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시리즈a

시리즈A 15억, 손익분기점 근처, 그 사이의 떨림

시리즈A 15억, 손익분기점 근처, 그 사이의 떨림

시리즈A 15억, 손익분기점 근처, 그 사이의 떨림 15억이 통장에 들어온 날 작년 11월 23일. 통장에 15억이 찍혔다. '떴다.' 슬랙에 올렸다. 직원들이 환호했다. 남편이 샴페인 사왔다.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 투자 나왔어." 엄마가 울었다. 그날 밤 혼자 통장 봤다. 15억. 150,000,000원. 숫자가 길었다. 무서웠다.투자 유치 과정은 7개월이었다. IR 자료 만들고, 피칭하고, 거절당하고. 다시 만들고, 다시 피칭하고, 또 거절당하고. "여성 타겟 사업은 시장이 작아요." "대표님, 육아하면서 스케일업 가능하세요?" "남편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자 대표들한테 묻지 않는 질문들. 그래도 결국 한 곳이 믿어줬다. 40대 여성 파트너가 있는 VC였다. "저도 아이 둘 키우면서 일했어요. 힘들죠." 그 말에 울뻔했다. 8000만원과 손익분기점 사이 지금 월 매출 8000만원. 작년 이맘때는 4500만원이었다. 성장했다. 손익분기점은 9200만원. 계산해봤다. 직원 15명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마케팅 비용, 서버비, 잡비. 딱 9200만원. 1200만원 차이. 가깝다. 너무 가깝다. 근데 안 닿는다.지난달은 8300만원이었다. "이번 달은 될 것 같아요!" CFO가 말했다. 설렜다. 이번 달은 7800만원. 광고 집행 잘못했다. 전환율이 떨어졌다. ROI가 안 나왔다. "다음 달은 꼭 넘을 거예요." 똑같은 말 반복한다. 6개월째. 투자자 보고서 쓸 때마다 떨린다. "손익분기점 언제쯤 예상하세요?" 질문이 온다. "3분기 안으로요." 대답했다. 벌써 2분기 중반이다. 직원들 월급날의 무게 매달 25일. 월급날. 총 급여 4200만원. 클릭 한 번. 돈이 나간다. 통장 잔액 본다. 11억 2천. 작년 11월엔 15억이었다. 8개월에 3억 8천. 한 달 평균 4750만원씩 타는 거다. 계산기 두드린다. 11억 2천 ÷ 4750만원 = 23.5개월. 2년 남았다.2년 안에 손익분기점 넘어야 한다. 아니면 시리즈B 투자 받아야 한다. 둘 다 안 되면. 생각 안 한다. 못 한다. 마케팅팀 신입이 어제 말했다. "대표님, 여기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아요. 워라밸도 지켜주시고." 웃어줬다. 속으론 '2년 안에 네 월급 내가 못 줄 수도 있어' 생각했다. 안 보여줬다. 보여주면 안 된다. 대표는. 투자자 미팅의 온도차 분기마다 투자자 미팅 한다. 보고한다. 실적, 계획, 고민. 저번 주 미팅. "매출 성장률은 좋은데, 손익은 왜 계속 마이너죠?" 설명했다. 마케팅 투자, 인력 충원, 물류 개선. 성장하려면 쓸 수밖에 없다고.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요?" 목이 막혔다. "다른 포트폴리오사는 벌써 BEP 넘었는데." 비교당했다. 다른 회사랑. 남자 대표 회사. "알겠습니다. 속도 내겠습니다." 대답했다. 나오면서 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웃었다. 눈물 안 나왔다.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엄마 회사 망하면 어떡해?" 