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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스타트업 대표라는 것, 뉘앙스가 다르다

여성이 스타트업 대표라는 것, 뉘앙스가 다르다

여성이 스타트업 대표라는 것, 뉘앙스가 다르다 같은 말인데 다르게 들린다 어제 전략회의를 했다. 마케팅 예산 증액 건. 15% 늘리자는 안건이었다. "팀원들 의견 들어보고 결정하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현장에서 직접 돌리는 사람들이 더 잘 안다. 회의 끝나고 한 시간 뒤. 투자사 대표님한테 전화 왔다. "김대표님, 너무 직원들 눈치 보시는 거 아니에요? 리더는 결단력이 있어야죠." 가만 있었다. 전화 끊고 멍했다. 지난주에 남자 동기 창업가 만났을 때 생각났다. 걔도 똑같이 말했었다. "팀원들이랑 상의해서 결정할게요." 그땐 누가 뭐래? "민주적 리더십이시네요. 요즘 그게 맞죠." 같은 말이다. 정확히 같은 행동이다. 근데 나한테는 '우유부단', 걔한테는 '민주적'.단호하면 '공격적', 부드러우면 '약하다' 직원 한 명이 3주 연속 지각했다. 경고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음엔 인사조치 들어갑니다." 명확하게 말했다. 원칙이 있어야 하니까. 다음 날 그 친구가 다른 팀원한테 말했다더라. "대표님 무섭다. 칼같으시다." 슬랙에 떴다. "여자 대표가 저러면 안 되는데..." 남자 대표가 똑같이 말하면? "원칙이 확실하시네." 반대로 부드럽게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안다. 6개월 전 얘기다. 한 팀원이 실수로 중요 거래처 미팅 날짜 잘못 잡았다. "괜찮아요. 다음엔 더 확인하면 되죠. 다시 연락해봐요." 그랬더니 한 달 뒤 투자 미팅에서 들었다. "팀 관리가 좀... 느슨한 거 아닙니까? 대표님이 좀 더 강하게 잡으셔야죠." 그래서 강하게 잡으면 '공격적'이고, 배려하면 '약하다'는 건가. 남자 대표들은 이런 줄다리기 안 한다. 걔네는 그냥 '리더십'이면 된다.회의 때 목소리 톤까지 신경 쓴다 회의할 때가 제일 피곤하다. 말투 하나하나 계산해야 하니까. 목소리 너무 높으면? "감정적이시네요." 너무 낮추고 차분하게? "자신감이 없으신가?" 웃으면서 말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건가요?" 표정 없이 말하면? "좀 무섭네요." 투자 미팅은 더하다. 저번 주 시리즈B 투자 미팅. 30대 후반 남자 파트너. 질문이 시작됐다. "대표님, 지분율 낮아지는 거 남편분은 뭐래요?" 남편? 왜 남편이 나와? "남편은 상관없습니다. 제 회사니까요." 이렇게 말했다. 또렷하게. 분위기 싸해졌다. "예민하시네." 이 말이 들릴 듯 말 듯 들렸다. 같은 자리 있던 남자 CEO한테 저런 질문 나왔나? 안 나왔다. "와이프는 뭐래요?" 이런 거 들은 남자 창업가 본 적 있나? 없다. 그 미팅 끝나고 화장실에서 울었다. 5분. 그리고 다시 화장 고쳤다. 다음 미팅까지 30분 남았으니까.'엄마 CEO'는 별종 취급받는다 아이 둘 있다는 걸 미팅에서 말하면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뀐다. "아, 애기 있으세요? 힘드시겠어요." 동정? 걱정? 둘 다 아니다. '제대로 못 하겠네' 이 눈빛이다. 실제로 들었다. 작년 투자 미팅에서. "육아하시면서 회사 운영하시기 힘드시죠? 시간 분배가..."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난다. "남자 대표님들도 다들 가정 있으시잖아요. 저도 똑같이 일합니다." 그랬더니 웃었다. 그 VC 대표가. "그래도 엄마는 다르죠. 아무래도..." 다르다는 게 뭔데. 아이 아프면 병원 가는 게? 