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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 05 Jan, 2026
직원들의 업무 문제를 해결할 때보다 개인 문제를 들을 때의 부담감
업무 문제는 쉽다 오전 10시. 마케팅팀 수진이가 들어왔다. "대표님, 광고 집행 건으로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이런 건 편하다. 숫자 보고, 데이터 확인하고, 방향 정하면 된다. 30분이면 끝난다. "ROI가 2.3에서 1.8로 떨어졌어요. 타겟을 다시 잡아볼까요?" "그래, 25-34세 구간 세분화해봐. 육아 키워드 조합도 테스트하고." 깔끔하다. 업무는 정답이 있다. 아니면 최선이라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대표님, 시간 좀 괜찮으세요" 수진이가 나가지 않았다. 문 앞에서 망설였다. "대표님... 개인적인 얘기인데,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심장이 쿵했다. 이 말이 나오면 준비해야 한다. 30분이 아니라는 거다. "응, 앉아." "사실은요...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3년 사귄 사람이었는데." 숨 한 번 들이쉬었다. "결혼 얘기 나오다가, 제가 야근 많이 한다고. 승진하려고 너무 일만 한다고. 그래서..." 눈물이 글썽였다. "일주일 전부터 집중이 안 돼요. 광고 성과도 그래서..." 아. 숫자 뒤에 이런 게 있었구나. 휴지 건네고, 물 따라줬다. 업무 문제였으면 해결책을 말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들었다. 20분 들었다. 아니, 들어줬다. "힘들었겠다. 이번 주는 일찍 가도 돼. 리프레시 필요하면 말하고." 수진이가 나가고, 나는 혼자 남았다. 무겁다. 여성 팀원이 많다는 것 우리 회사 직원 15명 중 12명이 여자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이커머스, 특히 육아용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지원자가 많았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복잡하다. 남자 대표였으면 달랐을까. 아니, 달랐을 거다. 여자 대표니까 말하는 거다. 생리통, 임신 계획, 육아 문제, 연애 고민, 가족 갈등. "대표님은 이해해주실 것 같아서요." 이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고맙다. 진심으로. 나를 믿어주는 거니까. 그런데 동시에 무겁다.대표인가 언니인가 지난달. 디자인팀 예린이가 임신 소식을 알렸다. "대표님, 제가... 임신했어요." "진짜? 축하해!" 기뻤다. 진심으로. "그런데 걱정돼요. 제가 지금 메인 프로젝트 맡고 있잖아요. 출산휴가 들어가면..." "그건 우리가 조정하면 돼. 너는 몸 챙겨." "입덧이 심해서 오전에 집중이 안 되는데, 재택 가능할까요?" "당연하지. 조정해." 그날 저녁. 집에서 캘린더 다시 짰다. 예린이 빠지면 디자인 일정 3주 밀린다. 외주 쓰면 비용 300만원 추가. 시리즈B 준비하는 타이밍에 이건 부담이다. 근데 말 못 한다. 예린이한테도, 다른 팀원한테도. "대표님은 여자라서 이해해주시니까 좋아요." 이 말이 칭찬인지 무게인지 모르겠다. 둘 다인 것 같다. 상담자가 되는 순간들 화요일 점심. 개발팀 민지. "대표님, 부모님이 결혼 압박이 심해요. 서른 다섯인데 아직도 회사만 다닌다고." 목요일 오후. 마케팅팀 지은. "육아휴직 쓰고 싶은데, 복직하면 제 자리 없을까 봐 걱정돼요." 금요일 저녁. 운영팀 수빈. "생리통이 너무 심한데, 병원 가려면 반차 써야 하잖아요. 눈치 보여요." 다 들었다. 한 명 한 명. 업무 문제였으면 답 주면 된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바꾸자". 근데 이건 답이 없다. "힘들겠다", "이해한다", "우리가 조정해보자".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전부다. 그리고 그 무게를 혼자 안는다.남자 대표들은 이런 거 안 듣는다 지난주. 남편이랑 술 마셨다. "요즘 힘들어 보여." "응... 팀원들 얘기 들어주다 보면 나도 지쳐." "무슨 얘기?" "개인적인 거. 연애, 결혼, 임신, 육아..." 남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거까지 대표가 들어줘야 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남자들은 모르는구나. 여자 대표라서 듣는 거다. 여자 팀원이 많아서 생기는 일이다. 남자 대표였으면 이런 얘기 안 올라온다. "개인사는 개인이 해결하세요" 하면 끝이다. 근데 나는 못 한다. 왜냐면 나도 겪었으니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일하면서, 시어머니 눈치 보고, 학교 행사 못 가서 미안하고. 