딸이 지난주에 물었다. "엄마, 엄마 회사 크게 성공하면 우리 부자 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망하면?" 멈췄다. "망하지 않아." "근데 만약에?" "...엄마가 다시 취직하면 돼." 딸이 안심했다. "다행이다." 나는 안심 안 됐다. 15억 받았다고 성공한 게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아니, 시작보다 더 무거운 뭔가다. 투자금은 빚이다. 갚아야 한다. 돈으로가 아니라 성과로. 아이들한테 설명 못 한다. "엄마는 지금 15억으로 회사 키우는 중이야. 근데 매달 5천만원씩 쓰고 있어. 8천만원 벌면서. 그래서 2년 안에 1억 이상 벌어야 해. 안 그러면..." 말을 못 잇는다. 손익분기점이 보이는 착각 어제 마케팅팀이 보고했다. "대표님, 신규 프로모션 기획했어요. 이거 하면 이번 달 1억 갑니다." 설렜다. "예산은?" "1500만원이요." 계산했다. 매출 1억, 비용 1500만원 추가, 그럼 순이익은... 마이너스 800만원. "보류." "네?" "일단 보류. 다시 계획해봐." 팀원 얼굴이 실망했다. 미안했다. 성장과 수익. 둘 다 잡아야 한다는데, 동시에 못 잡는다. 투자 받기 전엔 '돈만 있으면' 생각했다. 돈 생기니까 '어떻게 쓸까'가 문제다. 빨리 크면 돈 빨리 탄다. 천천히 가면 투자자가 불안해한다. 그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다는데, 못 찾겠다. 같은 시기 창업한 남자 대표 대학 동기 준호. 같은 해 창업했다. 걔는 시리즈B 받았다. 50억. 저번 주 만났다. "누나, 요즘 어때? 우리는 이제 손익분기점 넘어서 좀 숨통 트였어." 축하한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근데 누나는 아직이야? 15억 받은 거 작년이잖아." "응. 거의 다 왔어." "힘내. 누나도 곧 될 거야. 근데 애들은 누가 봐줘? 힘들지?" 또 그 질문. 준호 아이도 둘이다. 근데 준호한테는 아무도 안 물어본다. "애 보느라 힘들죠?" 준호 와이프가 육아 전담한다. 준호는 일만 한다. 나는 엄마이면서 대표다. 둘 다 100% 해야 한다. 그게 규칙이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밤 11시의 엑셀 시트 아이들 재웠다. 남편은 먼저 잤다. 노트북 켰다. 엑셀 열었다. 재무제표 본다. 시나리오 짠다. 시나리오1: 이번 달 9천 돌파, 다음 달 손익분기점. 시나리오2: 올해는 계속 마이너스, 내년 1분기에 BEP. 시나리오3: 시리즈B 투자 유치, 12개월 더 버틴다. 시나리오4: ... 4번은 안 쓴다. 생각도 안 한다. 숫자 만지면 마음이 정리된다. 감정은 복잡한데, 숫자는 명확하다. 11억 2천. 23.5개월. 월 매출 8천. 손익분기점 9200. 격차 1200. 1200만원. 직원 한 명 월급이다. 그 정도 차이. 근데 안 좁혀진다. 6개월째. 컵라면 끓였다. 먹으면서 캘린더 봤다. 다음 주 화요일: 투자자 미팅. 금요일: 딸 학예회. 다다음 주 월요일: 시어머니 생신. 빨간 펜으로 표시한 날들. 절대 못 빼먹는 일정들. 회사 일정은 파란 펜. 옮길 수 있다. 미룰 수 있다. 빨간 펜 일정은 못 옮긴다. 옮기면 '나쁜 엄마', '나쁜 며느리' 된다. 여성 창업가 모임에서 들은 말 지난달 모임. 선배 대표님이 말했다. "다들 착각하는 게 있어. 투자 받으면 성공한 줄 알아. 아니야. 거기서부터 지옥이야." 웃었다. 다들 웃었다. 쓴웃음. "투자금은 마이너스통장이야. 갚아야 해. Exit으로. 근데 Exit 확률이 얼마야? 5%?" 누군가 물었다. "그럼 왜 했어요?"