학교 행사 참석하는 게? 남자 대표들도 아이 있으면 그런다. 근데 걔네는 '가족 사랑하는 CEO'다. 나는? '일에 집중 못 하는 워킹맘'. 같은 행동이다. 정확히 같은 상황이다. 근데 읽히는 게 다르다. 작년에 딸 학예회 때문에 미팅 시간 조정 요청했다. "아이가 있어서요. 오후 3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답장 왔다. "역시 여자 대표님들은 시간 조율이 힘드시죠." 그 사람 링크드인 봤다. 아들 둘 있다더라. 근데 걔는 미팅 시간 조정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 배려는 '리더십 부족'으로 읽힌다 우리 팀 여직원 비율 80%. 의도한 건 아니다. 그냥 뽑다 보니 그렇게 됐다. 육아용품 큐레이션이니까 워킹맘들이 많이 지원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재택 자유롭다. 아이 아프면 당연히 쉰다. 학교 행사 가라고 한다. 내가 필요했던 것들이니까. 내가 못 받았던 배려니까. 그게 문제래. 지난달 IR 자료 검토하던 투자사 파트너가 물었다. "재택 많이 하시네요? 생산성은 괜찮으세요?" 생산성? 매출 8000만 원에 YoY 200% 성장인데? "네, 문제없습니다. 실적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래도 대표님이 좀 더 강하게 관리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성 직원들 많으시니까..." 여성 직원 많으면 뭐가 문제인데. 그 파트너는 자기 회사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언론에 났었다. 근데 우리 회사가 하면 '관리 부족'. 남자 CEO가 직원 배려하면? '좋은 기업문화'. 여자 CEO가 직원 배려하면? '리더십 약하다'. 이게 현실이다. 감정 표현하면 '프로답지 못하다' 작년 시리즈A 투자 유치했을 때다. 15억. 4년 동안 달려왔다. 계약서 사인하는 날, 울었다. 기뻐서. 떨려서. 같이 투자 들어온 다른 창업가 있었다. 남자였다. 걔도 울었다. 기사 났다. 우리 둘 다. 그 남자 창업가 기사 제목: "꿈 이룬 창업가의 눈물, 열정이 만든 결실" 내 기사 제목: "여성 CEO의 감격, 감정적 순간 포착" '열정'과 '감정적'. 같은 눈물인데 다른 단어다. 회의에서 목소리 높이면? "왜 화내세요?" 남자 대표가 목소리 높이면? "열정적이시네요." 짜증 내면? "예민하신가 봐요." 남자 대표가 짜증 내면? "스트레스 많으시겠어요." 웃으면? "가볍게 보시는 거 아니에요?" 남자 대표가 웃으면? "여유로우시네요." 그래서 지금은 표정 관리한다. 딱 중간 지점. 너무 웃지도, 너무 굳지도 않게. 목소리 톤 중간.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피곤하다. 진짜 피곤하다. 내 의견 말하는 데 이렇게 에너지 쓰는 게 맞나. 네트워킹도 다르게 작동한다 남자 CEO들끼리는 골프 친다. 술 마신다. 사우나 간다. 나는? 그 자리에 없다. "김대표님도 오시죠." 초대받아도 어색하다. 골프?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 술? 2차 가면 새벽 2시다. 아이들은? 사우나? 당연히 못 간다. 그래서 여자 CEO 모임 따로 만들어졌다. 우리끼리. 좋다. 편하다. 공감한다. 근데 문제는, 진짜 투자 결정하는 사람들은 저 골프장에 있다는 거다. 저번에 한 선배가 말했다. 20년차 여성 창업가. "우리가 아무리 모여도 소용없어. 돈 쥔 사람들이 저기 있는데." 맞다. 투자사 대표들, 대기업 임원들, 정책 만드는 사람들. 다 남자들끼리 만난다. 우리는 '따로' 만난다. 그게 차이다. 어떤 남자 VC가 그러더라. "여성 창업가들 네트워크 대단하던데요." 대단한 게 아니다. 