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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혼자 우는 밤,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혼자 우는 밤,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혼자 우는 밤, 아무도 모르게 새벽 2시 17분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손으론 키보드 치고, 한 손으론 눈물 닦았다. 투자자한테 보내는 주간 리포트. "이번 주 목표 달성률 92%, 고객 만족도 상승 중입니다." 타이핑하면서 눈물 떨어졌다. 키보드에 눈물 떨어지면 안 된다. 15만원짜리 기계식이다. 이런 거 생각하니까 웃겼다. 웃으면서 또 울었다.거실 바닥엔 레고가 널려 있다. 아까 준우가 "엄마랑 만들자"고 가져온 거다. "엄마 지금 일 있어. 내일 할게." 했다. 내일은 언제인가. 내일도 똑같을 건데. 강한 척하는 것도 일이다 오늘 오후 3시. 시리즈B 투자 미팅. VC 파트너가 물었다. "아이들 있으시죠? 시간 관리 괜찮으세요?" 남자 대표들한테도 이런 질문 하나. 궁금해서 물어봤다. 안 한대. "네, 괜찮습니다. 시스템이 잘 잡혀 있어서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시스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저녁 10시까지 버티는 게 시스템이다. 친정엄마한테 "미안해" 스무 번 말하는 게 시스템이다. 아이들 재우고 다시 노트북 여는 게 시스템이다. 그 파트너는 40대 남자다. 아이 셋 있다고 했다. 미팅 끝나고 "애들이랑 저녁 먹으러 가봐야죠" 했다. 6시에. 나는 9시에 들어갔다. 준우는 이미 자고 있었다.누구한테 말하나 남편한테? 남편도 힘들다. "나도 회사 다니고 육아 분담하잖아." 맞다. 한다. 근데 다르다. 남편이 야근하면 "일 열심히 하네" 소리 듣는다. 나는 "애 좀 보지" 소리 듣는다. 시어머니한테? 지난주에 또 그랬다. "며느리가 집에 좀 있어야 애들이 안정적이지." 친정엄마한테? 엄마는 나 때문에 매주 서울 올라온다. 부산에서 KTX로. "괜찮아, 손주들 보는 재미로 산다." 고맙지만 미안하다. 직원들한테? "대표님 힘드시죠? 저희도 도와드릴게요." 고마운데 말 못 한다. 나는 대표다. 버텨야 한다. 여성 CEO 모임에서? 거기서도 조심스럽다. 다들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무너지는 것 같다. 그래서 새벽에 운다. 혼자서. 오늘 울게 된 이유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아침에 지윤이가 그랬다. "엄마, 오늘 학교 참관 수업인데." 모른다. 알림장에 있었나. 확인 못 했다. "엄마 일 있어서 못 가. 미안해." "다른 애들 엄마는 다 온대." 가슴이 찢어졌다. 근데 오늘 투자 미팅이 있다. 15억 들어오면 직원 15명이 월급 받는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답이 없다. 점심에 MD팀장이 말했다. "대표님, 리뷰 응대 가이드 확인해주세요." 확인했다. "수고했어요. 이대로 진행해요." 팀장이 웃었다. "대표님 항상 긍정적이셔서 좋아요." 긍정적인 게 아니다. 무너질 시간이 없는 거다. 저녁에 남편이 물었다. "요즘 네 얼굴 왜 그래?" "피곤해서." "좀 쉬지 그래." 쉬면 회사가 멈춘다. 그럼 직원들이 어떻게 되나. 고객들은. 투자자들은. 아이들은. 모든 게 내 어깨에 있다.강한 여자가 되라고 어렸을 때부터 들었다. "여자는 강해야 해." 대학 때도. "여자가 사회 나오려면 남자보다 두 배는 해야지." 회사 다닐 때도. "여자 임원 별로 없잖아. 네가 해봐." 창업할 때도. "여성 창업가 롤모델이 되세요." 출산 후에도. "워킹맘들 희망이 되는 거예요." 강하다는 게 뭔가. 안 우는 거? 안 힘든 거? 다 해내는 거? 나는 강하지 않다. 그냥 버티는 거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버틴다. 아이들 밥 먹이고 버틴다. 출근해서 버틴다. 미팅하면서 버틴다. 직원들 앞에서 버틴다. 투자자 앞에서 버틴다. 시어머니 앞에서 버틴다. 그리고 새벽에 무너진다. 혼자서. 그래도 키보드를 친다 리포트는 보내야 한다. 내일 아침 9시까지. "Q2 목표: 월 매출 1억 돌파" "핵심 지표 개선 현황" "다음 주 액션 플랜" 타이핑한다. 눈물은 멈췄다. 컴퓨터 시계가 새벽 3시를 넘었다. 2시간 후면 일어나야 한다. 