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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MD 경력, 그것이 자산이 되고 때론 족쇄가 되는 이유

11번가 MD 경력, 그것이 자산이 되고 때론 족쇄가 되는 이유

11번가 MD 경력, 그것이 자산이 되고 때론 족쇄가 되는 이유 명함 때문에 받는 첫 미팅 "11번가 MD 출신이시라고요?" 투자자 미팅마다 듣는 말이다. 눈빛이 달라진다. 기대가 올라간다. "그럼 숫자는 잘 보시겠네요." "바이어 관리 경험 많으시죠?" "대기업 시스템 아시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시면 되죠?" 그럴 때마다 대답한다. "네, 그렇죠." 웃으면서. 속으로는 안다. 이 기대가 독이 될 거라는 걸.11번가에서 배운 것들 6년 했다. 육아용품 카테고리 MD. 월 매출 50억 관리했다. 바이어 200개 사 담당했다. 프로모션 기획하고, 수수료 협상하고, 재고 관리하고. 잘했다. 승진도 빨랐다. 팀장 달고 나올 뻔했는데 창업했다. 그때 배운 것들:데이터 보는 법 바이어 설득하는 법 프로모션 시즌 감 잡는 법 대량 거래 협상 노하우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법지금도 쓴다. 매일 쓴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자산이 되는 순간들 시리즈A 투자 받을 때였다. "김대표님, 이 conversion rate가 왜 떨어졌죠?" "재구매율이 작년 대비 어떻게 되나요?" "카테고리별 수익률 구조 설명 가능하세요?" 다 대답했다. 숫자로. 근거 대면서. 투자자가 고개 끄덕였다. "역시 경력자는 다르네요." 그날 15억 받았다. 직원 뽑을 때도 도움된다. 이력서 볼 때, 면접 볼 때, '실무'가 뭔지 아니까. 허상 거르는 게 빠르다. 바이어 미팅도 마찬가지. "11번가에서 일하셨다고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신뢰가 올라간다. 경력이 문 여는 열쇠일 때가 있다. 분명히 있다. 족쇄가 되는 순간들 그런데. "11번가 출신인데 왜 이렇게 밖에 안 돼요?" 시리즈B 준비하면서 들은 말이다. 다른 VC였다. "월 매출 8000만원이요? 이 정도면... 좀 아쉬운데요." "대기업 출신이면 네트워크가 있을 텐데, 왜 입점 브랜드가 이것밖에 안 되죠?" "시스템도 아직 이 정도예요? 11번가 계셨으면 훨씬 체계적일 줄 알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11번가는 직원 수천 명에 인프라 다 깔려 있는 곳이었다. 나는 MD 한 명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대표고, 직원 15명이고, 돈 없고, 시스템 없고, 모든 걸 직접 해야 한다. 비교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사람들은 비교한다. 경력 때문에.실패의 무게가 다르다 작년 크리스마스 프로모션 망했다. 광고비 2000만원 썼는데 매출 3500만원 나왔다. 마진 거의 없다. 손해다. 그냥 망한 거다. 스타트업에서 흔한 일이다. 근데 투자자 보고할 때: "김대표님, 11번가에서 프로모션 많이 하셨잖아요. 이건 좀 실망이네요." 직원들 앞에서도: "대표님 경력으로 이 정도는 피하셨어야죠." 남편한테도 들었다: "여보, 11번가 다닐 때는 이런 실수 안 했잖아." 경력이 없는 대표들은 '배우는 과정'이라고 포장된다. 나는 '실수'가 된다. 기준이 다르다. 관대함이 없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 아이들 깨기 전에 일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르다. '경력자인데 이것도 못 하냐'는 소리 듣기 싫어서다. 경쟁사 대표는 나보다 어리다. 경력 없다. 근데 우리보다 빠르게 큰다. 사람들은 말한다. "김대표님은 경력이 있으니까 곧 따라잡으시겠죠?" 