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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 09 Dec, 2025
저녁 7시 퇴근, 그 다음 2시간이 실은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
퇴근이 아니라 2교대 시작 7시에 사무실 나온다. 퇴근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아니다. 2교대 시작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립스틱 지운다. 가방에서 아이들 간식 꺼내 들고. 현관문 열기 전에 숨 한 번 크게 쉰다. "엄마!" 문 열자마자 달려든다. 7살 민준이가 먼저, 초등 2학년 지원이가 뒤따라. 가방도 못 내려놓고 안는다. 이 순간은 진짜다. 하루 중 가장 진짜인 순간.7시 10분, 전쟁 시작 "배고파 죽겠어요!" 민준이가 냉장고 연다. "숙제 검사 먼저 해주세요." 지원이가 가방 뒤진다. 시계 본다. 7시 12분. 재울 때까지 2시간 48분 남았다. 냉장고 연다. 어제 만들어둔 미역국, 밥 3공기, 계란 6개. 계획대로면 7시 반에 밥상 차린다. 민준이 손 씻기러 끌고 간다. 지원이 숙제장 펼친다. 국어 받아�기 10개, 수학 문제 5개. "엄마 이거 모르겠어." "잠깐만, 동생 손 씻기고." "엄마 지금 봐줘야 돼요!" 목소리 높아진다. 지원이 눈에 눈물 고인다. 숨 쉰다. "미안, 지금 바로 볼게." 민준이 손에 물만 묻히고 나온다. 다시 끌고 들어간다. 비누 쓰라고, 손가락 사이사이 씻으라고. 7시 22분. 계획보다 8분 밀렸다.밥상머리가 회의실보다 어렵다 7시 35분에 밥상 앉는다. 계획보다 5분 늦었지만, 괜찮다. "잘 먹겠습니다." 민준이가 숟가락 들기 전에 말한다. "학교에서 뭐 했어?" 지원이한테 묻는다. "그냥요." "그냥은 무슨."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더 물으면 짜증난다는 거 안다. 초등 2학년은 그렇다. "민준아, 유치원 재밌었어?" "네! 오늘 블록 놀이 했어요. 근데 준서가요..." 민준이는 다르다. 하루 종일 이야기를 쏟아낸다. 준서가 어쨌고, 선생님이 뭐라 했고. 지원이 밥 안 먹는다. 반찬만 골라먹는다. "밥 먹어." "배불러요." "반찬만 먹었잖아." "그래도 배불러요." 싸우기 싫다. "그럼 3숟가락만." 협상한다. 임원 미팅보다 어렵다. 밥 먹으면서 민준이 우유 쏟는다. 지원이가 "에이 바보" 한다. 민준이 운다. 일어나서 키친타월 뜯는다. "바보 아니야. 실수할 수 있지." 지원이한테 말한다. "언니가 동생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7시 58분. 밥 먹는 데 23분 걸렸다. 설거지는 나중에. 지금은 아이들.목욕탕이 싸움터 8시 5분. "목욕하자." 둘 다 싫다고 한다. TV 보고 싶다고. "10분만 보고 할게요." 지원이가 협상한다. "안 돼. 지금." 민준이 끌고 욕실 들어간다. 울면서 들어간다. 물 틀고, 온도 맞추고. 샤워기로 머리 감긴다. "눈에 들어가요!" "눈 감아." "물 차가워요!" "따뜻한데?" 샴푸 칠하고, 헹구고. 몸 씻기고, 나온다. 수건으로 닦는다. 머리 말리고, 로션 바르고. 옷 입힌다. "지원아, 네 차례." 지원이는 혼자 한다고 한다. 초등학생이니까. "머리 잘 감아." "알아요." 10분 뒤에 확인한다. 샴푸 안 했다. 머리에 물만 묻혔다. "지원아." "뭐예요." "머리 안 감았지?" "감았어요!" 거짓말하는 거 안다. 오늘 싸우기 싫다. "내일은 제대로 감아." "네." 8시 47분. 목욕에 42분 걸렸다. 잠들기 전 30분 9시. 이불 덮어준다. "책 읽어주세요." 민준이가 그림책 들고 온다. "오늘은 엄마가 피곤해서..." "하나만요. 짧은 거요." 못 이긴다. 앉는다. "옛날 옛적에..." 읽다가 목소리 갈라진다. 아이들 보면 눈물 날 것 같다. 참는다. 지원이도 옆에 온다. "나도 듣고 싶어요." 둘이 양옆에 붙는다. 따뜻하다. 책 끝나고 불 끈다. "잘 자." 문 나가려는데 민준이가 부른다. "엄마." "왜?" "사랑해요." 뒤돌아본다. 어둠 속에서 민준이 눈이 반짝인다. "나도." 목소리 떨린다. 9시 30분, 진짜 하루가 끝난다 거실 소파에 앉는다. 움직일 수가 없다. 2시간 반. 시계로는 2시간 반이었다. 근데 몸은 8시간 일한 것 같다. 아니, 더. 회사에서는 앉아서 일한다. 집에서는 서서, 뛰면서, 안으면서 일한다. 회사에서는 말로 한다. 집에서는 온몸으로 한다. 휴대폰 본다. 투자자한테 온 메일 3통. 직원 슬랙 멘션 5개. 나중에. 지금은 못 한다. 소파에 누워서 천장 본다. 남편 10시에 온다. 보통 그렇다. 아이들 재운 거 고맙다고 할 거다. 고맙다는 게 웃긴다. 내 아이들인데. 근데 화내기 싫다. 오늘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아이들이 "엄마" 부르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초등 2학년. 6살. 지원이 몇 년 뒤면 "엄마" 안 부른다. 방문 닫고 혼자 있고 싶어 한다. 민준이도 그렇게 된다. 7시부터 9시 반. 이 2시간 반은 돌아오지 않는다. 회사 미팅은 다시 잡는다. 투자 유치는 내년에도 한다. 근데 지원이가 "책 읽어주세요" 하는 건? 민준이가 "엄마 사랑해요" 하는 건? 몇 년 없다. 그래서 7시에 퇴근한다. 이사회에서 뭐라든. 투자자가 저녁 미팅 제안하든. "7시는 안 됩니다." 이유 설명 안 한다. 설명해봤자 모른다. 아이 없는 남자 투자자들은. "CEO면 좀 더 유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웃으면서 말한다. "유연한 게 아니라 우선순위입니다." 밤 10시, 노트북 다시 연다 남편 들어온다. "애들 잤어?" "응." 씻으러 들어간다. 나는 노트북 연다. 메일 확인한다. 투자자 메일.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미팅 어떠세요?" 답장 쓴다. "화요일 오전 10시나 오후 2시는 어떠신가요?" 보낸다. 직원 슬랙. "내일 회의 안건 추가해도 될까요?" "좋아요. 아침에 봐요." 답장 빠르다. 밤 10시에도 일한다. 미안하다. 내가 밤에 답장하니까 직원들도 하는 거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 회사도 내 아이다. 4년 키운. 둘 다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산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밤 12시에 자면서. 피곤하다. 근데 후회는 없다. 민준이 "엄마 사랑해요" 들었으니까.7시부터 9시 반, 하루 중 가장 바쁘고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