거실을 본다. 준우 레고가 보인다. "내일 같이 만들자"던 그거. 내일은 토요일이다. 오전엔 준우랑 레고 만들 거다. 오후엔 지윤이 학원 데려다줄 거다. 저녁엔 가족이랑 외식할 거다. 그리고 밤엔 다시 노트북 열 거다. 월요일 준비해야 하니까. 이게 내 삶이다. 선택했다. 후회는 안 한다. 근데 힘들다. 말할 수 없이. 누가 나를 이해하나 여자들끼리도 다르다. 전업주부 친구들은 말한다. "나는 경력 단절이야. 넌 좋겠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말한다. "창업? 대단하다. 나는 못 해." 남자 동기들은 말한다. "애 둘 키우면서 창업? 미쳤다." 시어머니는 말한다. "애들이 불쌍하다." 친정엄마는 말한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남편은 말한다. "힘들면 그만둬." 그만두면 뭐가 되나. 4년 쌓은 게 날아간다. 직원 15명이 어떻게 되나. 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은. 우리 제품 쓰는 엄마들은. 그리고 내 꿈은. 못 그만둔다. 그만두고 싶지도 않다. 근데 버티기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새벽의 진실 이 시간만 솔직해진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좋은 엄마도 아니다. 훌륭한 대표도 아니다. 학교 행사 못 간다. 아이들이랑 시간 부족하다. 회사 숫자도 목표보다 낮다. 투자자들 기대에 못 미친다. 직원들한테 미안하다. 모든 게 부족하다. 근데 최선이다. 지금 이게 내 최선이다. 더 잘하고 싶다.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 시간은 24시간이고. 몸은 하나고.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슈퍼우먼은 없다. 그냥 버티는 여자들만 있다. 그래도 일어난다 알람이 울릴 거다. 5시에. 일어날 거다. 씻을 거다. 커피 내릴 거다. 아이들 깨울 거다. 웃으면서. "좋은 아침!" 준우가 물을 거다. "엄마 잤어?" "응, 잤어." 거짓말이다. 근데 사실이기도 하다. 1시간은 잤으니까. 회사 갈 거다. 직원들 만날 거다. 웃을 거다. "오늘도 화이팅!" 힘들다는 말 안 할 거다. 대표니까. 투자자 미팅 들어갈 거다. 자신감 있게. "저희 이번 달 성과 보고드립니다." 떨리는 목소리 안 나올 거다. 연습했으니까. 저녁에 집 갈 거다. 아이들 안을 거다. "엄마 보고 싶었어?" "응!" 미안하다는 말 대신 안을 거다. 더 세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 누군가 물으면 말할 거다.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재밌어요." "후회 안 하세요?" "아니요. 잘한 선택이에요." "어떻게 해내세요?" "시스템이요. 시스템." 다 진실이다. 근데 전부는 아니다. 말 못 하는 게 있다. 매일 아침 거울 보면서 스스로 다독인다. "오늘도 할 수 있어." 출근길에 운전하면서 눈물 흘린다. 아무도 모르게. 점심시간에 화장실 칸에서 숨 고른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밤에 아이들 재우고 또 운다. 소리 안 나게. 새벽에 키보드 친다. 눈물 닦으면서. 이게 내 진짜 일상이다. 누구도 모르는. 혼자가 아니길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벽에 눈물 닦으면서 노트북 켜는 여자. 엄마이면서 대표인. 아내이면서 리더인. 딸이면서 롤모델인. 모든 걸 다 해내야 하는. 근데 아무것도 완벽하지 못한. 버티면서도 무너지는. 강한 척하지만 약한.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그렇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 있다. 새벽에 우는 우리. 아무도 모르게. 근데 계속 일어나는 우리. 매일 아침. 내일도 리포트 보냈다. 새벽 3시 47분. 침대로 간다. 1시간 13분 잘 수 있다. 남편이 자고 있다. 아이들 방에서 준우 코 고는 소리. 이 순간만큼은 평화롭다. 눈 감는다. 내일도 똑같을 거다. 버티고 무너지고 또 일어나고. 그래도 괜찮다.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힘들어도. 혼자 울어도. 나는 계속 간다.새벽 눈물은 약함이 아니다. 버티기 위한 준비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