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해봐야 아는데, 해보면 후회하는데, 그래도 해야 하니까." 역설이었다. 나도 안다. 15억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다. 15억 있어서 이렇게 힘들다. 직원 15명 책임진다. 투자자한테 보고한다. 손익분기점 넘어야 한다. 시리즈B 받아야 한다. 엄마 역할 한다. 아내 역할 한다. 역할이 너무 많다. 나는 한 명인데. 그래도 9시 출근은 한다 아침 5시 일어났다. 어제 밤 1시에 잤다. 4시간. 커피 내렸다. 노트북 켰다. 이메일 확인했다. 긴급한 거 두 개. 답장 보냈다. 7시. 아이들 깨웠다. 아침 먹였다. 딸 준비물 챙겼다. 아들 옷 입혔다. "엄마, 오늘 빨리 와." "응, 일찍 올게." 거짓말이다. 오늘 저녁 7시 미팅 있다. 등원시키고 출근했다. 9시 사무실 도착. "대표님, 커피 드릴까요?" 인턴이 물었다. "응, 고마워. 아메리카노." 회의 시작했다. 마케팅 전략. 매출 분석. 신규 제품 론칭 일정. 집중했다. 피곤한 거 안 보이게. "대표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안 좋으신데." "응? 아니야, 괜찮아. 계속해." 거울 안 본다. 보면 무너질 것 같다. 손익분기점 너머를 상상할 때 가끔 상상한다. 손익분기점 넘는 날. 통장에 돈이 쌓이는 날. 투자자한테 "저희 이제 흑자 전환했어요" 보고하는 날. 직원들한테 성과급 주는 날. 아이들한테 "엄마 회사 잘 돼" 말하는 날. 남편한테 "여보, 이제 좀 숨통 트였어" 말하는 날. 시어머니가 "우리 며느리 대단해" 인정하는 날. 그날이 올까? 온다. 와야 한다. 안 오면 안 된다. 근데 확신은 없다. 확률 게임이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운도 필요하다. 타이밍도 필요하다. 시장도 봐야 한다. 변수가 너무 많다. 통제 못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한다. 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8001만원의 의미 이번 달 목표 세웠다. 8001만원. 작년보다 높다. 지난달보다 높다. 손익분기점보다는 낮다. 근데 괜찮다. 한 계단씩. 팀원들한테 말했다. "이번 달 목표는 8001만원. 딱 1만원이라도 더." "왜 8001이에요?" "작년엔 8000이 목표였어. 이번엔 그것보다 높아야지." 1만원. 아무것도 아니다. 커피 두 잔 값. 근데 의미가 있다. 계속 올라가는 것. 멈추지 않는 것. 손익분기점까지 1200만원. 멀다. 근데 작년엔 4700만원이었다. 3500만원 좁혔다. 1년에. 그럼 1200만원은? 4개월? 6개월? 모르겠다. 근데 언젠가는 닿는다. 계속 가면. 떨리는 게 당연하다 누가 물었다. "대표님은 무섭지 않아요?" "무섭지." "그럼요?" "그래도 해." 무섭지 않은 척 안 한다. 피곤한 척 안 한다. 힘든 척 안 한다. 그냥 솔직하다. "나도 무서워. 근데 해야 돼." 떨린다. 손익분기점 앞에서. 15억 잔액 보면서. 투자자 보고서 쓸 때. 떨리는 게 정상이다. 안 떨리면 이상한 거다. 이 돈으로 15명 먹여 살린다. 가족 먹여 살린다. 회사 키운다. 꿈 이룬다. 안 떨릴 수가 없다. 근데 떨리면서도 한다. 손 떨리면서 키보드 친다. 목소리 떨리면서 발표한다. 마음 떨리면서 결정한다. 떨림을 받아들인다. 떨림과 함께 간다.15억과 손익분기점 사이. 그 틈에서 산다. 떨리지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