압박이다. 기대가 압박이 된다. 매일 더 해야 한다. 경력값을 해야 한다. 증명해야 한다. 지친다. 11번가 동기들과의 거리 작년에 동기 만났다. 11번가 동기. 얘는 아직 거기 있다. 이제 팀장이다. 연봉 8500만원. "너 회사 어때? 잘 돼?" "응, 그럭저럭." 거짓말이다. 잘 안 된다. 힘들다. 근데 말 못 한다. "11번가 그만두고 창업했는데 잘 안 돼"라고 하면, 그게 곧 '실패'가 되니까. 동기는 묻는다. "그래도 재밌지? 자유롭고?" "응, 재밌어." 이것도 반쯤 거짓말이다. 재밌긴 한데, 자유롭진 않다. 책임이 무겁다. 동기는 정시 퇴근한다. 나는 밤 10시에 노트북 연다. 동기는 월급 나온다. 나는 3개월째 내 월급 못 받았다. "그래도 네가 부러워. 네 사업이잖아." 고맙다. 근데 부담된다. 경력이 만드는 이상한 기대들 미팅 가면 사람들이 예상한다. "11번가 출신이면 네트워크 엄청나시겠네요." 실제로는: 6년 전 명함이다. 연락 끊긴 사람 더 많다. "대기업 시스템 그대로 적용하면 되겠네요." 실제로는: 돈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그 시스템 못 돌린다. "투자 받기 쉬우셨겠어요." 실제로는: 100군데 넘게 돌아다녔다. 거절도 수없이 들었다. 경력이 만능 키처럼 보인다. 근데 아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 미니어처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11번가 그만둔 거 후회한 적 있다. 여러 번 있다. 특히 투자 안 받고, 매출 안 나오고, 직원 월급 걱정될 때. '그냥 다닐 걸' 싶었다. 근데 다시 생각하면, 안 한다. 대기업은 편했다. 시스템 있고, 돈 있고, 안정적이고. 근데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내 카테고리도 아니었다. 내 숫자도 아니었다. 지금은 다 내 거다. 망하든 되든 내 거다. 무겁다. 힘들다. 근데 내 것이다. 경력이 자산인지 족쇄인지 묻는다면, 대답은 '둘 다'다. 그리고 나는 이 족쇄를 스스로 찼다. 후회 없다. 경력자 창업의 진짜 어려움 요즘 깨닫는 것. 경력 없는 대표들은 '몰라서' 부딪힌다. 그게 오히려 자유다. 나는 '알아서' 조심한다. 그게 오히려 족쇄다. "이건 11번가에서 안 먹혔는데..." "대기업에서는 이렇게 안 하는데..." 자꾸 비교한다. 과거가 기준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도 비교한다. 나를 과거의 나랑 비교한다. "11번가 MD 출신이면 더 잘할 줄 알았어요." 이 말이 가장 아프다. 잘하고 싶다. 경력값 하고 싶다. 근데 대기업 MD랑 스타트업 대표는 다른 직업이다. 그걸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조차도 가끔 헷갈린다. 그럼에도 쓸 수 있는 것들 불평만 한 것 같다. 그건 아니다. 11번가 경력이 도움 되는 순간들:데이터 볼 때. 숫자 뒤의 패턴 읽는 법. 바이어 협상할 때. 딜 구조 짜는 법. 직원 교육할 때. 실무 구조 알려주는 법. 위기 올 때. '이 정도는 아니야' 하는 경험.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무'를 안다는 것. 많은 창업가들이 이상만 말한다. 비전만 말한다. 나는 실행을 말한다. 숫자를 말한다. 어떻게 굴러가는지 안다. 그게 경력의 진짜 가치다. 요즘 하는 생각 밤 11시. 아이들 재우고 노트북 켰다. 슬랙에 메시지 100개. '내일은 투자자 미팅이다. 또 물어볼 거다. "11번가 출신인데 왜..."' 한숨 나온다. 근데 웃긴 건, 나도 나한테 묻는다는 거다. '11번가 6년 했는데, 왜 이것밖에 못 하지?' 스스로가 가장 가혹하다. 커피 한 모금. 네 번째다. 내일도 증명해야 한다. 경력값을 해야 한다. 자산이면서 족쇄인 이 경력을 끌고, 오늘도 간다.경력은 날개인데, 왜 이렇게 무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