그래서 듣는다. 그래서 무겁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무게 여성 비율이 높은 팀. 이게 자랑스러울 때도 있다. "우리는 여성 친화적 회사예요" 하면 반응이 좋다. 투자자 미팅에서도 플러스다. "워라밸 보장, 출산휴가 자유, 생리휴가 눈치 없음." 실제로 우리 회사 이직률 낮다. 6개월 평균 재직률 92%. 그런데. 그 뒤에 내가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팀원들의 개인 문제 들어주고, 일정 조정하고, 감정 케어하고. "대표님은 여자라서 이해해주시니까." 이 말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남자 대표였으면 이해 안 해줘도 되는 건가. 여자 대표니까 이해해줘야 하는 건가. 그리고 이해해주는 나는 누가 이해해주나. 혼자 우는 밤 어제 밤 11시. 아이들 재우고 침대에 누웠다. 수진이 생각났다. 3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진 거. 예린이 생각났다. 임신했는데 프로젝트 걱정하는 거. 민지 생각났다. 부모님 결혼 압박받는 거. 다 내 문제가 아니다. 근데 내 안에 쌓인다. 눈물이 났다. 남편한테도 말 못 한다. "그런 거까지 네가 들어줘야 해?" 할까 봐. 엄마한테도 말 못 한다. "회사 그만두고 애나 잘 키워" 할까 봐. 여성 CEO 모임에서도 말 못 한다. 다들 강한 척하니까. 그래서 혼자 운다. 이게 여자 대표의 숙제인가. 그래도 듣는다 오늘 아침. 출근했다. 수진이가 먼저 인사했다. "대표님, 어제 말씀 드려서 좀 후련했어요. 감사해요." "응, 힘들면 언제든지." 예린이가 배 만지며 지나갔다. "대표님 덕분에 마음 편하게 다니고 있어요." "몸 조심해." 민지가 보고서 들고 왔다. "오늘 집중 잘 됐어요. 듣기만 해주셔도 도움 돼요." "다행이다." 무겁다. 여전히. 근데 안 들을 수는 없다. 왜냐면 나도 누군가 들어줬으면 했으니까. 창업 초기에, 첫 아이 낳고 복귀했을 때, 투자자 미팅에서 "애 있으시죠?" 질문 받았을 때. 아무도 안 들어줬다. 그래서 나는 듣는다. 팀원들의 업무 문제도, 개인 문제도. 대표니까 듣는 게 아니라, 여자니까 듣는 것도 아니라. 그냥 사람이니까. 경계선은 어디인가 근데 솔직히 모르겠다. 어디까지 들어줘야 하나. 업무와 개인의 경계. 대표와 언니의 경계. 회사와 상담소의 경계. 지난주 운영팀 회의에서 나왔다. "대표님, 우리 회사 복지 중에 '심리 상담 지원' 추가하면 어떨까요?" 순간 뜨끔했다. 아.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전문가도 아닌 내가. "좋은 생각이다. 알아보자." 월 50만원이면 전 직원 월 1회 상담 가능하다고 한다. 비싸다. 근데 필요하다. 나도 필요하다. 솔직히. 여성 대표의 보이지 않는 노동 투자자 보고서에는 안 나온다. 매출, 성장률, 직원 만족도. 숫자로 나온다. 근데 이건 안 나온다. 팀원 한 명 한 명의 삶을 듣고, 안고, 조정하는 시간. 이게 내 업무 시간의 30%다. 화요일 오후 2시간, 목요일 오후 1시간, 금요일 저녁 1시간. 이 시간에 나는 대표가 아니다. 그냥 듣는 사람이다. 남자 대표들은 이 시간을 전략 회의에 쓴다. 투자 미팅 준비한다. 네트워킹한다. 나는 휴지 건네고 있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또 듣는다. 왜냐면 안 들으면 팀이 무너지니까. 숫자로 안 나오는 무너짐. 롤모델은 없다 한 달 전. 여성 창업가 네트워킹 갔다. 선배 대표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원들 개인 문제까지 들어주시나요?" "아니, 그건 선 그어야지. 업무만 챙겨." "근데 여자 팀원들이 자꾸..." "그래도 안 돼. 경계 확실히 해야 회사 굴러가." 고개는 끄덕였는데, 마음은 안 따라갔다. 나는 못 그러겠더라. 다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했어. 근데 번아웃 왔어. 결국 심리상담 받았지." "..." "네가 모두를 구할 순 없어. 네 자신부터 챙겨." 맞는 말이다. 아는데. 실천이 안 된다. 오늘도 듣는다 오후 4시. 마케팅팀 수진이가 또 왔다. "대표님, 저 요즘 상담 치료 받기로 했어요." "잘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신다고 들었어요. 감사해요." "당연한 거야. 필요하면 써." "대표님도 받으세요. 진짜로." "...나?" "네. 대표님이 제일 힘들어 보여요." 순간 울컥했다. 참았다. 여기서 울면 안 된다. "고마워. 생각해볼게." 수진이가 나가고, 혼자 남았다. 창밖을 봤다. 강남 빌딩들이 보인다. 어디선가 다른 여자 대표도 이러고 있겠지. 팀원 얘기 들어주고, 혼자 삭이고, 또 내일 출근하고. 보이지 않는 노동. 숫자로 안 나오는 리더십. 여자라서 지는 무게.무겁지만 놓을 수 없다. 이게 내가 만들고 싶었던 회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