이다. 회사 다닐 땐 그래도 구내식당 혼자 앉아서 먹었다. 30분이라도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창업하고? 그 30분도 사라졌다. 아침은 차 안에서, 점심은 미팅하면서, 저녁은 아이들 먹이면서. 내가 언제 제대로 앉아서 먹나 세어봤다. 일주일에 2~3번? 그것도 혼자 사무실에서 컵라면 먹을 때. 여자 대표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밥 먹는 것도 퍼포먼스야. 투자자 앞에선 예쁘게 먹어야 하고, 직원들 앞에선 '대표님도 먹네요' 하는 모습 보여줘야 하고. 진짜 배고픈 건 참아야 해." 맞다. 배고프다고 말하면 약해 보인다. 끼니 거른다고 하면 관리 못 한다고 본다. 특히 여자 대표한테는. 남자 대표들은 "바쁘다"고 하면 멋있다. 나는 "챙겨 먹어야죠" 소리 듣는다. 3500원짜리 삼각김밥의 위안 오늘 미팅 끝나고 배가 고팠다. 편의점 들렀다. 삼각김밥 하나, 바나나우유 하나. 3500원. 차 안에서 먹었다. 다음 일정까지 20분 남았다. 혼자 먹는 유일한 시간이다. 김밥 뜯는다. 한 입 베어 문다. 제대로 씹는다. 20번, 30번. 맛이 느껴진다. 참치마요 맛. 단무지 식감. 밥알 하나하나.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그냥 밥 먹는 게 이렇게 위로가 될 줄 몰랐다. 누구 눈치 안 보고, 말 안 하고, 그냥 먹는 것. 이게 이렇게 그리웠나. 바나나우유 빨대 꽂는다. 한 모금 마신다. 달다. 어렸을 때 먹던 맛이다. 엄마가 사줬던 그 맛. 20분이 금방 지나간다. 알람이 울린다. 다음 미팅 10분 전이다. 김밥 포장지 구겨서 봉투에 넣는다. 백미러 보고 립스틱 고친다. 다시 대표 모드로 돌아간다. 오늘 저녁 메뉴? 아이들 급식 메뉴판 봤더니 햄버거다. 그럼 집에서는 가벼운 거 먹어야지. 샐러드? 아니면 그냥 굶을까. 근데 남편이 문자 보냈다. "오늘 회식이야. 애들 저녁 부탁해." 그래, 어차피 내 저녁은 없었다. 언젠가는 주말이다. 아이들이 놀이터 간다고 한다. 남편이 데리고 나갔다. 2시간 정도 혼자 있을 수 있다. 냉장고 연다. 뭐 먹을까 고민한다. 사실 뭐든 상관없다. 혼자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라면 끓인다. 계란 하나 넣는다. 김치 꺼낸다. 식탁에 앉는다. TV 틀지 않는다. 핸드폰도 뒤집어 놓는다. 그냥 밥만 먹는다. 후루룩 소리 낸다.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 내가 먹고 싶은 소리다. 뜨겁다. 혓바닥이 데인다. 그래도 좋다. 이게 제대로 먹는 거다. 10분 만에 비운다. 국물까지 다 마신다. 배가 든든하다. 진짜 든든하다. 설거지하면서 생각한다. 언젠가는 점심을 점심으로만 먹는 날이 올까. 미팅 없이, 그냥 밥만 먹는 날. 30분 온전히 내 시간인 날. 올 것 같기도 하고, 안 올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괜찮다. 지금도 버티고 있으니까. 35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어차피 엄마의 밥은 늘 남은 밥이었고, 대표의 밥은 늘 업무의 연장이었다. 둘 다인 사람의 밥은? 사치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리고 싶다. 그냥 밥 먹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오늘 점심은 투자사 미팅, 내일 점심도 파트너사 미팅이다. 그래도 괜찮다. 차 안에서 먹는 삼각김밥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