안 섞어주니까 우리끼리 만드는 거다. 질문 자체가 다르다 투자 미팅 때마다 받는 질문들이 있다. "창업하시게 된 계기가 뭐예요?" - 남자 CEO한테도 물어본다. "육아랑 병행 가능하세요?" - 남자 CEO한테는 안 물어본다. "남편분은 응원해주세요?" - 남자 CEO한테는 절대 안 물어본다. "임신 계획 있으세요?" - 이건... 진짜 들었다. 3년 전 투자 미팅에서. 그때 어이없어서 대답도 못 했다. 그냥 웃었다. 지금이라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못 할 거다. 그 자리에서 투자 날아가니까. 여자 창업가들끼리 만나면 이런 질문 리스트 공유한다. "이런 거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 "나도 받았어. 그냥 웃고 넘겼어." "근데 그러면 '진지하지 않다'고 하더라." "그럼 뭐라고 해야 돼?" 답이 없다. 어떻게 대답해도 꼬인다. 남자 창업가들은 이런 회의 안 한다. 필요가 없으니까. 성공해도 프레임이 다르다 우리 회사 작년 매출 200% 성장했다. 올해도 잘 나가고 있다. 기사 났다. "여성 CEO의 성공 스토리" 같은 시기 남자 동기 창업가도 성장했다. 비슷한 수치. 기사 제목? "젊은 창업가의 혁신, 시장 평정" '여성 CEO'와 '젊은 창업가'. 차이가 보이나. 나는 카테고리다. '여성'이라는. 걔는 그냥 창업가다. 인터뷰 요청 들어온다. 많이 들어온다. "여성 창업가의 어려움에 대해..." "워킹맘으로서의 창업기..." "육아와 사업의 양립..." 사업 얘기는? 시장 분석은? 성장 전략은? 그건 안 물어본다. 나한테는. 남자 창업가 인터뷰는 다르다. 본 적 있다. "시장 진입 전략", "투자 유치 비결", "차별화 포인트" 왜 나한테는 안 물어보는데. 내가 '여성'이기 전에 'CEO'인데. 어떤 행사에서 소개받았다. "여성 창업가 김OO 대표님입니다." 옆에 남자 대표는? "OO 플랫폼 박OO 대표님입니다." 회사 이름으로 소개받는 거랑 성별로 소개받는 거. 다르다. 롤모델이 없다는 것 20대 때 창업 생각하면서 찾아봤다. 여성 창업가. 몇 명 안 나왔다. 지금도 비슷하다. 있긴 하다. 근데 '여성 창업가'로 카테고라이징 된다. 그냥 '성공한 창업가' 리스트엔 안 들어간다. 후배들이 물어본다. "선배님, 어떻게 하셨어요?" 솔직히 말한다. "일단 버텨. 그리고 증명해. 계속." 이게 답이 되나. 근데 다른 답이 없다. 남자 후배들한테는? "좋은 아이템 찾고, 팀 잘 꾸리고, 투자 받아." 왜 나는 '버텨'부터 말해야 하는데. 선배 여성 창업가 한 분이 말했다. 조언 구했을 때. "그냥 해. 10번 중 7번은 성별 때문에 걸릴 거야. 근데 나머지 3번으로 성공하는 거야." 7번 걸린다는 게 정상인가. 남자들은 10번 다 기회인데. 계속하는 이유 그럼 왜 하냐고? 가끔 나도 모르겠다. 새벽에 혼자 울 때, 투자 미팅에서 이상한 질문 들을 때, '여성'이라서 평가절하 될 때. 그만둘까 생각한다. 진짜로. 근데 안 한다. 못 한다. 우리 회사 직원들 본다. 80%가 여자다. 워킹맘이다. 얘네들은 우리 회사 다니면서 처음으로 눈치 안 보고 재택한다고 한다. 아이 아프다고 말할 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게 당연한 건데, 여기서만 가능하다고. 그 말 들으면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 10년 뒤, 20년 뒤에는 이런 글 안 써도 되는 날이 오겠지. '여성 CEO'가 아니라 그냥 'CEO'로 평가받는 날. 같은 말이 같은 의미로 읽히는 날. 질문이 다르지 않은 날. 그날까지는 증명해야 한다. 계속. 피곤하다. 근데 한다.같은 행동인데 다르게 읽힌다. 그게 여성 CEO의 현실이다. 그래도 계속 간다. 달라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